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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팔도유람] 봉사와 힐링의 섬, 고흥 소록도 - 고통 위로받고 인생 희망 찾는 '진주같은 섬'
[新팔도유람] 봉사와 힐링의 섬, 고흥 소록도 - 고통 위로받고 인생 희망 찾는 '진주같은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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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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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유린 현장 한센병박물관, 강제로 천륜 끊어낸 수탄장 등 한·굴곡의 역사 생생하게 남아
소록도 옆 작은 섬 연홍도는 ‘지붕없는 미술관’으로 유명
▲ 소록도 중앙공원. 1936년부터 3년여 동안 연인원 6만여명의 환자들이 강제 동원돼 조성됐다. 공원에선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함께 빼어난 조경을 만날 수 있다. 광주일보=김진수 기자

“경치에 감동하면 일주일이 바뀌고, 사람에 감동하면 인생이 바뀝니다.”

소록도성당 김연준 주임신부의 소록도 예찬이다. 그는 “소록도는 경치도 아름답지만 이보다는 인간에 대한 감동이 있는 곳이며, 고통을 위로받고 인생의 희망을 찾는 진주같은 섬”이라고 소록도를 찬양했다.

△소록도는 희망이다

▲ 푸른 눈의 천사 마리안느(왼쪽)와 마가렛.
▲ 푸른 눈의 천사 마리안느(왼쪽)와 마가렛.

1960년대 가난했던 시절, 파견 간호사로 소록도 땅을 밟은 오스트리아 여성 두명이 있었다. 두 여인은 5년의 파견 기간이 끝난 뒤에도 소록도에 남아 70대가 될 때까지 봉사하다가, 2005년 홀연히 고국으로 떠났다. 푸른 눈의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이야기다. 소록도 한센인들은 이들을 ‘할매’라 불렀다.

두 할매는 ‘수녀’로 알려졌지만 수녀가 아니다. 간호사다. 소록도병원에서 40여년간 한센병 환자를 치유했지만 월급 한 푼 받은 적이 없다. 순수 자원봉사였다. 월급을 받은 적이 없어 연금도 없다. 두 할매가 나이 70세에 소록도병원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소록도 한센인들은 두 할매가 떠나자 박수를 쳤다. 오스트리아에 가면 수녀원에서 노후를 편안히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빈손으로 돌아온 할매를 누가 환영했겠는가. 두 할매는 이를 알면서도 떠났다. 한센인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면서….

60년대 어려운 시절, 우리의 엄마 역할을 했는데도 우리는 두 할매의 노후를 챙기지 못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마리안느·마가렛에게서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본다. 사람에게는 이러한 본성이 있다는 걸 작각하게 한다. 그래서 소록도는 희망이다. 세상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곳이다. 진실을 알아가는 것, 인간성을 보고 아픔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기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그 자체가 의미이고 봉사다.

‘사람에게 희망찾기 프로젝트’가 소록도에서 한창이다. 그 하나로 영화 ‘마리안느·마가렛’이 제작됐다. 마리안느·마가렛 노벨평화상 운동과 마리안느·마가렛 자원봉사학교 개설도 같은 맥락이다. 자원봉사학교는 인권·소통·봉사 교육이 목적이다. 마리안느·마가렛처럼 약자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어떻게 자존감을 살려줄 것인가를 가르치고 배운다.

△소록도는 봉사·힐링이다

소록도 방문 자체가 봉사다. 상대의 아픔을 공감하고 나의 아픔을 위로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록도는 희망이자 힐링이며, 함께 해온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소록도는 과거의 한(恨)·상처·고통의 땅에서 이제 희망의 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위로를 받는다. 사소한 것에 상처받고 포기하기 일쑤인데 이 곳에 오면 아픔과 고통을 위로받게 된다. ‘작은 상처는 큰 상처를 만나면 치유된다’는 처방인 것이다.

김연준 신부는 “소록도는 대한민국의 진주”라고 했다. 진주는 조개 속 돌멩이다. 생명체에 돌맹이가 생기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너무 고통스러워 뱉어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고통을 줄이려 조개는 자신의 몸을 액으로 감싼다. 액에 감싸인 돌멩이는 시간이 흘러 진주가 된다. 고통 속에 건져올린 보석이 진주다. 미물의 눈물이 이럴진대, 인간의 눈물은 얼마나 값지겠는가. 소록도의 사연이 꼭 그렇다.

김 신부는 “소록도를 방문하는 것 자체가 봉사다. 편견을 없애는데 일조하기 때문”이라며 “이 곳에서 ‘편견 없애기’를 시작하자”고 권했다.

△소록도는 인권이다

▲ ‘탄식의 장소’라고 해서 이름 붙혀진 수탄장. 한센병 환자의 자녀를 강제로 격리해 놓고 한 달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장소다. 전염병을 우려해 서로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길가에 마주 서서 눈만 마주칠 수 있었다. 광주일보=김진수 기자
▲ ‘탄식의 장소’라고 해서 이름 붙혀진 수탄장. 한센병 환자의 자녀를 강제로 격리해 놓고 한 달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장소다. 전염병을 우려해 서로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길가에 마주 서서 눈만 마주칠 수 있었다. 광주일보=김진수 기자

소록도는 작은 사슴을 닮아다고해서 이름 붙여졌다. 하지만 이름처럼 예쁘지만은 않은 사연을 간직한 섬이다. 한센병으로 평생 격리돼 살아야 했던 한센인들의 아픔과 슬픔이 배어 있다.

바다 풍경을 따라 해송이 도열한 진입로는 인상적이지만, 강제로 천륜을 끊은 장소이기도 하다. 부모와 자녀가 도로 양 옆으로 갈라선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혈육을 만나야했던 곳, 그래서 탄식의 장소 ‘수탄장(愁嘆場)’이다.

중앙공원 주변에는 퇴색한 붉은벽돌 건물이 여럿이다. 감금실과 검시실, 녹슨 철창살이 굴곡의 역사를 가둔 채 존치돼 있다. 대부분의 건물이 문화재다.

윗쪽에는 마리안느와 마가렛 집이 있다. 두 할매가 43년간 살았던 집이다. 진정한 사랑의 집이고 헌신의 집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하는 집이며 자원봉사자들의 성지이다.

▲ 소한센인이 죽으면 부검을 했던 검시실. 사망자는 가족의 의사와 무관하게 검시를 마친 뒤에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광주일보=김진수 기자
▲ 소한센인이 죽으면 부검을 했던 검시실. 사망자는 가족의 의사와 무관하게 검시를 마친 뒤에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광주일보=김진수 기자

소록도병원 앞쪽에는 한센병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검시실 등에서 자행된 각종 수술기구와 강제노역 도구 등 인권 유린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그리고 지난 100년 한센병을 이겨냈던 그들의 삶과 이야기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전국 최초 예술의 섬 ‘연홍도’

▲ 등록문화재 제66호. 섬 전체가 미술관인 연홍도. 광주일보=김진수 기자
▲ 등록문화재 제66호. 섬 전체가 미술관인 연홍도. 광주일보=김진수 기자

소록도에서 거금대교를 건너면 거금도이고, 거금도 신양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5분이면 연홍도에 닿는다. ‘ㄱ’자 모양으로 떠있는 연홍도는 면적 55만㎡, 해안선 4㎞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이 자그마한 섬이 주목받은 건 섬 전체가 미술관인 까닭이다. 폐교된 금산초등학교 연홍분교에는 미술관이 있었다. 2012년 태풍 볼라벤으로 큰 피해를 입어 방치되다가, 2015년 전남도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되면서 전국 최초 예술의 섬으로 꾸몄다.

바닷가에 버려진 부표·로프·노·폐목같은 어구와 조개·소라껍질 등을 활용한 정크아트 작품 60여 점이 바닷가와 골목길에 설치됐다. 마을 풍광도 멋스럽다. 파랑과 빨강 계열의 지붕이 시선을 사로잡는 마을 풍경이 예술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마을 담벼락에는 주민들의 졸업과 여행, 결혼 등 특별한 순간을 담은 옛 사진 200여 점이 타일로 붙여져 있다.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불리는 고흥을 대표하는 예술의 섬이다. 산책길도 길지 않지만 3개 코스가 있다. 선착장에서 연홍미술관을 거쳐 마을회관 쪽으로 돌아오는 1160m의 ‘연홍도 담장 바닥길’이 있다. 선착장에서 왼쪽으로 섬의 한쪽 끝을 돌아 마을회관 쪽으로 가는 1760m의 ‘아르끝 숲길’도 있다. 반대쪽 끝에 다녀오는 940m의 ‘좀바끝 둘레길’도 있다. /광주일보=박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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