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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主君)을 위하여!"
"주군(主君)을 위하여!"
  • 칼럼
  • 승인 2018.04.1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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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으로 주민 섬긴다
입에 거품 무는 후보들 시커먼 뱃속 가려낼 때
▲ 객원논설위원

벌써 6년 전 일이다. 처음으로 청와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기자생활 30년 동안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거나 식사를 한 경우가 몇 차례 있었으나 재직시절 청와대에서 만난 분은 이명박 대통령이 유일했다. 그러니까 2012년 6월 중순쯤이었다. 낮 동안의 더위가 한풀 꺾인 저녁 무렵, 잔디가 깔려있는 녹지원은 온통 푸른빛이었다. 권력과 지근거리에 있거나 격려차 필요해 초대된 사람들이 밟았을 잔디 위에는 큼지막한 원탁 10여 개가 놓여 있었다.

이날 초대된 사람들은 대부분 이 대통령의 선거운동 지원자들이었고 원탁마다 15명가량이 둘러앉았다. 퇴임을 앞두고, 대선 때 도와줬던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이날 행사는 참석자들의 덕담과 대통령의 소회, 기념사진 촬영, 저녁식사로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이날의 백미는 테이블마다 대표 1명씩 일어나 덕담을 건네고 건배를 하는 순서였다. 맨 먼저 이 대통령의 임기 초반에 장관으로 추천되었다 낙마한 분이 일어나 ‘용비어천가’를 읊더니 “우리들의 주군(主君)을 위하여!”하고 건배를 제의했다. 모두가 감회가 깊은 듯 이에 따랐고, 테이블마다 칭송과 퇴임 후 건강을 빌며 한결같이 “주군을 위하여!”를 외쳤다.

나는 잠깐 몸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따라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고, 그 난처함이란…. 아니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주군이란 말인가. “아, 선거라는 게 이런 거구나. 왕조시대에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더니, 선거(권력)에 미치면 이러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난달 이 대통령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될 때 주변에는 이들의 그림자조차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주군이란 뭘까. 그리고 오늘날 민주화 시대의 주군은 누구일까. 주군은 군주국가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우두머리, 즉 왕(임금)을 이른다. 주군을 섬기다, 주군을 지키다,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다는 게 용례다. 예전 주군의 죽음은 천붕(天崩)이라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에 비유했다. 최근에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MB)의 구속은 주군의 복수를 위해 정치 보복하는 것”이라고 말해 공분을 샀다.

이와 관련해 제왕학의 고전이라는 ‘한비자’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제나라 재상 관중(管仲)이 병이 들어 임종이 가까워오자 임금인 환공(桓公)이 문병을 갔다. 관중은 춘추시대에 환공을 보좌해 그가 나라를 세우는 데 공헌한 인물이다. 그는 주군에게 가까이 있는 충신 3명을 피하라고 조언했다. 그 중 역아(易牙)는 환공이 사람고기를 먹어보지 않았다고 하니까 자신의 맏자식을 쪄서 진상했고, 수조는 질투심이 많은 환공이 궁녀를 좋아하자 스스로 거세(去勢)했다. 또 개방(開方)은 주군의 환심을 사기 위해 15년 동안 가까운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찾지 않았다. 관중은 이들이 출세를 위해 처신한 위험한 인물로 보고 내치라고 고언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믿지 않은 환공은 수조를 재상에 임명했고 2년여 만에 모반을 당했다. 그의 시신은 벌레가 들끓도록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한비자는 이 고사를 통해 주군과 신하의 관계를 신의가 아닌 이익여부로 보았다.

이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5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기 저기 선거사무소가 차려지고 후보를 알리는 문자와 카톡소리가 요란하다. 이번 선거는 전국적으로 4016명, 전북에서는 252명을 뽑는다. 지금 후보들은 내가 적임자요, 주민을 주군으로 섬기겠다며 입에 거품을 문다. 하지만 시커먼 뱃속에 사리사욕만 가득한 인물들이 득실거린다. 누가 역아와 수조, 개방인지 밝은 눈으로 가려야 할 때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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