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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 故 고창석 교사' 원광대에 추모비 "우리들의 영원한 참스승"
'세월호 희생 故 고창석 교사' 원광대에 추모비 "우리들의 영원한 참스승"
  • 전북일보
  • 승인 2018.04.1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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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들 “항상 남 위해 살았다”
부인·자녀들 제막식 지켜봐
조의금 3000만원 장학금 기탁

“남편(故 고창석 교사)의 희생이 원광대학교 후배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며 ‘참스승’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故 고창석 교사 추모비 제막식이 16일 오전 11시 원광대학교 문화체육관 앞 오륜기공원에서 열렸다. 침몰한 세월호에서 남편을 잃고, 4년의 세월을 가슴에 묻은 아내 민모 씨가 제막식을 지켜봤다. 민 씨 옆에는 고 씨를 빼닮은 두 아들이 앉았다.

‘원광대 체육교육학과’라고 적힌 옷을 입은 학생 80여 명은 고 교사 유족이 나타나자 이따금 눈물을 훔쳤다. 민 씨는 단상 앞에 서며 “남들은 봄이라며 즐거워 하는 4월이 나에겐 잔인한 달이다. 기울어진 배 안에서 물속으로 들어갔던 남편이 있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 씨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였다.

추모비는 가로 40㎝, 세로 50㎝ 크기로 제작됐다. 부착된 동판에는 팔짱을 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고창석 교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 아래에는 ‘제자들을 구하고 순직한 93학번 고창석 교사를 기리며’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원광대학교 체육교육학과 93학번인 그는 늘 앞장서 주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던, 사람을 먼저 생각한 ‘참스승’으로 기억되고 있다.
체육교육학과 서상록 학회장은 “2005년 경기도 안산시 원일중에서 학생 휴게실에 불이 난 사건이 있었다”며 “그때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얼굴이 시커메질 때까지 소화기를 들고 뛰어다닌 교사였다”고 말했다.

동문 박성호 씨는 “대학 시절 임용고시를 위해 기계체조 연습을 하던 도중 다친 동기를 창석이는 끝까지 보살피는 의리 있는 친구였다”고 회고했다.

이날 추모 행사에 맞춰 김태영 시인은  <고창석 선생님을 기리며…>라는 제목의 추모 시(詩)를 헌시했다.

‘바다가 세월을 삼키던 날, 선생님은 제자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물속에 잠기었다.…(중략) 나 그대 이름 새겨진 묘비 앞에 무릎 꿇고 하염없이 울어보리니 쉬게나, 쉬게나, 그대 편히 쉬게나’
시를 낭독한 동문 조형준 씨는 슬픔에 목이 잠겼다. 재학생과 교직원들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슬픔이 북받쳤다.

체육교육학과 3학년 이경욱 씨(23)는 “2014년 1학년때 93학번 선배들과 실기평가 대회행사를 앞두고 만남의 시간을 앞두고 있었지만, 끝내 고 교사를 만날 수 없었다”며 “고 교사의 모습이 후배들에게 미래 교사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원광대 김도종 총장은 “고창석 동문은 원광대의 정신이 되었다”며 “고 교사의 두 아들이 원광대에 입학한다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날 고 교사의 부인 민 씨는 후학 양성을 위해 조의금 3000만 원을 학교에 맡겼다. 그는 1학년 송도현 학생 등 재학생 6명에게 직접 장학금을 전달했다. 원광대는 매년 4월 16일 추모식 행사를 열고, 10년간 장학금을 전달한다.

추모식을 마칠 무렵 한 동문은 “그 해 3월 단원고에 부임한 고 교사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갈 상황이 아니었지만 다른 교사를 대신해 세월호에 올랐다”고 전했다.

2014년 4월 16일 고 씨와 나눈 민 씨의 문자메시지 내용이 참석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애들을 키우느라 고생했다. 미안하다.”

기념사진 촬영을 하던 내내 민 씨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또치쌤’ 고창석 교사를 기리는 이들의 봄도 같은 모습일지 모른다. <익산=엄철호·남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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