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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 된 군산 근대유적
업그레이드 된 군산 근대유적
  • 김원용
  • 승인 2018.06.26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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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은 전북의 근현대사 전개 과정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로 꼽힌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집단거주와 광복 후 미군부대 주둔 등으로 일찍부터 외국문화를 접했고, 1990년대 대단위 국가산단 조성으로 지역발전을 견인했다. 군산은 또 바다를 옆에 두고 하늘길이 열려 있는 도내 유일한 곳이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지엠 군산공장 사태로 지역 전체가 요즘 시름에 잠겼지만, 새만금과 함께 군산의 발전 잠재력은 여전히 높게 평가되고 있다.

오늘의 이런 군산을 말할 때 개항의 역사를 빼놓을 수 없다. 개항 당시 군산은 지명처럼 그저 산이 많은 곳이었다. 갈대밭이 무성했던 허허벌판의 전형적인 어산촌이었으며, 거주 인구도 고작 500명 남짓이었다. 개항과 함께 일본인들이 물밀듯이 이주하면서 그야말로 핫플레이스가 됐다. 개항 당시 77명의 일본인 거주자가 10년도 안 돼 2000명을 넘어섰고, 1930년대에는 거의 1만명에 육박했다.

일제는 일본인 보호와 쌀 수탈 등을 위해 많은 기관들을 군산에 배치했다. 도심 주요 도로와 철도가 항구를 향해 뚫렸고, 세관과 우체국 등 관청과 은행·포목점·미두장 등 상가도 항만 주변에 집중됐다. 현재 군산관광의 아이콘이 된 군산 역사문화의거리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일제가 남긴 잔재들이 군산의 관광산업을 지탱하는 자산이 됐다는 게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의 건축물에 대한 보존과 철거를 두고 실제 군산 시민사회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제 제도를 도입하고, 군산시가 근대문화유산벨트화지구 사업을 통해 차별화된 역사문화 관광지로 정비하면서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문화재청이 최근 구 군산세관 본관의 사적 지정을 예고했다. 군산 구 법원관사와 구 조선운송주식회사 사택, 구 남조선전기주식회사, 빈해원은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구 군산세관은 1990년대 초 세관 신축 때 철거될 위기에 있었으나 당시 세관장의 노력으로 살아남아 국가 사적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구 세관과 달리 오랫동안 도서관 등으로 쓰이다 헐린 옛 군산부청사 건물이 아쉽다. 근대유산이 사적(史蹟)과 죽은 유적(死蹟)으로 갈린 역사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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