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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의 여유
시선으로부터의 여유
  • 칼럼
  • 승인 2018.06.2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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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큼 보여 줄까 하는 여유 가졌으면
▲ 김승희 국립전주박물관장

여름 바캉스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이국의 풍광을 즐기기 위해 국외로 떠나는 여행객들이 매년 늘어나고 청년 이상 중년의 사람들이 모이면 해외여행 이야기로 대화의 꽃을 피우기 일쑤다.

굳이 발품을 팔지 않아도 TV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안방에서도 충분히 해외 여러 나라의 자연과 문화를 감상하는 호사를 누린다. 그 중에서 요즘 나의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유럽의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래뿐 아니라 유명 팝송들도 기량을 다해 불러주어 시청자가 충분히 귀호강을 할 수 있게 하고, 더불어 고풍스런 건축물들을 품은 아름다운 그 나라의 자연을 감상하는 눈호강도 하게 해준다.

그들은 내가 아는 한, 또는 느끼는 한, 우리나라 탑가수들이다. 당연히 거리의 구경꾼들은 그들의 노래에 감탄하고 소박한 환호의 박수를 보내는데, 마음 조리던 그 가수들은 그런 반응에 안도하고 시청자도 함께 뿌듯해하고 으쓱해한다. 이봐, 우리가 코레안이야, 우리 이 정도야, 알겠어? 하는 느낌이랄까.

아직도 한국인은 외국인의 호응에 유난히 배고파한다. 그리고 어린사람들의 음악이라고 관심 없던 K팝이 미국 빌보드에 상위권을 차지하면 그 그룹을 평소에는 몰랐어도, 노래를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어도 덩달아 어깨 으쓱하며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좋아한다.

‘방탄소년단’이 그만큼의 칼군무와 노래실력을 갖추기까지 기울였던 피나는 노력, 그것을 뒷받침한 소속사 스텝들의 노력이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 있었던 건 아니지 않겠는가. 그들의 아름다운 성공일 뿐이다. 그들의 성공을 애국으로 연결 짓는 행위는 요즘 젊은이들에겐 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전후세대라 불리는 기성세대가 살아온 세상은 국가의 탄탄한 설립 위에 개인의 성공도 있어왔지만 그 2세, 3세들에겐 국가의 존재감이 개인의 존재감보다 옛날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지향해나가는 국가발전형태도 개인과 인권이 우선 존중되고 국가는 서비스의 기능에 충실해져야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모티프를 딴 그 신선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온전히 릴렉스하게 즐기지만은 못하는 시청자 부류의 한 사람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한번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시청자로서 유명가수들의 노랫소리를 충분히 즐기는 것은 물론 호강이고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어디서든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고 충분히 자리매김되어 있는 가수들이다. 그들보다 아직 자리매김에 허기진 신인, 또는 무명의 실력있는 가수들(혹은 가수지망생들)이 우리나라에 많고 많은 걸 안다. ‘버스킹’이란 그런 이들에게 주어져야 할 무대가 아닐까.

외국인들이 우리 프로가수들의 노래실력에 얼마만큼 감탄하는지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었다면, 실력파 아마추어들이 도전하는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으로 포커스를 옮기는 건 어떨까 싶다. 그 아마추어들도 충분히 박수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박수를 받지 못해도 좋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승자독식으로 만연한 사회의 일면을 이 아름답고 여유로운 프로그램에서까지 내비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한다. 저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하는 두려움보다 그냥 나는 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큼 보여줄까에 핵심을 두는 여유로운 사회가 늘 그리운 심정에서 한번 욕심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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