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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리더스아카데미 제5기 5강 하우봉 전북대 명예교수 "임진왜란, 동아시아 국제질서 재편한 대사변"
전북일보 리더스아카데미 제5기 5강 하우봉 전북대 명예교수 "임진왜란, 동아시아 국제질서 재편한 대사변"
  • 강현규
  • 승인 2018.04.15 1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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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요토미 정권 붕괴·중국 명나라 몰락
한·일 간 문물교류 이뤄진 문화전쟁 의미도
▲ 전북일보 리더스아카데미 제5기 5강의가 열린 지난 12일 우석대 공자아카데미에서 전북대 하우봉 명예교수가 '임진왜란과 한·일간의 문물 교류'를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전북일보 리더스아카데미 제5기 5번째 강의가 지난 12일 오후 7시부터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 전북일보사 2층 우석대 공자아카데미 중국문화관 화하관에서 열렸다.

이날 특강은 전북대학교 하우봉 명예교수가 강사로 나와 ‘임진왜란과 한·일간의 문물 교류’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하 교수는 먼저 임진왜란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하 교수에 따르면 임진왜란은 16세기말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국제전쟁으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전면적으로 재편하게 된 대사변이었다.

이 전쟁에 참전했던 동아시아 삼국의 국내정세가 일변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침략전쟁을 주도하였던 도요토미 정권이 붕괴하고 중국에서는 이 전쟁에 막대한 전비를 소모했던 명이 청에 의해 몰락하게 됐다.

조선은 비록 왕조가 교체되지는 않았지만 조선전기의 질서가 붕괴되다시피 했다.

또한 임진왜란은 전쟁을 통한 조선과 일본 양국간의 문물 교류가 이뤄진 문화전쟁이었다.

하 교수는 임진왜란을 통해 일본으로 전래된 조선의 문물 가운데 그 영향력이 큰 조선성리학, 금속활자와 서적, 도자기에 관해 언급했다.

하 교수는 “에도시대 이전까지 일본사상계의 주류는 불교였고, 유학은 한당학(漢唐學)이 중심이었으며, 성리학은 아주 미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면서 “전국시대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는 체제안정을 위해 중앙집권제적인 통치원리를 지니고 있는 주자학의 사상체계를 수용해 지도이념을 불교에서 주자학으로 교체했다.”고 설명했다.

하 교수는 이어 금속활자와 조선 서적에 대해서 “조선의 금속활자 제조 기술은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든 1450년보다 218년 앞선 고려시대에 세계역사상 최초로 발명되었고, 조선전기에는 더욱 발전했다.”며 “일본은 활자와 그 제조기술을 수입하기 위해 수차 요청했으나 조선조정에서는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따라 임진왜란 시 금속활자가 약탈의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 정유재란 때 일본군은 주자소를 습격해 조선의 금속활자 20만 자와 인쇄기구 및 서적을 가져가 히데요시에게 진상했다고 한다.

하 교수는 도자기에 대해서도 “당시 일본에는 다도(茶道)가 유행을 일으키면서 다이묘(제후)들의 고상한 취미가 되었고 이에 따라 고급 도자기의 수요가 늘어났다.”며 “이같은 이유로 다이묘들이 전란 중 앞다투어 도자기를 약탈하고 도공들을 납치했다.”고 피력했다.

하 교수는 일본으로부터 조선에 전래된 문물도 소개했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일본으로부터 조선에 전래된 문물로서 조총과 천주교, 고추, 담배 등이 있다.

조총의 경우 15세기말 유럽에서 만들어졌는데 16세기 아시아에 진출한 포르투갈에 의해 일본에 전해졌다.

조총은 조선군의 활에 비해 치사율은 물론 명중률이 5배나 되었으며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큰 효과를 보았다. 이에 따라 전란 중 조정에서는 조총의 제조법을 수용하려고 노력했다.

이에 전리품으로 조총을 확보하고, 항복한 일본군 가운데 조총제조 기술을 가진 자를 활용했다.

천주교는 임진왜란 기간 중 스페인 신부인 세스페데스가 일본의 종군신부로 조선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했는데 천주교 신부가 최초로 조선에 와 선교를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런데 1년 반에 걸친 조선체류기간 중 일본군 외 조선인에 대한 직접적인 선교활동을 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당시 일본에서 전도활동을 하던 서양선교사들의 기록을 보면 임진왜란시 일본에 잡혀온 조선인들은 절망 속에서 천주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조선에서 종군했던 세스페데스 신부가 이들에 대한 선교활동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 교수는 임진왜란에 대해 문화전쟁이자 도자기전쟁, 국가적 규모의 왜구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결론지으며 강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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