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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36. 금강 하구에 깃든 최무선의 기상 - 100척 배로 500척 왜구 물리친 600여년 전 함성 들리는 듯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36. 금강 하구에 깃든 최무선의 기상 - 100척 배로 500척 왜구 물리친 600여년 전 함성 들리는 듯
  • 칼럼
  • 승인 2018.07.05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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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화포 직접 제작…금강하구서 첫 실사용
세계 첫 함포해전으로 해상전투 획기적 변화
동백대교 상징성 부족 최무선대교가 나을 듯
▲ 1954년 해망동 피난민 집단촌.
▲ 1954년 해망동 피난민 집단촌.

해망(海望), ‘바다를 바라본다’는 의미가 담긴 군산의 아름다운 지명이다.

하지만 ‘해망’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지도와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1932년 옥구군 미면 신풍리 일부가 군산부에 편입되면서 비로소 ‘해망’이라는 명칭이 등장한다. 금강하구와 서해가 만나 지리적으로 조운이 활발했던 이곳은 일제 수탈의 현장이었으며 6·25 전쟁 후에는 피난민들의 집단촌이 있던 곳으로 민족의 애환이 담긴 장소이다. 집단촌이 사라진 지금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통로로 만들어진 해망굴(국가 등록문화재 제184호)이 6·25 전쟁 때 생긴 총탄 자국을 지닌 채 남아있다. 하지만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민족에게 더없는 큰 힘이 되어 준 곳이기도 하다. 바로 최무선 장군이 100척의 배로 500척의 왜군을 물리치는 대승을 거둔 ‘진포대첩(鎭浦海戰)’의 기개가 서린 자랑스러운 장소가 그 일대다.

▲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최무선 표준영정.
▲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최무선 표준영정.

최무선(崔茂宣, 1325~1395년)은 군인이자 과학자였다. 그가 화약을 만들고 진포대첩을 승리로 이끈 활약상은 『조선왕조실록(태조실록 7권』에 최무선의 졸기로 기록되어 있다. “검교참찬문하부사(檢校參贊門下府事) 최무선이 졸(卒)하였다. 무선의 본관은 영주요, 광흥창사 최동순의 아들이다. 천성이 기술에 밝고 방략(方略)이 많으며, 병법(兵法)을 말하기 좋아하였다. 고려조에 벼슬이 문하부사에 이르렀다. 일찍이 말하기를, ‘왜구를 제어함에는 화약만 한 것이 없으나, 국내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제7권.
▲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제7권.

최무선은 우리나라에서 화약과 화약을 사용한 무기를 처음 만들어 사용한 인물이다. 그가 화약과 무기를 만들게 된 계기는 고려 말, 왜구의 잦은 침략과 노략질을 보고 이를 막기 위함이라고 전해진다. 『태조실록(太祖實錄)』에 잘 기록되어 있듯이 최무선은 일찍부터 기술에 밝고 방략이 많았으며, 병법을 논하기를 좋아했다. 특히 각 분야의 책을 섭렵했으며 중국어에도 뛰어나 다양한 문물을 접하기 좋은 자질을 갖추었다. 일찍이 화약에 관심을 가진 그는 화약을 만드는 재료인 초석(硝石)·유황·분탄 중에서 유황과 분탄은 쉽게 구할 수 있으나 초석(염초)을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불꽃놀이와 무기에 사용된 화약과 화포(火砲)가 있었으나 화약 제조에 필요한 염초를 얻지 못해 수입하는 염초에 의존하고 있었다. 화약의 주요 재료 중 하나인 염초는 진토(塵土)에서 채취했는데, 중국은 그 방법을 극비로 하여 우리나라에는 그 기술을 아는 이가 없었다.

최무선이 직접 화약을 만들기로 결심한 때 중국은 원나라가 명나라에 넘어가는 혼란의 시기라 화약의 관리가 소홀한 시점이기도 했다. 화약의 제조법을 배우기 위해 최무선은 직접 중국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벽란도(碧瀾渡, 개성 인근 예성강하구 국제무역항)에 가서 초석의 제조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았다. 그러던 중 화약에 대한 지식이 많은 중국(원나라) 상인 ‘이원(李元)’을 알게 된다. 최무선은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후하게 대접하면서 화약 제조에 대한 집념을 보이며 설득을 했다. 최무선의 진심에 감명받은 이원은 초석을 추출하는 방법을 전수해주고 중국으로 돌아간다. 그 뒤 최무선은 홀로 실험하며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초석을 추출해 화약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최무선은 각종 화약을 이용한 무기 개발에 몰두하며 화통도감(火筒都監)의 설치를 여러 번에 걸쳐 조정에 건의했다. 결국 1377년(우왕 3년) 10월 화통도감이 설치되었고, 오랜 바람을 이룬 그는 3년간 화약 무기를 개발하고 병사들이 화약을 잘 이용할 수 있도록 포병부대를 양성하였다. 또한 무거운 화포와 포탄을 싣고도 견딜 만한 튼튼한 군선을 만들어 화약 무기와 훈련된 병사, 군함 등을 모두 갖추게 되었다. 그러던 중 1380년(우왕 6년) 8월 내륙으로 침입할 목적인 왜구가 500여 척의 군선을 이끌고 진포(금강하구, 지금의 전라북도 군산과 충청남도 서천군 일대)로 접근하자 고려 조정에서는 최무선의 화기를 시험해 볼 만한 기회라며 최무선을 부원수로 임명해 참전토록 했다.

원수 나세(羅世)를 필두로 심덕부와 최무선이 지휘하는 고려군의 수군은 왜선에 비해 5분의 1밖에 안 되는 군선 100여 척을 이끌고 출정하였다. 왜군은 500여 척의 거대한 규모로 위협적인 전세를 펼쳤으나, 화포로 무장한 고려 수군은 대규모 함포 공격으로 적선 500척을 모두 섬멸했다. 진포대첩에서 배를 잃은 일부 왜군이 내륙으로 퇴각하였으나 이를 추격한 이성계에게 남원 운봉 일대에서 섬멸되었으며 훗날 조선의 태동을 이끈 영웅담으로 기록되었다.

대승을 거둔 진포대첩은 고려군이 자체 제작한 화기로 거둔 승리였고, 군선에 최초로 화포를 장착하고 함포 전술에 따른 공격이 감행된 해상전투였다. 서양의 최초 함선으로 알려진 베네치아 해군의 초대형 군용 갤리선인 갈리아스선(Galleass)이 활약한 ‘레판토해전(1571년)’보다 200여 년이 앞선 진포대첩은 세계 최초의 함포해전이었다. 이로 인해 해상전투의 획기적 변화를 이뤄낸 최무선은 염초의 채취법과 화약의 제조법 등을 기술한 『화약수련법(火藥修鍊法)』, 『화포법(火砲法)』 등을 저술했지만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그의 지혜와 용맹함을 아꼈던 조선 태조 이성계는 그가 죽자 그를 총리(원수)로 추서했다.

최무선이 진포에서 왜구를 물리친 그해 아들 최해산(崔海山, 1380~1443년)이 태어났다. 『태조실록』에 따르면 최무선은 부인 이 씨에게 ‘아들이 장성하면 이 책을 주라’면서 화약제조의 비법이 적힌 책을 남겼다고 한다. 최무선이 71세로 죽었을 때 최해산의 나이는 불과 15세였지만, 최해산은 아버지의 비법을 전수받아 화약 제조법을 습득했다. 최무선의 뜻을 이은 최해산 역시 태종과 세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병조참판의 벼슬에 오르고 화약 병기를 비롯한 군 장비를 보강하고 발전시켰다.

▲ 군산 해망자연마당에서 바라본 건설 중인 동백대교.
▲ 군산 해망자연마당에서 바라본 건설 중인 동백대교.

최무선 장군의 기개가 깃든 금강하구 일대는 수많은 세월의 풍파를 거친 곳이다. 지금의 해망굴 옆에는 해망자연마당이 자리잡고 있는데 언덕에 올라보면 군산과 서천의 바닷길을 잇는 교량이 눈에 들어온다. 이 교량은 원래 군장대교라 불리다가 동백대교로 다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한다. 군산과 서천을 상징하는 꽃이 동백이어서 동백대교라 칭했다고 하지만 동백에서 바로 금강하구의 장소를 연상하기 어렵다. 동백이 유명한 남해안의 여타 지역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해상교량 중에는 지역에 그 흔적을 남긴 위인의 얼을 받들어 사람 이름이 교량의 이름이 된 곳이 있다. 광양과 여수를 잇는 ‘이순신대교’와 완도의 ‘장보고대교’가 그런 곳이다. 다리 이름만 들어도 그 지역에서 활약했던 위대한 조상의 업적과 지역의 역사를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작명이다.

▲ 국가 등록문화재 제184호 해망굴.
▲ 국가 등록문화재 제184호 해망굴.

군산과 서천을 잇는 해상교량의 이름이 동백대교라 확정이 되었다면, 그 일대에 역사적으로 큰 자취를 남긴 최무선 장군을 기려 ‘최무선대교’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해망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과 더불어 위대한 최무선 장군이 이룩한 이로운 기상도 품고 지역과 사람을 이어주는 희망찬 곳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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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구 2018-07-06 13:59:44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애칭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최무선교’로 바꿔야 합니다!

윤정현 2018-07-06 11:12:56
이 같이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인지 몰랐네요. 그렇다면 이 지역의 대표적인 시설물에도 최무선 장군의 뜻을 기릴 수 있는 이름으로 명명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역사에 흔치 않은 뛰어난 무인이자 과학자였던 인물을 교과서 안에만 숨겨두기엔 너무나 아쉬움이 큽니다.......!

won 2018-07-06 09:07:38
동백대교는 지역성이 잘 드러나지 않아 모호한 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최무선대교라는 다리 이름이 더 마음에 드네요^^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군산 지역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