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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가
백로가
  • 김재호
  • 승인 2018.06.06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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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것이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

성경(잠22:24-25)에 나오는 이 구절과 비슷한 시조를 고려말 충신 정몽주의 모친이 지었다. 백로가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청강에 고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이 세상은 노를 품은 자와 울분한 자, 성난 까마귀 같은 자가 수두룩 하니 그들의 덫에 걸려 고통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이다.

세상 풍경을 멀리서 관조하면 너무나 아름답고 평온하다. 동진강 변에서 낚시 드리운 조사들의 한가로움, 멀리 펼쳐진 김제 지평선 들녘에서 모내기 하는 사람들, 잔잔한 파도를 가르며 수평선 저쪽으로 한없이 나아가는 어선 혹은 여객선, 운암호반에 두둥실 떠 있는 붕어섬 등 풍경은 세파에 찌든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쓰다듬어 준다.

속리산(俗離山)이란 이름은 그 붙여진 사연이 있다고 한다. 도(道)는 사람을 떠나지 않았는데 사람이 도를 멀리 하였고,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세속이 산을 떠났네. 어쨌거나,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산에서 도를 찾고자 안간힘을 쓰며 산을 찾아 오른다. 멀리서 바라보는 산, 바다, 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본 사람들의 풍경은 희로애락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먹고 사는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되면 사람들은 풍류를 즐기고, 도를 찾는다. 먹고 사는 과정에서 탐욕과 다툼이 생기고, 노를 품는 자와 울분하는 자가 생긴다. 갑과 을이 생기고, 그 사이에 정의가 바로서지 않으면 불화가 생긴다. 탄압받는 다수의 을들은 ‘참을 인(忍)’자를 천 번, 만 번 쓰며 마음을 다스린다.

그런 일을 제어하겠다고 만든 것이 법이고, 선거다. 4000년 전 함무라비 왕이 만든 법은 ‘눈에는 눈’으로 응징했다. 그게 통하지 않을 때가 적지 않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상징한다. 하지만 멍이 많이 들었다. 까마귀떼가 적지 않으니, 선비는 청강에 고이 씻은 몸 더럽힐까 두려워 한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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