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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정도 1000년, 창조와 대안의 땅 '전라북도'] 8. 새로운 가야역사의 거점, 전북 - 고구려 공격에 백제 위축되자 남원·장수로 대가야 세력 확대
[전라도 정도 1000년, 창조와 대안의 땅 '전라북도'] 8. 새로운 가야역사의 거점, 전북 - 고구려 공격에 백제 위축되자 남원·장수로 대가야 세력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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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2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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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도지역 가야의 영역과 전라북도권 가야유적 분포지.

△가야, 한국 고대 4국시대 주역 부각

최근 한국 고대사의 새로운 화두로 ‘가야’가 떠오르고 있다.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우리 고대사의 주역이었다. 그러나 문헌사료의 절대 부족과 일제의 식민사관에 의한 왜곡에 의해 가야의 실체와 역사적 위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 삼국 중심의 한국고대사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이 같은 가야가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이후 급증한 가야유적의 발굴을 통해서였다. 가야 관련 유적은 경상남도를 비롯해 경상북도, 부산광역시, 전라남도, 전라북도에까지 분포하지만 지금까지는 금관가야(김해지역)와 아라가야(함안지역) 그리고 대가야(고령지역)가 있었던 경상도 지역의 낙동강유역을 중심으로 파악되었다.

그런데 전라북도 지역에서도 동부지역 7개 시군(남원, 완주, 진안, 무주, 장수, 임실, 순창)에 690개의 가야유적(고분 448, 제철 129, 봉수 68, 산성 45)이 분포하고 있는 상황이 파악되었고 지난 2월 전북 가야유적으로 남원 두락리·유곡리 고분군이 첫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전라북도의 가야역사 진입이 공식화 되었다.

△새롭게 부각된 전북지역 가야유적

‘가야’라는 나라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 기록에 따라 ‘광개토왕릉비문’에는 가라(加羅), ‘삼국사기’에는 가야(伽倻, 加耶), ‘삼국유사’에는 가락(駕洛) 등으로 다양하다. 가야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를 강이나 호수의 의미로 파악해 낙동강 주변지역의 의미로 보는 견해도 있고 동족을 의미하는 퉁그스어의 ‘칼라(xala)’ 에서 그 연원을 찾기도 한다. 또 김수로왕의 부인 허왕후의 출신지역인 인도의 불교관련 용어인 부다가야에서 찾기도 하지만 아직 명확한 의미는 모른다. 다만 전국적으로 ‘가야’라는 지명이 강변이나 해변지역에서 나타나고 있어 바다나 강변을 의미하는 명칭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종래 가야는 삼국과는 달리 통일된 정치체를 갖지 못해 멸망 때까지 10여개 이상의 개별 소국명이 병렬적으로 존속하고 있었다. 따라서 ‘가야’ 는 신라· 백제와 구분되는 연맹체 국가로 보고 있다. 가야 역사에 대한 기록은 매우 소략하지만, 역설적으로 고고학 자료가 비교적 풍부하게 남아 있어서 그 문화상의 복원뿐 아니라 역사의 재구성도 시도되고 있다.

가야의 기존 영역은 경남과 경북일대로 보았으나 가야 유물이 낙동강 동쪽 일부와 호남 동부지역, 그리고 전남 광양만, 순천만 일대와 최근에는 전북 남원, 장수, 진안, 임실에서도 확인돼 영역이 상당히 넓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가야영역의 변화와 확산은 고구려의 백제 공략과 밀접히 관련있다. 즉, 400년 광개토왕의 한반도 남부지역 정벌로 김해 가락국세력이 쇠퇴하고 서기 5세기이후 가야의 구심점은 낙동강 서안 경상도 내륙지역으로 옮겨져 내륙의 철산지를 개발하면서 고령의 반파국(伴跛國), 즉 대가야가 성장해 나갔다. 또한 475년 장수왕의 백제공략은 백제가 거의 붕괴될 상황까지 몰렸고 수도를 웅진(공주지역)으로 옮겨 간신히 명맥이 유지되는 시기인 5세기 후반 대가야 세력은 백제의 영향력이 축소된 남원 및 장수 지역으로 영역을 확대하였다. 이는 섬진강과 남강 수계의 교역망을 통해 확산되었는데 5~6세기 전북 동부지역에 가야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세력권이 나타났다.

△전북 가야유적 역사적 실체파악 시급

▲ 남원 월산리 출토 유물. 중국에서 수입된 청자 계수호, 금귀걸이, 철제 자루 솥(술 데우는 의기).
▲ 남원 월산리 출토 유물. 중국에서 수입된 청자 계수호, 금귀걸이, 철제 자루 솥(술 데우는 의기).
▲ 남원유곡리 두락리고분 출토 청동거울과 철제유물(왼쪽)과 남원 월산리에서 출토된 갑주.
▲ 남원유곡리 두락리고분 출토 청동거울과 철제유물(왼쪽)과 남원 월산리에서 출토된 갑주.

2018년 2월 남원 두락리·유곡리 가야 고분군이 전북지역 가야유적으로서는 처음으로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42호로 지정됐다. 이 고분군에서는 가야계 수혈식 석곽묘(구덩식 돌덧널무덤)와 백제계 횡혈식 석실분(굴식 돌방무덤)이 확인되었다.

특히, 가야 영역권에서 최초로 청동거울, 금동신발 등 최고급 위세품이 출토되어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또한 남원시 아영면 월산리 고분군에서는 철제 갑주와 등자, 철제 자루 솥 및 금귀걸이와 중국 청자인 계수호(鷄首壺 닭머리 모양 주둥이 가진 주전자)등이 발견되었다. 이들 유물은 5~6세기 가야와 백제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2017년 장수군 동촌리 고분군에서 가야 수장층의 무덤임을 알려주는 마구류 등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토기들은 백제, 소가야, 대가야의 토기류와 혼재된 양상이어서 다른 지역과 교류해온 사실 등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 6세기 《양직공도》에 나타난 백제사신. 기록에 백제를 따라 온 주변 소국의 이름이 제시되어 있는 데 반파(叛波-대가야)와 상기문(上己文-전북지역 가야 남원) 등의 명칭이 보인다.
▲ 6세기 《양직공도》에 나타난 백제사신. 기록에 백제를 따라 온 주변 소국의 이름이 제시되어 있는 데 반파(叛波-대가야)와 상기문(上己文-전북지역 가야 남원) 등의 명칭이 보인다.

이같이 새롭게 확인된 전라북도권 가야유적은 과연 우리 역사 기록속에서 어떤 존재의 역사유물일가 하는 것이 학계의 큰 관심이다. 전북 동부지역은 섬진강 수계인 운봉고원(남원시 동쪽)과 금강수계인 진안고원(무주,장수,진안)으로 공간 구분이 된다. 이중 남원지역은 《양직공도》에서 백제의 주변 소국인 기문국(己文國)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아울러 철을 생산했던 대규모 야철지가 발견된 남원과 가야세력이 직접 운용했던 장수의 봉수유적을 통해 ‘봉수 왕국 장수가야’가 고고학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백제와 힘을 겨룰 만큼 강했던 가야문화권의 중심이 대가야가 아닌 ‘장수가야’라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조법종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법종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그런데 이들 전북지역 가야의 실체에 대해서 아직 고대사 학계는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기존 가야사를 연구한 학자들은 남원을 중심으로 기문국 등의 존재를 설정하였지만 장수지역에서 새롭게 확인된 가야유적의 실체에 대해서는 유보적 입장이다. 6세기 후반 백제에 복속된 가야세력 등에 대한 지속적인 고고학 유적조사와 발굴 및 문헌사학계와의 긴밀한 연구를 통해 우리 역사의 새로운 화두로 부각된 전북 가야의 실체와 위상 찾기 노력이 요청된다. 이를 통해 더욱 다채로운 전라북도의 역사문화적 토대와 문화자원의 확충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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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남 2018-05-15 15:52:24
대륙 유목세의 개방적이고 호방한함고 해양세의 공간과 그 해양 스피릿은 한반도에 연연히 이어져
완도에서도 전국적해양세 많은 영향이

남기남 2018-05-15 15:47:07
문명인류(인류애충만함갖인-언어가미발달한 시기 우리인류는 그많은 기초문명지식(집,농경,사냥법등등)은 어떻게
전파됫슬까?, 인류애 충만한 원시사람의 인류애에 기반한 학습?)
인류문명에서 두갈래- 서로의 개척,동으로의 개척- ㅣ현생인류가 바다와 접하며 문명을 일군 두군데
지중해와 스키타이갈래의 개방적이고 호방한 가야와 그 해양세의 열린 공간 . 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