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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황혼
찬란한 황혼
  • 김은정
  • 승인 2018.06.28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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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해리 리버맨(1880-1983)은 ‘미국의 샤갈’로 불렸다. 강렬한 원색,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자유롭고 신비스러운 화풍으로 구축한 독창적인 세계 덕분일 것이다. 103세에 작고한 그의 창작 열정은 놀라웠다.

“나는 내가 백한 살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백일 년의 삶을 산만큼 성숙하다고 할 수 있지요. -중략-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지 생각하지 말고 내가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무엇인가 할 일이 있는 것, 그게 바로 삶입니다” 101세에 마지막 전시회를 열면서 그가 전한 이야기다.

사실 그의 직업은 화가가 아니었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그는 20대에 미국으로 갔다. 직물업, 제과업 분야에서 일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했지만 은퇴한 후에는 일선에서 물러나 노인학교에 나가기 시작했다. 체스로 소일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흔 살을 훌쩍 넘긴 나이, 용기로 시작한 그림은 그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전문적인 미술수업을 받은 적이 없는 그의 그림은 기성 화단 작가들의 그림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림 애호가들과 평론가들은 그의 천재성과 열정에 환호했으며 미술관과 콜렉터들은 앞 다투어 그의 그림 수집에 나섰다. 늦은 나이의 새로운 도전은 빛났다.

또 하나의 풍경이 있다.

경북 예천군 지보면 신풍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신풍리미술관’이라 이름 붙은 마을미술관이 있다. 지난주 TV 프로그램이 5월부터 이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를 소개했다. ‘남사스러운 그림전’. 참여 작가는 열여덟 명이다. 그런데 이들 작가들은 놀랍게도 평균 연령 80세 이상의 할머니들이다. ‘영감님과 나’를 주제로 한 그림의 수준도 놀랍다. 이미 세상을 오래전에 떠난 남편을 향한 그리움으로 그린 초상화나 평생 농사일과 자식 키우는 일로 살아온 할머니들의 자화상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할머니들이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7년 전이다. 고단한 농사일과 시집살이로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에 모여 그림을 그리며 가슴에 옹이가 된 마음의 상처를 털어냈다. 밋밋한 담장에 자신들만의 솜씨로 벽화를 그리고 경로당에 모여 앉아 그린 화투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관객들을 위로하는 화가가 된 할머니들의 찬란한 황혼. 놀랍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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