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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77) 4장 풍운의 3국(三國) ⑮
[불멸의 백제] (77) 4장 풍운의 3국(三國) ⑮
  • 기고
  • 승인 2018.04.2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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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다음날 오전 사시(10시) 무렵, 오늘은 백제 사신 일행과 평양성 위쪽 50리쯤 떨어진 수렵장에서 사냥을 가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연개소문이 늦게 청에 나왔다. 오늘부터 사흘간 수렵장에서 머물 예정인 것이다. 백제 사신에 대한 고구려 최고통치자의 최상급 대접이다. 함께 사냥을 가서 같이 사흘을 지낸다는 경우는 부자(父子)간, 형제간보다 더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에 앉은 연개소문이 측근인 태대형 고준에게 물었다.

“어젯밤 백제 사신들이 잘 지냈느냐?”

“예, 다 잘 지냈습니다. 하오나…….”

“하오나 뭐?”

“계백공이 여자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연개소문의 눈썹이 솟아 올라갔다.

“마음에 들지 않았단 말이냐?”

“아닙니다, 전하.”

“그러면?”

“같이 침상에서 잤다고 합니다.”

“답답하군. 그럼 동침한 것 아니냐?”

“예.”

“이놈이 답답한 놈이군.”

성질이 급한 연개소문이 눈을 흘겼다.

“동침하지 않았다고 했지 않느냐!”

연개소문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말주변이 없는 고준이 쩔쩔매었을 때 옆에 서있던 막리지 요영춘이 나섰다.

“계백공이 여자하고 같은 침상에서 잤지만 상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허, 하초가 부실한가? 겉은 멀쩡한 무장이던데….”

연개소문의 이마에 금방 주름살이 만들어졌다. 그때 고준이 나섰다.

“아닙니다.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전하.”

“넌 답답하니까 입 다물어라.”

말을 막은 연개소문이 요영춘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예, 계백공이 여자한테 그랬다고 합니다. 내가 정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다. 그런데 그 여자하고 아직 밤을 같이 보내지도 않았는데 너를 품는다는 것이 도리에 어긋나는 것 같다. 그러니 같이 침상에서 자되 관계하지는 못하겠다.”

요영춘이 술술 말했을 때 연개소문은 다 듣고 나서도 한동안 눈만 끔뻑였다. 청안에 둘러앉은 무장, 고관들도 모두 입을 다물어서 숨소리도 나지 않는다.

“허, 참.”

마침내 연개소문의 탄식이 청을 울렸다.

“백제 무장의 인내심이 신(神)의 경지에 이르러있구나.”

연개소문이 말을 잇는다.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도 그렇게는 못하겠다. 너희들 중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못합니다.”

대번에 고준이 말했을 때 연개소문이 머리를 끄덕였다.

“너야 당연히 못하겠지.”

모여 앉은 무장 고관들의 콧구멍이 벌름거리거나 어금니를 물어서 볼 근육이 단단해졌다. 모두 웃음을 참는 것이다.

“정혼한 여자가 있는데 아직 관계를 못했다니, 이런 답답한 일이 있나? 여자가 병에 걸리기라도 했다는 거냐?”

“아닙니다.”

어깨를 부풀린 고준이 나섰다.

“이번에 대야성 싸움에서 죽은 신라의 투항무장 진궁의 딸이 바로 계백공의 부인이 됩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예, 다름이 아니고….”

이번에는 고준이 기를 쓰고 설명을 했고 연개소문은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이윽고 고준의 설명이 끝났을 때 연개소문이 다시 탄복했다.

“으음, 그래도 나는 참지 못했을 텐데 계백은 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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