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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정은의 큰 꿈
[특별기고] 김정은의 큰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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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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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영 민주평화당 국회의원·전 통일부장관

김정은의 꿈은 아버지 김정일의 꿈보다 크다. 아버지는 인민이 삼시 세끼 먹는 것이 꿈이었다. 집권하자마자 95년부터 98년까지 흉년과 대기근으로 수십만 명의 사람이 굶어 죽었다.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려 남쪽의 쌀과 비료지원에 의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의 꿈은 삼시 세끼를 넘어 보다 큰 꿈을 꾸고 있다. 6년 전 집권자로 등장하면서 그는 “인민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지 않겠다.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고 공약했다.

지난 4월 20일 북한의 최고 정책 결정기구인 노동당 중앙위원회를 열어 핵 경제 병진노선을 폐기하고 경제건설 총력집중을 새로운 전략노선으로 채택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어렵게 건너온 다리를 불살라 버린 조치이다. 이자리에서 그는 “인민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행복한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집권 후 네 번의 핵실험과 60여 차례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하며 질주해온 그가 경제강국의 꿈을 이야기 하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북한은 핵개발에 매달리는 이유를 4단 논법으로 설명한다. 첫 번째, 미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뒤집어진다.

두 번째, 미국은 두려운 존재다. 북을 압살하려고 한다. 적대시 한다. 특히 핵무기로 위협을 한다.

세 번째, 그래서 북이 생존하려면 최우선 과제는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거다. 그런데 미국은 관심이 없다. 들은 체 만 체 한다.

네 번째, 결국 북은 미국의 그런 압살 위협에 맞서서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해서 억지력을 갖고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때가 오면 협상하겠다.

김정은은 4단 논법의 마지막 단계 즉, 지난해 11월 말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성공과 동시에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나서 미국과의 협상으로 U턴했다. 서울을 거쳐 워싱턴으로 가는 경로를 선택한 것이다.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가장 많이 쓴 단어는 ‘평화’였고 그 다음이 ‘번영’이었다. 정상회담 합의문 제목도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고 선언문 전체에서 ‘번영’이라는 단어가 6번 등장한다.

지난 6년간 김정은은 인민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집단농장의 토지를 쪼개어 3∼5명 단위로 나누어 주고, 30%는 세금으로 내고 70%는 임의로 처분할 수 있도록 농지개혁을 했다. 공장과 기업소의 자율경영과 독립채산제를 도입해 생산을 늘렸다. 국제적 제재와 압력 속에서도 북한 경제가 오히려 성장을 지속한 배경이다.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경제개발구역을 서해안 동해안 압록강을 따라 22군데를 지정했다.

김정은에게 베트남의 길은 매력적이다. 베트남은 공산당 1당 독재를 하면서도 김정은이 말한 ‘사회주의 부귀영화’의 길을 가고 있다. 베트남은 1960년부터 1975년까지 강대국 미국과 15년 동안 전쟁을 했다. 20년 뒤 1995년에 관계를 정상화하고 시장개방과 개혁개방의 길로 갔다. 중국보다 더 이념적 색채를 띠면서도 고도성장을 해온 베트남의 길이 그에게 중국의 길 보다 더 매력적인 이유다.

내가 김정은 위원장의 말 가운데 주목하는 것은 ‘지정학’이라는 세 글자다. 지정학은 지리적 자연적 환경과 국제정치를 결합한 말이다. 그가 10대 때 유학한 스위스는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와 닮았다. 독일 프랑스 이태리 오스트리아 4대국에 둘러싸인 최빈국에서 최부국으로 올라선 스위스는 최빈국 북한에게 꿈같은 대상이다.

그는 “조선반도가 지정학적 피해국에서 지정학적 수혜국으로 나서야 한다”고도 말했다. 지난 100년 식민지, 분단, 전쟁, 가난의 긴 터널을 지나온 한반도의 고통스러운 역사에 대한 의식이 있다는 얘기다. 판문점에서 문재인-김정은 두 지도자가 가장 깊은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대목이다.

연두색 신록의 비무장지대 숲 속에서 녹슨 군사분계선 표지판을 등 뒤에 두고 무릎이 닿을 만큼 가깝게 다가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대화를 나눈 두 정상의 모습은 전세계에 생중계됐다. 세계 외교사에 없었던 장면이다. 마침내 올해 종전을 거쳐 평화협정에 이르게 된다면 역사에 길이 남을 운명적 회담 장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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