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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장자
적장자
  • 위병기
  • 승인 2018.04.16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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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洋)의 동서와 시간의 고금을 막론하고 주상(왕)이 되지 못한 왕자는 죽어야 하는게 세상사의 이치였다.

오늘날 터키의 직전 왕조인 오스만튀르크(1299~1922)에는 너무나 살벌한 제도가 있었다. 튀르크족(돌궐족)이 세운 오스만 군주는 흔히 술탄으로 불렸는데 이 나라에서는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왕자만 궁에 남고, 나머지 왕자는 모두 죽어야 했다. 권좌를 탐내는 왕자들을 없애야만 쿠데타가 발생하지 않아 정권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무려 300년 가까이 이 제도가 운용되다 폐습이 없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왕자치고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사실 조선은 왕위세습이 적장자(嫡長子)에 의해서 이뤄지는 나라여서 본처 큰아들이 왕위계승 1순위였다. 적장자는 누가 뭐라고해도 명분상 뚜렷한 권위를 가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조선왕조 27대 왕 중 적장자로 왕위에 오른 이는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경종 등 7명에 불과했다.

양인 첩의 자손은 서자, 천인 첩의 자손을 얼자라고 하는데 왕위계승에서도 적장자가 아닌 경우가 훨씬 많았음은 매우 아이러니컬하다.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일부 시군에서 저마다 ‘민주당 적장자’를 자처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지지율이 높은 민주당 공천을 본인이 받아야 할 명분을 적장자에서 찾는 것이다.

어떤 후보는 오랫동안 민주당과 함께 했다는 것을 제시하는가 하면, 또다른 후보는 지역위원장의 복심이거나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을 내세우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바른미래당이나 민주평화당, 무소속 후보중에도 후보 프로필이나 선거 과정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민주당의 적장자로 활동해왔음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다. 도민 정서가 민주당에 확 기울어있고, 후보들이 대체로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는 인식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실 선거때마다 적장자론은 상당한 위력을 갖는다. 지역위원장과의 불편한 관계 등으로 인해 본인이 공천을 받지는 못했지만 민주당의 정통성을 계승했다는 논리다.

1987년 제13대 대선이래 계속되던 특정정당 독식 현상은 1991년 제4대 도의회 의원 선거때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 도내에서 총 52명의 도의원을 선출했는데 무소속 후보는 진안 임수진 단 한명뿐이었고, 나머지 51명은 평민당(현 민주당) 후보였다.

거의 한 세대가 지났으나 겉공기만 보면 이번 선거 또한 그때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시장, 군수 한두명을 제외하곤 이번 지방선거에서 특정정당 싹쓸이 현상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도민들의 최종 표심이 어떻게 표출될지 궁금하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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