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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32.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땅의 힘 - 산 많은 진안·장수, 18·19세기 조선시대 최상품 담배 재배지 명성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32.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땅의 힘 - 산 많은 진안·장수, 18·19세기 조선시대 최상품 담배 재배지 명성
  • 칼럼
  • 승인 2018.05.03 21: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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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세기 국내 전래 후 남녀노소 전국 급속 확산
택리지 등 옛 문헌과 지도…담배 명산지로 전북 소개
1921년 전매제도로 전환 인삼·사과밭으로 바뀌어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아주 먼 옛날 옛적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단골 구절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으레 시작하는 그 말로 옛날이야기 들려주시면 재미있었지만, 호랑이가 진짜 담배를 먹었는지 피웠는지가 늘 궁금했다. 아주 오래전 짐작도 할 수 없는 옛날 이야기란 의미를 담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고도 하고, 담배가 유행인 시대에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고 담배를 즐기니 호랑이도 담배를 피운다 할 그 시절을 의미했다고도 하며, 전북지역을 중심으로 구전된 ‘효자 황팔도’란 담배 피우는 호랑이로 변신한 효자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호랑이 변신에 관한 이야기는 중국 문헌에도 많이 수록된 이야기로 당나라의 장위가 엮은 『선실지(宣室志)』에도 등장한다. 중국에서 호랑이의 변신하는 이야기에 대한 이유가 아무 설명 없이 도교적 느낌이 강한데 반해, 우리나라의 호랑이 변신 이야기는 효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변신설화인 효자 황팔도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어머니 병환을 위해 스님이 일러준 비법에 따라 주문을 외워 호랑이로 변신해 황구를 잡아 어머니의 병구완을 했던 효자가 황팔도이다. 비책을 보며 밤에 몰래 나가 호랑이로 변하는 남편을 무섭고 못마땅하게 여긴 아내가 비책을 불태워 버려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화가 난 황팔도가 아내를 해치고 호랑이 모습으로 다녔다. 그 호랑이를 두려워 한 사람들이 궁리를 내었고 가까이 간 어릴 적 친구인 포수를 만나자 호랑이가 친구에게 담배를 얻어 피우며 신세 한탄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한 번쯤 들어봄직한 호랑이 이야기도 그렇지만, 전북 일대에 호랑이 담배 피우는 이야기가 구전된 이유 중의 하나는 진안과 장수가 조선 최고의 담배 산지로 유명하니 담배 피우는 이야기가 섞여 전북과 충남 일대까지 퍼져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담배 도입 시기를 살펴보면 그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기란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오랜 옛날이 아닌 빨라야 16세기나 17세기 경 임을 알 수 있다. 연초, 남령초, 남초, 담바고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담배의 유입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임진년(1592)이나 광해군 때인 1608∼1618년 왜초(倭草)란 이름으로 일본에서 들어왔거나, 중국을 내왕하던 사람들에 의하여 서초(西草)로 도입된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15년(1623)의 기록을 보면 ‘동래 왜관에서 화재가 발생해 80칸을 모두 태웠다.’라고 나와 있는데, 화재 원인에 대해 실록의 사관은 “왜인이 담배를 즐겨 피우므로 떨어진 담뱃불로 화재가 일어난 듯하다”라고 진단하고 있다. 또한 <인조실록>에서는 담배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해를 병진년(1616년)부터로 ‘처음에는 피우는 사람이 많지 않다가 신유년(1621)부터는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어 손님을 대할 때면 술과 차 대신 담배를 내놓을 만큼 급속하게 확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표류해 와 당시 생활상을 기록한 하멜의 표류기에도 “현재 그들 사이에는 담배가 매우 성행하여 어린아이들까지도 4, 5세부터 담배를 배우기 시작하고, 남녀 간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고 기록되어 있다.

▲ 조선 후기 진안 지도.
▲ 조선 후기 진안 지도.

담배가 유행함에 따라 재배지에 대한 관심도 많았는데, 당시 최상품의 담배 생산지로는 지금의 전북 진안과 장수, 그리고 평안도 지방을 꼽았다.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서도 진안이 담배의 명산지로 나온다. “진안은 마이산 밑에 있는데 땅이 담배 가꾸기에 알맞다. 진안 경계 안이라면 비록 높은 산꼭대기에 심어도 무성하게 자라 많은 주민이 이것을 업으로 삼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영향을 받은 조선 후기 지도를 보면 진안지역에 ‘남초(南草)’라는 두 글자가 함께 적혀 있다. 지도에 특별히 특산물을 표시한 것으로 보아 진안을 대표하는 지역의 상징물이 남초로 불린 담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지가 많아 벼농사가 수월치 않았던 진안과 장수에서는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담배를 집중적으로 재배하였고, 호랑이 담배 피우는 일화 및 ‘진안 친구 망한 친구’란 속어 등 담배에 얽힌 일화가 진안 지역 담배 재배의 역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 김홍도 담배썰기 풍속도.
▲ 김홍도 담배썰기 풍속도.

고문헌뿐만 아니라 그림에서도 담배의 유행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담배 썰기’는 김홍도가 조선시대의 갖가지 풍속 장면을 종합한 화첩인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그림 중 하나다. 이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조선시대에는 담배가 널리 보급되어 서민들도 즐겨 피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신윤복의 풍속화에도 긴 담뱃대를 문 기생과 양반들이 종종 등장할 만큼 담배가 애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서당에서는 훈장과 학도가 맞담배를 피웠다는 기록도 남아있으며, 조정의 공신들도 마찬가지여서 조회를 하는 정전이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고 한다. 광해군은 이에 분노해서 자신의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 이유로 임금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되었고, 이것이 민간으로 퍼져 어른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예의로 여겨졌다는 설이 있다.

당시 담배의 유행은 편두통, 배앓이뿐만이 아니라 매독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민간요법에서 만병통치약으로 쓰였던 까닭도 있다. 박세당은 “담배처럼 귀한 약초가 세상에 있는 줄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라 했으며, 박지원은 <양반전>에 “식후에 담배를 피우면 위가 편안해지고, 새벽에 입안이 텁텁할 때 피우면 씻은 듯 가신다. 걱정근심이 많을 때 피우면 술을 마신 듯 가슴이 씻은 듯하다. 과음으로 간에 열이 날 때 피우면 답답한 폐(肺)가 풀리고, 시구(詩句)가 생각나지 않을 때 피우면 연기에 따라 시(詩)가 절로 나온다. 뒷간에 앉아 피우면 똥 냄새를 없애준다”고 극찬했다.

반대로 <인조실록>에서 담배는 요망한 풀로써 ‘요초(妖草)’라 등장한다. 담배 뇌물로 벼슬을 샀다가 파직되는 사례도 있었다. 담배가 조선 사회를 병들게 한다고 한탄했고, 담배의 경작으로 농토가 줄어 담배 경작을 법으로 제한해 달라고 상소한 기록이 <정조실록>에 남겨져 있다. 그러나 애연가인 정조는 ‘그것은 각 지방의 감사에게 달린 일’이라고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고 “여러 가지 식물 중에 이롭고 유익한 것으로는 남령초만 한 것이 없다. 민생에 이용되는 것으로 이만큼 덕이 있고 공이 큰 것이 어디 있겠느냐?”라고 했으며 책문의 시제로 남령초(南靈草)를 내걸었을 정도로 담배를 즐겼다. 그러한 연유인지 연초가란 제목으로 운을 띠우며 시를 남긴 기록이 많이 남아있고 애연가였던 정약용도 다산시문집에 ‘담배(煙)’에 관한 시구를 남겨 놓았다.

“가만히 빨아들이면 향기가 물씬하고 / 슬그머니 내뿜으면 실이 되어 간들간들…”

차도 좋고 술도 좋지만 새로 나온 담배가 귀양살이하는 사람에게 제일 친한 물건이라고 표현했으며, 정약용은 “담뱃대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머금게 할 뿐이고, 사람들에게 먹힘을 당하지는 않는다.”란 의미심장한 글로 담배를 표현하였다.

▲ 여태명 작 ‘안천 소재지 담배건조장’(진안군 소장).
▲ ‘안천 소재지 담배건조장’(진안군 소장). 글 여태명, 그림 김학곤.

 

시대가 흘러 300여 년간 자유 경작을 했던 담배 재배도 1921년부터 국가에서 관장하는 전매제도로 바뀌었다. 조선 제일의 담배로 유명했던 진안의 담배밭은 이제 인삼을 주로 재배하게 되었고 장수의 담배밭은 사과밭으로 바뀌었다. 땅의 힘은 세월을 품고 우리를 올곧게 서게 한다. 험지를 새로운 작물의 재배로 지혜롭게 살았던 진안의 담배 이야기를 써 내려간 여태명 선생의 글에서도 그 땅의 힘이 느껴진다. 진안과 함께 최상품 담배 재배지로 이름을 알린 평안도의 담배밭은 그대로 일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상이 달라져 가고 있지만, 평안도 담배의 안부는 애연가로 알려진 북한 국무위원장인 김정은의 담배 피우는 모습에서 엿보고, 남편의 건강을 염려하는 리설주 여사의 마음을 보며 사람살이 매한가지 임을 새삼 느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며 함께 심은 식수 표지석에 진안 출신 여태명 선생의 글씨가 굳게 새겨졌다. 지금의 다이내믹하게 전개되는 우리 민족의 일들을 아주 먼 훗날 볼적에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자랑스럽고 멋진 역사로 아로 새겨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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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fl 2018-05-04 09:30:53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을 드디어 알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