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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여기는 러시아] 러시아에서 들린 부산 사투리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여기는 러시아] 러시아에서 들린 부산 사투리
  • 전북일보
  • 승인 2018.06.1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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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갓집이 어디냐고예? 부산 사상인데예?”

이국만리 러시아 땅에서 2018 FIFA(국제축구연맹) 러시아 월드컵을 취재하면서 부산 사투리를 듣게 될 줄이야. 금발벽안의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 스태프 사이에서 검은 머리의 낯익은 한국인 얼굴 하나가 ‘쑥~’하고 시야로 들어왔다. 고려인 4세 대학생 자원봉사자 박유리(19) 씨다.

박 씨는 ‘고려인 3세’인 아버지와 ‘부산 아가씨’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한국에 공부하러 왔던 아버지가 교환학생 모임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있던 어머니에게 흠뻑 빠져 버린 것이다. 열애 끝에 어머니는 멀리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시집와서 그를 낳았다. 그래서 그의 독특한 이름 ‘박유리’가 탄생했다. ‘유리’는 한국에서는 여자아이에게 붙이는 이름이지만 러시아에서는 흔한 남자아이 이름 중 하나다. 박 씨는 “러시아의 세계 최초 우주인 유리 가가린, 유명하잖아요? 하나 있는 남동생도 이름이 미샤에요. 박미샤!”라며 환하게 웃었다.

혈기왕성한 나이답게 한창 떠들어대는 박 씨의 입으로 러시아어와 부산 사투리가 번갈아 가며 나오는 모습은 진풍경이었다. 그는 “아버지와는 러시아어로 이야기하는 게 편하고, 어머니와는 부산 사투리로 이야기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며 “어머니는 지금도 전화 드리면 ‘밥은 뭇나?’ ‘일찍 일찍 안 댕길래?’라고 잔소리하신다”고 말했다.

석 달 전 러시아 월드컵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고 한국어 통역을 지원한 박 씨는 당초 규정대로라면 현 거주지인 모스크바에서 활동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월드컵위원회에 ‘나는 한국어가 특기니 한국 대표팀 경기가 열리는 니즈니노브고로드로 보내달라’고 요구해 끝내 허락을 받아냈다. 한국 축구의 우상인 손흥민을 비롯해 대표팀 선수가 눈앞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박 씨는 “손흥민 선수 때문에 러시아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축구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도 손흥민 선수를 선택하면 다들 ‘우와!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공격수가 한국인’이라며 다들 부러워한다”고 이야기했다.

재기 넘치는 답변을 이어나가던 박 씨가 또 한 번 취재진을 놀라게 한 건 바로 팔에 있는 독특한 문신이다. 박 씨는 오른팔에는 러시아어로 ‘로디나(조국)’와 불곰, 왼팔에는 한국어로 ‘모국’과 호랑이를 나란히 새겼다. 이중국적자 신분인 자신의 정체성을 예술로 녹여낸 거란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왼팔에 한반도 무늬 비녀를 한 새색시 문신까지 추가했다”며 자랑처럼 팔을 내밀었다.

‘월드컵 통역 봉사로 한국 대표팀에 일조했다’며 뿌듯해하는 박 씨의 다음 목표는 해병대에 입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해 그의 자랑스러운 문신이 결격 사유가 되는 바람에 입영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박 씨는 “어머니가 ‘부산 싸나이’라면 해병대에 가야 한다고 하셨고, 나도 멋진 해병대원이 되고 싶어 입대를 자원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며 “하지만 꼭 한 번 더 해병대에 도전해 볼 참”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니즈니노브로고드=한신협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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