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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요사이 전주성 남문 밖은 어떠한지요 - 김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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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2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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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만 동경하던 젊은 시절을 통과한 탓일까? 요즘은 내가 살고 있는 마을 근처를 소요하는 게 더 좋다. 낯익은 풍경과 사람들을 보면서 걷다 보면 내 눈빛도 순하고 다정해지는 것 같다.

이사를 해야겠다고 벼르던 무렵, 출퇴근길에 스치는 서학동이 내 눈에 쏙 들어왔다. 한적한 골목길 따라 따닥따닥 붙은 나지막한 집들. 담벼락 사이사이 손바닥만 한 텃밭에서 싱싱하게 자라는 상추 고추 시금치 같은 채소들. 분홍색 보라색의 과꽃 울타리…. 노인 몇 분이 길가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한담을 나누는 모습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어느 집에서나 문만 열면 하늘이 보일 것 같았다. 서학동(捿鶴洞). 학이 깃드는 마을이라니…. 마을 이름도 운치를 더했다.

서학동 거리. /전북일보 자료사진
서학동 거리. /전북일보 자료사진

전주천을 사이에 두고 교동이 있다. 남천교만 건너면 되니 엎어지면 코 닿는 데다. 그런데도 여기 서학동은 땅값이 쌌다. 가난하고 힘없는 노인들만 살고 있어서였을까?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낑낑대며 한참 올라가는 곳도, 도심과 인접한 변두리도, 재개발지역이니 뭐니 해서 땅값이 턱없이 비쌌다. 이렇게 모두 한곳으로 몰려가는 사이, 이 동네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통에 소박한 옛 모습 그대로를 묵묵히 지녀왔던 것이다. 그야말로 문화의 사각지대였다.

우리 부부는 이 동네에서 한옥 한 채를 샀다. 낡았지만 비교적 땅이 넓어 큰 마당을 가질 수 있게 된 게 가장 기뻤다. 처마 밑까지 우거진 철쭉이며 향나무 같은 것들을 모두 쳐내니 마당이 훤해졌다. 비틀어지고 썩어가는 기둥들을 튼튼한 목재로 바꾸고 기와도 새로 얹었다. 작업실까지 갖추어놓는 데 거의 일 년이 지났다. 새로 심고 가꾼 꽃나무가 제자리를 잡고 어엿한 주인의 자태를 갖추기까지 또 몇 년이 필요했다.

그 사이 평소 알고 지내던 이들이 하나둘 이사를 했다. 앞집, 옆집, 혹은 이삼십 미터를 사이에 두고 예술가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서학동예술마을이 만들어졌다. 이는 우연이지만,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운명이라면 너무 거창할까? 아니, 이 서학동이 우리를 찜해 놓고 있다가 불렀는지도 모른다.

 

△서학동 골목길

담장 너머 피아노며 장구며 기타 소리가 들려오고, 동네 어르신들 쌀집 앞에 앉아 콩이야 팥이야 우기시는 건 오늘도 마찬가지다. 교육대학 학생들이 싱그럽게 떠들며 지나간 자리에 문득 정적이 찾아온다. 물감에 얼룩진 앞치마 차림의 화가가 찻잔을 들고 거리에 앉아 있는가 하면, 동네 할머니들 한옥 마루에 모여 앉아 바느질을 한다. 앞으로 있을 행사에 직접 만든 옷을 입고 패션쇼를 할 예정이란다. 칠순 팔순의 할머니들이 난생처음 패션모델로 나서면서 들떠 있는 게 역력하다.

나른한 오후 이 동네의 골목길을 나는 자주 걷는다. 시골 할머니처럼 작고 등 굽은 골목을 끼고 고만고만한 집들이 붙어 있다. 팔을 벌리면 양쪽 담장이 손끝에 닿는다. 길섶에 담배꽁초며 개똥이 있을 때엔 숨을 참으며 지나가야 하지만, 밤새 눈 내린 다음 날 점심때가 다 됐는데도 발자국 하나 없던 길을 걸은 적도 있다.

발걸음을 옮기며 상상해 본다. 저 집엔 누가 살까? 이 길을 하루에 몇이나 오갈까? 시멘트 바닥 틈새에 노랗게 핀 좀씀바귀를 들여다보고 일어서면, 이리저리 휘고 뻗어나간 골목길은 미로가 되기도 한다. 만약 빵 하나 훔친 장 발장이 여기 숨어들었더라면, 이 골목은 그를 안아 주고 품어 주었을 것만 같다.

몇 년 전 다녀온 모로코의 페스(Fes)가 떠오른다. 페스는 서민들이 사는 곳이며 시장인데 몹시 좁은 골목길이다. 저만치서 짐 실은 당나귀가 나타나면 얼른 담 쪽에 몸을 기대고 비켜서야 한다. 고대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며 북아프리카 최대의 관광도시란다.

21세기 서학동의 이 작은 골목길에서 나는, 8~9세기 북아프리카 패스의 골목길을 떠올려 본다.

 

△초록바위 근처

어쩌다 시간이 좀 된다 싶을 때엔 초록바위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초록바위는, 싸전다리 건너 남부시장을 마주하고 있는 곤지산 자락 끄트머리에 있다. 바위에 늘 이끼가 끼어 있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팝나무 군락지로도 알려져 있는데, 사월 중순쯤이면 흰 꽃이 핀다. 나뭇가지 끝마다 하얀 꽃무리가 일렁이는 게, 허기진 눈으로 보면 쌀밥이나 백설기 떡으로 보였음직하다. 그래서 이밥(쌀밥)나무라 불렀단다.

그 옛날 위쪽 바위에서 처녀들이 달의 기운을 들이마시며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었다는데, 그 풍경이 저 꽃들의 무리와 같지 않았을까. 용감한 남정네 몇은 나무 그늘에 숨어서 훔쳐보기도 했을까….

풍류와 낭만이 있던 이곳은 조선 후기로 오면서 처연한 장소로 바뀐다. 전라 감영의 형장이었다. 바위 벼랑에서 죄인을 처형하고, 소나무 가지 끝에 잘려 나간 머리를 효수하거나 바위 밑으로 흐르는 전주천에 내던졌다고 한다. 많은 천주교인들과 동학농민군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서학동에 이사 온 후 초록바위에 얽힌 사연을 처음 알았다. 놀라웠다. 이런 장소가 까마득하게 잊히고 있다니…. 그냥 묻어버릴 수 없는 역사라 생각되었다. 몇몇이 의논한 끝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진혼제를 지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진혼제가 삼 년째 이어져 이제 전주시와 여러 시민단체들도 함께하고 있다.

 

△흑석골

내친김에 전주천 지류의 하나인 공수천 복개도로를 타고 ‘흑석골’로 향한다. 근처 산이 대부분 유독 검은 바위로 되어 있어 ‘흑석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바위가 검은색을 띤 것은 흑연이 많이 매장되어 있어서라고. 그래서 실제로 주변에 탄광이 있었다는 것. 금광은 아니었어도 한때는 개발업자들이 눈독을 들였음직하다.

내가 사는 집 근처 노인들은 흑석골을 ‘한지골’이라고도 불렀다. 1980년대 후반까지도 이곳에 한지공장이 많았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때 전주 외곽에 있던 지공들이 피란을 왔다. 그런데 계곡이 깊어 일 년 내내 물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이 끝났어도 여기 눌러 살면서 한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한지공장도 다 자취를 감추고, ‘한지골’이란 이름도 차츰 잊혀져가고 있다.

흑석골행 시내버스 종점에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노인이 들려준다. 삼백여 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당산나무라고.

“예전에는 순창, 구이 쪽에서 전주로 오려면 보광재 너머 흑석골을 지나야 혔어. 먼 길을 힘들게 걸어와 여기 흑석골에 이르러서야 게우 한숨 돌렸당께. 다들 이 나무 아래서 쉬었지. 동네 사람들도 여기 모여 마을 사람들의 안부를 나누거나, 크고 작은 일들도 의논혔을 것이고 말여. 지금은 외져 있지만, 전에는 여길 모르면 간첩이었당께.”

 

내 느린 걸음은 늘 이쯤에서 멈춘다. 여기서 학산 정상까지는 가본 적이 없다. 산행을 준비하지 않고 무작정 나선 터라 계곡을 따라 한참 가다가 돌아서곤 했다. 언제 제대로 한번 정상까지 가봐야지, 맑은 물에만 산다는 갈겨니 무리도 보고, 하늘다람쥐랑 숨바꼭질도 해야지, 하면서도.

당산나무를 지나 옆길로 방향을 튼다. 여기 와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집이 있다. 남천 송수남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 만년에 사셨던 곳. 한국 수묵화의 거장이자 서학동예술마을의 큰 어른이셨던 남천 선생님. 우리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분을 기억할 수 있는 푯말 하나 해드리지 못했다. 생전에 손수 가꾸셨던 찔레꽃 떨기가 담장 너머로 붉디붉어 바라보는 눈시울도 물들고 말았다. 잠깐이나마 연을 맺었던 서학동 예술인들에게 흑석골은, 남천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 자체이다. 땅과 집과 사람은 같이 숨 쉬고 같은 빛깔로 새겨진다.

 

△전주천변

서학동에 깃들어 살면서 전주천변을 자주 찾는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른 아침 운동 겸해서 나오겠지만, 나는 해 질 무렵이면 그곳에 간다. 내 작은 키에 비해 훌쩍 큰 그림자가 앞서는 걸 보면 어떤 때엔 든든하고 어떤 때엔 좀 쓸쓸해서 좋다. 천변엔 온갖 잡초와 야생화가 가득해 그야말로 생태학습장이다. 봄맞이꽃부터 시작해서 창포, 망초, 금불초, 여뀌, 쑥부쟁이 같은 꽃들이 철따라 제 존재를 알려준다.

나 여기 있어요.

봐요. 추운 겨울도 거뜬히 이겨냈다고요.

찬 서리 내리면 모두 시들고 이제 한 해의 끝을 장식하네요. 이제 일 년 후에나 만날 테니 그 동안 잘 지내세요.
안녕, 안녕. 그들과 안부를 나누면서 또는 흥얼거리며 가는 시간은, 하루 중에서 어쩌면 가장 나답게 보낸 시간인 것 같아 흐뭇할 지경이다.

전주천변의 사계 중에서도 나는 가을 길이 가장 좋다. 억새꽃 만발한 길을 소요하다 보면 내가 마치 영화의 주인공 같다. 사열하듯 줄지어 늘어선 억새꽃의 수군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전주천변의 억새. 박형민 기자
전주천변의 억새. 박형민 기자

몇 년 전, 이 근처에서 너구리를 본 적이 있다. 고 녀석은 억새풀 사이로 갑자기 나타났다. 놀란 것인지 멍한 것인지 나와 눈을 맞춘 건 불과 이삼 초? 그러고는 이내 억새밭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싱거웠다. 고 녀석을 보는 내 눈도 딱 그랬을 것이다. 내가 직접 목격한 적은 없지만, 전주천에는 수달도 살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그들 모두 안녕할까? 억새, 수크령, 갈대로 덮인 풀숲에서 낮잠을 늘어지게 자다가, 달 뜨는 밤이면 이태백처럼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어 달을 굴리며 놀지 않을까…. 헌데 좀 걱정이 된다. 한옥마을에 사람들이 저리도 많이 몰려오는데….

한벽당을 거쳐 승암사 아래에 이르면, 다시 되돌아올 시간이다. 그 사이 해는 기울기 시작한다. 이제 내 그림자를 응시하기보다 노을에 잠긴다. 청연루 너머 다가산 너머 노을은 그다지 멀지 않다. 한낮 은발로 눈부시던 억새꽃은, 이제 황금빛으로 염색되었다. 클림트의 <키스>가 떠오른다. <키스>가 남자와 여자 즉 인간의 것이라면, 저 광경은 억새와 노을, 그러니까 자연의 입맞춤이라고나 할까.

전주천을 사이에 둔 양쪽 길을 언젠가부터 ‘바람 쐬는 길’이라 부른다. 정말이지 더운 여름날에도 전주천 근처로 가면 시원하다. 여름밤 청연루에 와서 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걸 증명한다. 그러나 겨울날엔 이 바람이 그다지 달갑지 않다. 잠깐 지나는데도 그럴진대, 옛날 전주성 남쪽에 살던 이들에게 그 바람은 어땠을까? 거처하는 곳과 의복이 오늘날처럼 추위와 더위에서 인간의 몸을 완벽히 보호해주지 못했던 그 시절, 남루한 사람들은 이 바람이 얼마나 추웠을까?

바람을 쐬면서 청연루 교각을 지나고 이제 징검다리를 건넌다. 저만치 원앙이 헤엄치고 잿빛 두루미 하나 공연히 경계의 자세로 두리번거린다. 여기에 이르면 드디어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고 물소리도 커진다. 이제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주머니에 바람 한 줌 넣고 귓바퀴에 물소리 같은 음표 몇 개 걸고.

그림=신보름
그림=신보름

차량이 빈번한 천변 한길을 건너고, 다시 일방통행 도로로 들어선다. 이 도로가 옛날 남원 가는 큰길이었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또 멈칫거린다. 어딘가에 버스 정류장이 있을 것만 같다.

옛날 버스 정류장 있던 길목에 한 노인이 앉아 있다. 이 노인은 거의 매일 이곳에 나온다. 비가 내려도 눈이 내려도.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자꾸 묻는다.

왜 남원 가는 버스가 안 오지라우?

남원 가는 버스는 언제 올랑가요?

어떤 사람이 힐끗 쳐다보며 퉁명스레 대답한다.

여그선 남원 가는 버스 안 와요.

노인은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린다.

뭔 소리대여? 우리 친정이 남원인디, 여그서 버스를 타야 허는디? 왜 버스가 안 온대여?
나는 혼자 상상을 하며 주민센터 쪽 정류장이 있었을 법한 거리를 가만히 바라본다.
저기 어디쯤 빨간 우체통이, 그리고 공중전화 부스가 어른거린다.

 

사연 없는 길이 어디 있을까. 우리 사는 곳 소중하지 않은 곳 어디 있을까. 그러나 내가 서학동 길에 유독 애정을 품는 것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길들이 현대화에 묻혀 사라져 버리지 않고 잘 견뎌 주었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소박해서 오히려 살아남은 땅. 잡목이 산을 지키듯, 묵묵히 제자리를 지킴으로써 오늘날 옛 자취를 추억하게 해 주는 서학동. 그리고 그 주변 길들.

한나절 돌아다니다 내가 사는 서학동예술마을에 다다른다.

한 바퀴 돌아오면 문득 저 있던 자리가 유독 다정히 느껴지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터. 옛날엔 전주성 남문 밖이었을 서학동 몇 군데 행차에 한나절 땀은 좀 흘렸지만, 그래, 어떤 노래처럼,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는걸, 뭐.

/김저운(소설가)

 

* 1985년 <한국수필>, 1989년 <우리문학>으로 등단. 저서로는 소설집 <누가 무화과나무 꽃을 보았나요>, 산문집 <그대에게 가는 길엔 언제나 바람이 불고>, 휴먼르뽀집 <오십미터 안의 사람들> 등. 전북수필상, 작가의 눈 작품상, 불꽃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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