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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코스프레
피해자 코스프레
  • 김원용
  • 승인 2018.04.24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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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 미투운동, 댓글 조작 사건(드루킹 사건) 등으로 이어지는 굵직한 뉴스의 현장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피해자 코스프레’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 거부를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과 측근들에 대한 수사를 현 정권의 ‘정치보복’이라는 입장문을 통해 결백을 보여주려 했다. 여권은 이를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비난했다.

‘드루킹 사건’은 여야의 위치가 바뀌었다. 야 3당이 드루킹 특검법안과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며 공격의 고삐를 바짝 죄자 여권은 자신들도 피해자라며 야권의 공조를 대선 불복으로 규정했다. 야당은 여론을 조작·왜곡한 사건에 대해 민주당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궁지에 몰린 쪽이 어떻게든 현재의 상황을 빠져나가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정치권의 이런 ‘피해자 코스프레’는 국민의 눈높이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낮은 수다. ‘코스프레’는 ‘의상’을 뜻하는 ‘costume’과 ‘놀이’를 의미하는 ‘play’의 합성어인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에서 나왔다. 영화·게임·애니메이션 등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모방하여 주인공과 같은 의상을 입고 행동을 따라하는 것을 의미한다. 피해자 코스프레는 이런 본래의 의미의 ‘코스프레’가 ‘피해자’와 결합해 적반하장의 무기로 쓰이는 셈이다.

정치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지엠 사태를 보면서 과연 누가 가장 큰 피해자인가를 떠올려보았다. 한국지엠 노사가 23일 자구안에 잠정 합의하면서 회사의 법정관리라는 최악의 상황을 넘겼다고 정부와 GM의 노사는 한숨을 돌리는 모양이다. 그러나 한국지엠 노사 임·단협 잠정 합의안에 군산공장을 어떻게 할 지 한 줄의 언급도 없다. 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겼던 군산공장에 남은 근로자 680명에 대해 무급휴직을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는 게 전부다. 물론 군산공장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로 차별과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됐다는 점에서는 다행스런 일이다.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폐쇄될 경우 근로자들이 일단 직접적인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 근로자에게는 일정 보상을 수반하는 희망퇴직과, 다른 공장으로 전환배치를 받을 수 있는 선택의 여지라도 있다. 문제는 협력회사와 지역 주민들이다. 한국지엠 사태와 관련해 피해를 본 도내 기업이 155곳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역경제 역시 파탄지경이다. 군산의 희생을 바탕으로 부평과 창원 공장은 정부의 신규자금 투자와 신차 배정, 외투 지역 지정으로 살 길을 찾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GM 근로자를 가장 큰 피해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지역경제의 파탄을 두고 차라리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비판받는 상황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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