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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정도 1000년, 창조와 대안의 땅 '전라북도'] 고려 국제무역항 군산도, 한중 교류 역사 빛내다 - 외국 사신단·상단 머문 중세 서해연안 핵심 항구
[전라도 정도 1000년, 창조와 대안의 땅 '전라북도'] 고려 국제무역항 군산도, 한중 교류 역사 빛내다 - 외국 사신단·상단 머문 중세 서해연안 핵심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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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2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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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사신 서긍 파견 때 ‘고려도경’ 남겨 상세 기록
후백제 때 집중 성장한 듯…조선시대까지 중요한 역할
역사문화 콘텐츠 활성화해 위상 걸맞는 관광지 조성을
▲ 군산도(선유도) 망주봉일대. 고려유적이 집중된 공간이다.

△한국전통 해양 역사자원 보고 군산도(선유도)

전라북도 지역의 대표적 섬들의 공간인 고군산군도 지역의 중심 섬은 선유도 즉, 과거 고려시대 군산도이다. 이곳은 2018년 다리가 개통되어 이제 새만금 방조제를 통해 자동차로 진입할 수 있는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곳이 900여년 전 고려시대에는 당시 고려 최대의 대중국 국제 무역항이었다는 사실은 거의 모르고 있다. 선유도(군산도)가 역사기록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123년(인종 1년)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도경(高麗圖經)’이었다. 당시 송나라는 북방의 거란과 신흥하는 여진의 금 등에 의한 압박을 고려와의 외교를 통해 극복하려한 상황에서 서긍은 고려 예종의 조문과 인종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때 서긍은 송나라 황제 휘종의 명을 받고 고려 항해를 위해 특별 제작한 신주(神舟)를 타고 고려의 도성 개경을 왕래하며 특히, 첫 기착지인 군산도(선유도)를 비롯한 고려로 오는 뱃길과 고려 수도 개경의 정황 등을 상세히 기록한 ‘고려도경’을 남겼다.

선유도 지역의 지명 변천을 보면 1123년 남송의 서긍이 쓴 ‘고려도경’과 ‘고려사’기록에서는 군산, 군산도란 표현이 사용되다가 현재의 선유도지역에 설치되었던 고려시대 수군 본부인 군산진을 조선 세종때 육지지역인 지금의 군산시 진포지역으로 옮기면서 ‘군산’ 지명도 함께 이동하고 원래 군산도는 옛 지역을 의미하는 고(古)를 덧붙여 17세기 중반이후 고군산으로 불렸는 데 일제강점기 들어 군산(시)와 확실히 구분하기 위해 고군산은 ‘선유도’로 개명돼 오늘에 이른다.

이 군산도의 성격은 연안항로 및 대중 해로교류의 거점으로 기록에 나타난 것처럼 고려시기 쌀 등을 수송하는 조운(漕運)과 중국 무역선의 기항지로서 번영하였다. 즉, 선유도는 중세시기 서해연안해로에서 핵심항구였다. 조운선의 중간 기착지, 왜구 소탕의 전진기지, 외국 사신단과 상단 등이 머무른 곳이다. 사신단은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동남아 자바국까지 확인된다. 인근 십이동파도, 야미도, 비안도 바다에서 인양된 청자보물선으로도 설명된다. 또한 조선시대에도 중요항구로 활용되었고 특히, 1597년 9월 명량대첩에서 대승한 이순신장군이 일본군의 후속 공격을 피해 선유도로 피신해 머물며 지친 심신을 회복한 공간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역사공간이었다.

▲ 중국 영파시에 실물크기로 복원된 송나라 신주(神舟).
▲ 중국 영파시에 실물크기로 복원된 송나라 신주(神舟).

△고려 역사유적의 보고 군산도

군산도(선유도)지역의 해상교역의 거점 기능은 앞서 통일신라시대 완도를 중심으로 한 장보고선단의 활동과 이를 계승한 후백제왕 견훤에 의한 해상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계승한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변산반도의 가장 돌출된 지역에 위치한 백제 죽막동 제사유적의 존재를 고려할 때 백제 및 그 이전 마한-고조선시기이래 지속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후백제왕 견훤이 서긍이 출발한 항주일대지역에 위치한 오월국과 긴밀히 교류하고 사신 왕래가 있었던 사실을 고려할 때 선유도지역은 전주를 수도로 한 후백제시기에 집중적으로 성장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고려시기 국제 무역항인 군산도(선유도)에는 국제무역항에 걸 맞는 다양한 건물들이 있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고려도경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6일 정해에 아침 밀물을 타고 항행하여 진각(辰刻)에 군산도에 이르러 정박하였다.…그 산은 열 두 봉우리가 잇닿아 둥그렇게 둘려 있는 것이 성과 같다.…여섯 척의 배가 와서 맞아 주는데…접반사 김부식(金富軾)이…정사와 부사에게 군산정(群山亭)으로 올라와 만나주기를 청했다. 그 정자는 바다에 다가서 있고 뒤는 두 봉우리가 의지하고 있는데, 그 두 봉우리는 나란히 우뚝 서 있어 절벽을 이루고 수백 길이나 치솟아 있다. 문 밖에는 공해 10여 칸이 있고, 서쪽 가까운 작은 산 위에는 오룡묘(五龍廟)와 자복사(資福寺)가 있다. 또 서쪽에 숭산행궁(崧山行宮)이 있고, 좌우 전후에는 주민 10여 가가 있다.”/ ‘고려도경’

기록에 의하면 현재 망주봉 동쪽 봉우리의 기슭에 오룡묘가 있는데, 그 북쪽에는 자복사와 동쪽인 샛터마을 일대에는 객관인 관아, 망주봉 서쪽 봉우리 남쪽 기슭에는 군산정과 숭산행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이 고려시대 군산도(선유도)는 국제교류 및 해상교역의 전략적인 거점이자 고대의 해상문화와 동북아 무역 루트에서 중요한 바다의 길목이었다. 군산도는 또한 금강과 만경강, 동진강의 물줄기가 한데 모이는 새만금해역의 해상교통의 중심지로서 특히, 후백제가 오월과, 고려가 남송과 국제교류를 진행할 때 군산도가 국제교역의 거점항구이자 국제외교의 관문이었다.

△고려시대 전통선박 문화자원의 활용

따라서 현재 선유도는 단순한 해양관광을 위한 해수욕장과 휴양을 위한 시설 등으로 구성된 단순 해양관광지역이 아닌 중국 및 일본을 비롯한 국제적인 해양대국 백제의 전통을 계승한 고려의 국제무역항에 걸맞는 역사공간과 관련 문화콘텐츠가 활성화된 역사문화 관광지역이 되어야 한다. 현재 군산시와 전라북도에서 관련유적지가 팬션단지로 바뀌뻔한 상황을 막았지만 보다 적극적인 학술조사와 발굴 및 중장기 대책마련이 요청된다. 특히, 엄청난 예산이 투여되고 있는 새만금 개발에서 이같이 소중한 역사문화자원과 관련 내용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이제야 부분적으로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깊은 반성을 요하는 부분이다.

특히, ‘고려도경’기록에 나오는 송나라의 신주(神舟)와 고려 접반사 일행이 타고 온 대형선박 대주(大舟)와 순선(巡船), 군산도의 배인 송방(松舫)을 복원해 선유도의 역사성을 부각하고 관광용으로 활용한다면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 및 역사자원의 문화콘텐츠화를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자원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송방은 군산도의 배이다. 선수와 선미가 다 곧고 가운데에 선실 5칸이 마련되어 있고 위는 띠로 덮었다. 앞뒤에 작은 방 둘이 마련되어 있는데, 평상이 놓이고 발이 드리워져 있다. 중간에 트여 있는 두 칸에는 비단 보료가 깔려 있는데 가장 찬란하다. 오직 정사ㆍ부사 및 상절(上節)만이 거기에 탄다.”라고 하여 복원 가능한 고려시기 군산도만의 선박에 대한 문화자원을 보여주고 있다.

이같이 백제-후백제이래 해양역량을 보여주는 군산도의 고려시대 역사유적 공간과 해양 선박 문화자원을 활용한 선유도정비를 통해 전라북도 역사문화 관광자원의 새로운 확산을 기대한다.

▲ 조법종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 조법종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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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참 2018-06-29 23:47:41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