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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31. 오랜 나무가 품은 세월의 숨결 - 수백년 풍상 겪으며 꿋꿋하고 고고하게 우리 곁에 우뚝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31. 오랜 나무가 품은 세월의 숨결 - 수백년 풍상 겪으며 꿋꿋하고 고고하게 우리 곁에 우뚝
  • 칼럼
  • 승인 2018.04.1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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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산내 지리산 천년송 선운사 초입 절벽 송악 등 도내에 천연기념물 13종
보존 가치 있는 노거수는 유전자 채취 후계목 육성 그 모습 후대까지 이어야

“화려한 삼월인데 화창한 햇볕은 더디고 / 궁궐 둑의 버들은 실보다 푸르구나

꾀꼬리는 비를 피해 잎 속에 깊이 숨었는데 / 산책하는 여자들은 봄 구경하면서 작은 가지를 잡아 매네”

정조 임금이 세손 때 쓴 시로, 음력 삼월 버드나무 가지와 어우러지는 봄 풍경을 평화롭게 그렸다. 어린 시절부터 나무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던 정조는 조선의 임금 중 나무 심기와 관리에 많은 공을 들인 임금이었다. 그가 나무 심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후대와 백성을 위해서였지만 사도세자인 아버지를 위해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죽은 나무로 만든 뒤주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사도세자의 아들인 그는 푸릇한 생명이 가득한 나무를 아버지 무덤 주변에 심어 마음에 위안을 드리고자 했을 것이다.

▲ 경기도 화성시 소재 사적 제206호 사도세자의 무덤 융릉.
▲ 경기도 화성시 소재 사적 제206호 사도세자의 무덤 융릉.

정조는 1789년 가을부터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현 화성시 소재 융릉) 주변에 7년 동안 1,200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으며 이를 문서로 정리했다. 날짜, 나무의 종류와 숫자, 가격 그리고 각각의 역할에 따라 관련된 사람과 나무 심기에 관한 포상에 이르기까지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 기록과 흔적은 정조가 심었던 나무의 후계나무로 추정되는 나무들로 숲을 이루며 아직까지도 그 정신을 계승해 주고 있다. 당시 효의 마음을 담아 나무를 심는 임금의 모습에 감동한 백성들도 나무 심기에 자발적으로 동참하였고, 정조는 백성들이 구하기 편리하고 구황에 도움이 되며 농사와 수원(水原) 확보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나무들을 마을 근처에 심도록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일부 숲 공간을 백성들에게 개방하여 농지를 개간하게 하고 땔감과 목재를 제공하였으며 식량을 얻게 했다. 하지만 지금과 달리 나무의 쓰임이 많다 보니 무분별하게 벌목하고 개간을 위해 숲에 불을 내 숲의 면적이 줄어들면서 민둥산이 되어가는 곳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일부 지역에 금표(禁表)를 설치하고 나라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하는 봉산(封山)으로 지정하고 백성의 출입을 제한하며 관리를 하여왔다. 그러한 연유로 나라가 특별히 보호하고 관리한 봉산이 고지도 속에 표기되어 있고 아직까지 그 흔적이 우리 고장에 남아있다.

▲ 남원 운봉 서림숲(서어나무 군락시절).
▲ 남원 운봉 서림숲(서어나무 군락시절).

각각의 나무는 지역과 장소에 따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남원 운봉 람천 부근의 서림숲도 그러하다. 서림숲이 있는 서천리는 여원치에서 팔랑치로 부는 바람의 통로로 지세가 허한 곳이라 하여 석장승과 나무로 비보 및 액막이와 방제 등의 역할을 하게 조성하였다. 서목(西木)을 우리말로 서나무라고 했다가 서어나무가 된 것으로 추정된 서어나무가 숲을 이루어 서림숲 혹은 선두숲이라 부르며 마을에서 관리했다. 그러던 중 숲을 이루던 서어나무가 폭풍과 병해로 고사하기 시작하여 개체 수가 줄어들어 5그루 정도만이 남아 당산목인 느티나무 곁에서 그 이름만 걸어두고 있어 안타깝다.

▲ 번개에 맞아 고사한 익산 곰솔나무(천연기념물 제188호·왼쪽)
▲ 번개에 맞아 고사한 익산 곰솔나무(천연기념물 제188호·왼쪽)
▲ 번개에 맞아 고사한 익산 곰솔나무 후계목.
▲ 번개에 맞아 고사한 익산 곰솔나무 후계목.

오래된 나무는 마을 어귀 정자목과 표지목이 되기도 하며 당산목과 신목(神木)으로 보호를 받으며 사람들의 바람과 사연을 품고 고을을 지켜온 경우가 많다. 그중 수령이 많은 오래된 나무를 노거수(老巨樹)라 하는데, 세월을 켜켜이 담고 있는 노거수의 모습을 보고 싶어 찾아가 보면 그 사이 고사했거나 병들어 있는 경우가 있어 애석하기만 했다. 특히 천연기념물인 노거수는 오랜 세월 동안 한 장소에서 시간을 견디며 살아온 나무로 역사 문화적 가치와 생물학적 가치가 높은 생명체이다. 전북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가 14그루 있었으나 익산의 곰솔나무가 고사하면서 2008년 해제되어 전북에는 13종의 천연기념물인 노거수가 남아있게 되었다. 천연기념물 제188호였던 익산의 곰솔은 논산과 경계인 신작리에 있어 양쪽 고장 화합의 상징이었으나 피뢰침을 세우는 공사가 한창일 때 불행히도 번개에 맞은 후 고사하였다. 지금 그 자리를 찾아가 보면 익산 곰솔과 흡사한 작은 곰솔나무를 볼 수 있는데, 고사 전 유전자를 이어받은 후계목이 그 자리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어 다행이다.

▲ 고창 삼인리 송악(천연기념물 제367호).
▲ 고창 삼인리 송악(천연기념물 제367호).

선운사의 동백이 절정인 지금 선운사 올라가는 길 초입에는 도솔천을 앞에 두고 절벽에 뿌리를 내린 천연기념물 제367호 송악이 눈길을 잡고 있다. 두릅나무과의 덩굴식물로 소가 잘 먹는다 하여 소밥나무라 불리며 상춘등, 용린, 담장나무로도 불리는 사철 푸른 나무이다. 나무 아래에 있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줄기와 잎은 지혈작용도 하며 고혈압에도 좋다고 하여 귀히 여긴 나무가 송악이다. 고창 삼인리에 있는 송악은 높이 15m에 둘레가 80㎝에 이르며 내륙에 자생하는 송악 중에서 최북방 한계선에 있는 가장 큰 거목으로 주변 경관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신비로운 노거수이다.

▲ 남원 지리산 천년송(천연기념물 제424호).
▲ 남원 지리산 천년송(천연기념물 제424호).

남원 산내면에는 지리산 천년송이라 불리는 천연기념물 제424호로 지정된 소나무가 있다. 천년송의 나이가 진짜 천년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오랜 세월 지리산의 기운을 받으며 그 자리를 지켜온 경이로운 노거수라 천년송이라 불린 듯하다. 천연기념물인 천년송은 할머니나무로 불리고 근처 20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소나무를 할아버지 나무라 하는데 마을에서 보호하며 관리를 하고 있다. 매년 설에는 지리산 천년송 아래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열고 있고, 태아에게 소나무 바람 소리를 들려주는 솔바람 태교와 금줄과 혼례상에도 솔가지를 꽂는 풍습이 마을에 전해지고 있다.

노거수를 마주하면 수백 년 풍상을 겪어온 꿋꿋함과 고고함에 사뭇 경건해진다. 특별한 사연과 전설을 지닌 채 많은 이들의 마음속 염원을 들어주고 오랜 세월 묵묵히 우리 곁을 지켜 온 나무들은 귀한 생명체이다. 봄이 한창인 지금 봄꽃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낭만을 건넨다면 나무는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존재이다. 꽃을 피워내고 열매와 그늘을 내어주며 죽어서까지 자재로 쓰이고 아낌없이 주며 우리 곁에 있었다. 오랜 세월을 품고 견디어 온 노거수가 고사하여 사라져가기 전에 그 모습을 눈과 마음에 담아 보고, 보존할 가치가 있는 나무들의 유전자를 채취하여 후계목을 육성하여 웅혼함을 지닌 나무의 상징성을 이어 그 모습을 후대에도 살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오동나무는 천 년을 늙어도 항상 곡조를 품고 있고 / 매화는 일생을 춥게 지내도 향기를 팔지 않고/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이 변치 않으며 / 버들가지는 백 번을 꺾여도 새로운 가지가 돋는다”라는 말이 있다. 가만히 나무에 기대어 눈을 감고 그 숨결이 전해오는 오랜 시간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리고 변치 않을 가치를 이어가기 위해 봄의 때를 놓쳤다면 늦가을 나무 심는 시기에 나무를 심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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