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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문화 활동과 심리적 자본
사소한 문화 활동과 심리적 자본
  • 칼럼
  • 승인 2018.07.0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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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영화·만화 등을 통해
심리적 자본 채워 넣는다면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을 것
▲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문화 활동은 예술 행위를 포함하여 사회관계 속에서 취하는 삶의 방식과 가치와 신념과 전통적 활동 등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특히 예술은 장르별로 인식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장르별 융합이 자주 일어난다. 이렇듯 예술을 포함하는 문화 활동이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고유한 정신과 물질, 지적·감성적 특성의 총체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문화 활동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생활 속에서 우리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예술 행위이건 지적 대화이건, 전통에의 몰입이건 간에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분명 폭력적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리적인 폭력 혹은 정신적인 폭력 혹은 그 둘 다 일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신이 무엇인가를 통해 즐기지 못하는 경우에는 늘 주변의 누군가를 대상으로 하여 삶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특성을 지닌 생명력 있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고, 움직임은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나타난다. 때로는 희생이라는 생활양식으로 누군가 상대방을 위한다는 생활방식을 끝내 고집하다가 결국 그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리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희생을 즐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삶의 방식일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현재 즐거운 상태인가를 확인할 책임이 있다. 즐겁지 않다면 곧바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 장르로 돌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최소한 영화관이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PC방으로라도. 그래야 비로소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활동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

프레드 루턴스(F. Luthans)는 2006년에 심리적 자본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가 말하는 심리적 자본은 모두 네 가지로, 희망(hope), 자기효능감(Efficacy), 복원력(resiliency), 낙관주의(optimism)이다. 이 네 가지 심리적 자본의 앞 글자만 따서 단어를 만들면 영웅(HERO)이 된다. 우리가 심리적 자본을 스스로의 방식으로 잘 축적하면 어느새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비유적 해석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어느 순간에도 이러한 심리적 자본이 자기 통장에서 제로 상태 혹은 마이너스 상태가 아닌지 꺼내보아야 할 것이다. 어디서나 손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통해서, 손쉽게 볼 수 있는 영화를 통해서, 손쉽게 읽을 수 있는 만화나 시나 소설을 통해서 이러한 심리적 자본을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다면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굳이 부러워할 필요가 없으리라.

심리적 자본과 유사한 개념으로는 정서지능 혹은 감성지수라는 것도 있다. 피터 샐로베이(Peter Salovey)와 존 메이어(John D. Mayer)가 일반적인 지능지수(IQ)와는 질이 다른 정서지능을 언급하였다. 즉 마음의 지능지수라는 것이다.

첫째, 자신의 진정한 기분을 자각할 수 있으며, 이를 존중하는 자기인식이다. 둘째 충동을 자제하고 불안이나 분노 같은 스트레스를 제어하는 자기관리 지능이다. 셋째, 어떠한 목표를 추구하다가 그 추구가 실패로 끝났을 때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격려할 수 있고, 계속적으로 동기유발을 하는 자기확신이다. 넷째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다. 다섯째 집단 내에서 조화를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수 있는 사회적 지능이다. 프레드 루턴스가 언급한 자기효능감과 복원력이라는 심리적 자본과 공통점이 있음을 눈치 채셨을 것이다. 정서적 지능은 아직 정형화된 테스트 방법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최소한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심리적 자본이 튼실해지는 여름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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