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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의 선택
미소의 선택
  • 칼럼
  • 승인 2018.05.2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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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뿐 아니라 주거문제 해결 또한 나아질 기미 안보여
▲ 최진영 독립영화감독

최근에 가장 인상 깊게 본 한국독립영화가 있다. <소공녀>라는 작품이다. 아동과 여성의 고난을 착취하고 전시하며 작금의 산재된 문제들을 드러내는 방식의 여러 영화들에 질려있어서인지 시종일관 자신의 존엄과 취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주인공 미소를 끝까지 응원할 수 있는 동력이 극이 진행되는 동안 차곡차곡 쌓여있던 영화다. 경향으로 여기고 싶진 않지만 지금까지 많은 한국독립영화가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방만하지는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소공녀 속 미소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더군다나 여성이 어떻게 그려져야 하는지 여성창작자로서 고민해볼 수 있는 문제와 질문에 대해 새로운 답을 제시해줘서 반가운 영화였다.

소공녀 속 미소는 담배와 위스키 그리고 남자친구만 있으면 되는 친구다. 담뱃값과 위스키 값이 오르자 그는 단칸방에서 나오며 24시간 패스트푸드점과 친구들 집을 돌아다니며 도시의 하루를 버텨낸다. 그렇다고 그녀가 노동을 안하는 게 아니다. 일일가사도우미로 일당을 받거나, 재워주고 먹여주는 대가로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주는 노동을 제공한다. 그렇게 벌어들인 일당은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병을 늦춰주는 한약을 사거나,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담배와 위스키 값으로 지불된다. 스포일러가 되니 자세한 뒷이야기는 못하지만 극의 끝에서도 그녀는 집을 포기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지키는 인물로 남는다. 집은 포기하지만 자신의 취향과 존엄을 지키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를 돌아보는 건 당연했다.

내가 집을 포기하고 지키고 싶은 건 뭘까. 집 만큼의 교환가치를 생각이나 하고 있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마구잡이로 머릿속을 헤집는 와중에 타인의 시선들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만약 미소였다면 내 주위의 사람들은 그런 나를 철없고 게으른 사람으로 매도할게 틀림없는데…. 선택은 내 몫이지만 그런 시선들을 거둘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기에 내가 미소의 삶을 버텨낼 재간이 없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무엇보다 내 소유의 집이 없다. 백수가 된 후 독립생활을 마치고 다시 부모님 집으로 들어오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이미 친구들을 밤 늦게까지 초대해서 놀 자유,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올 자유, 거실에서 크게 볼륨을 높이고 음악을 들을 자유 등을 반납할 각오를 했다. 얼마 전에는 라디오에서 나가 “왜 다시 캥거루족이 됐나?”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상당수의 자유를 월세와 공과금으로 교환했으니 나는 결코 미소처럼 지키고 싶은 취향은 별로 없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지난 해 전국 고시원 숫자가 10년만에 251%가 증가한 1만1800개라는 통계청의 조사결과가 나왔다. 이제는 고시를 준비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청년주거문제의 대안이 된지 오래다. 쉐어하우스도 신주거 문화의 대안이 됐지만 아직 건축법, 주택법 등 관계 법령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정부는 올해부터 25만실의 쉐어하우스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제대로 된 법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안전에 취약한 건 불 보듯 뻔하다. 청년들의 취업실업 문제뿐만 아니라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주거문제 해결 또한 나아질 기미가 안보인다. 임대주택 확충과 같은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지만 아파트 값 떨어진다고 임대주택 건설을 막는 플래카드를 보면 소공녀 속 미소의 선택이 최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더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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