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8-08-22 15:19 (수)
[창간 68주년 특집 : 미륵사지석탑 복원과 전북 새 도약] 무너진 동양 최대 석탑 새 희망으로 다시 선다
[창간 68주년 특집 : 미륵사지석탑 복원과 전북 새 도약] 무너진 동양 최대 석탑 새 희망으로 다시 선다
  • 김진만
  • 승인 2018.05.31 19: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복원 20년만에 연내 마무리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석탑은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한국 석탑의 모태로 불린다. 300여년 전 미륵사지석탑의 서측면이 무너지자 사람들은 무너지지 않도록 석축을 쌓아 버틸 수 있게 했다. 1915년 일제는 사람들이 어렵게 쌓아놓은 석축에 콘크리트를 마구잡이로 덧씌우면서 흉물스럽게 변해버렸다. 1998년부터 미륵사지복원이 시작돼 꼬박 20년이 걸렀다. 마무리 공정이 한창인 미륵사지석탑 복원을 기점으로 전북의 새도약을 꿈꾼다.

백제 최대 사찰이었던 미륵사지에는 원래 3기의 탑이 있었다. 중앙에는 목탑, 동·서에 각 1기의 석탑이 균형감 있게 조화를 이뤘다. 중앙의 목탑은 언제 소실됐는지 기록에 없고 동탑은 무너져 현대식으로 새로 세워졌다. 지금 복원되고 있는 탑은 서탑이다.

서탑은 비교적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고 동북측면의 6층까지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발굴 조사당시 동탑지에서 노반석과 없어졌던 지붕돌이 출토되면서 9층탑이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과학적 기록을 토대로 복원된 미륵사지석탑은 높이만 24m에 달한다. 동양 최대의 석탑이다.

지난 2009년 1월 미륵사지석탑의 해체수리 중 발견된 사리장엄에서 발굴된 자료에는 건립연대가 639년(무왕 39)이라고 쓰여 있다. 미륵사탑은 현재 남아 있는 기록들을 통해 변천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가 멸망한 이후 ‘성덕왕 때 미륵사에 벼락이 떨어졌다’거나 조선불교총보에 실린 혜거국사 비문의 내용 중 후백제의 견훤시대인 922년 미륵사탑의 수리라는 글귀를 통해 미륵사의 각종 수난사를 짐작케 한다.

▲ 막바지 복원작업 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 1998년 복원이 시작돼 해체하는 데만 10년이 걸린 미륵사지 석탑은 올해 말 완전한 형태를 되찾게 된다. 박형민 기자
▲ 막바지 복원작업 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 1998년 복원이 시작돼 해체하는 데만 10년이 걸린 미륵사지 석탑은 올해 말 완전한 형태를 되찾게 된다. 박형민 기자

미륵사지석탑은 세계적인 건축과 견줄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석탑으로 불리는 미륵사지석탑은 목탑의 섬세함에서 기본적인 구조를 따왔다. 기단부를 목탑의 기단과 같은 단층으로 삼고 1층 탑신 네 곳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십자형 공간을 구성했다. 목조 건축의 섬세함이 그대로 묻어난 미륵사지석탑은 목탑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평가받는다.

백제가 낳은 미륵사지석탑은 석탑 문화를 탄생시켰고 이 원리는 이후 석탑에 조선시대에까지 모든 석탑에 응용되었다.

국내 1500개에 달하는 석탑 중 가장 어른으로 평가받는 미륵사지석탑은 여러 수난을 겪으며 많은 상처를 입었다. 1998년 안전진단을 실시하며 복원이 시작되었고 해체에만 10년이 걸렸다. 해체와 복원에만 225억원이 투입됐다. 해체하며 걷어낸 돌만 3000개, 이 중 72%가 복원에 다시 사용됐다.

석탑은 올해 말 복원이 마무리된다. 미륵사지석탑 복원을 통해 우리나라의 복원 기법이 한층 업그레이드 되기도 했다. 탑의 중심을 드나들며 소원을 빌고, 고통을 호소하며,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통로도 완벽 복원된다.

동양 최대의 석탑,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오래된 미륵사지석탑 복원을 통해 전북의 새도약을 기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