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8-09-25 00:07 (화)
지팡이 - 임두환
지팡이 - 임두환
  • 기고
  • 승인 2018.07.05 21: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임두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이들이 많았다. 건강상 짚고 다닌 사람들도 있었지만 중절모를 쓰고 팔자걸음 걸으며 모양을 내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100세 시대여서인지 건강상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다.

지팡이는 ‘단장(短杖)’과 ‘행장(行杖)’이 있다. 단장은 짧으며 손잡이가 있는 것이고, 행장은 길면서 손잡이가 없는 것을 말한다. 얼마 전 TV에서 어느 노인정에 명아주 지팡이를 만들어 기증하는 것을 보았다. 그 뒤 나도 명아주 지팡이를 손수 만들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산불진화대로 선발돼 전주수목원 근처에서 근무할 때였다. 업무 특성상 관내를 순찰하는 일이 일상이어서 하루에 1만 보 이상은 걸어야 했다.

그런데 2월 중순쯤이었을까? 순찰하다 보니 길가에 묵정밭이 보였다. 그곳에는 대부분 개망초가 자리를 잡는 게 보통인데 뜻밖에도 내가 찾던 명아주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명아주는 들에서 자라는 한해살이 잡풀이다. 환경에 맞으면 키가 1~2m까지 자라는데 봄에는 어린 순을 데쳐서 나물로 먹기도 하고 생즙은 일사병과 독충에 물렸을 때 쓰인다. 또한 건위, 강장, 해열, 살균·해독의 효능이 있어 잎과 줄기를 말려 민간요법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을철에는 곧고 크게 자라서 가공하면 명아주 지팡이가 되는데 이것이 바로 지팡이 중에 제일이라는 청려장(靑藜杖)이다. 비록 나무가 아니라 일년생잡초지만 재질이 가벼우면서도 단단하고 질겨서 지팡이로는 제격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했던가? 바로 지팡이를 만들었다. 지팡이로 만들려면 가을에 줄기를 자르지 않고 뿌리째 뽑아야 한다.

지상으로 성장하는 경계점에 울퉁불퉁한 옹이가 있어 가공해 놓으면 이 부분이 마치 용의 형상을 나타내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겨울이 지나 봄이다 보니 뿌리가 썩어 어쩔 수 없이 밑동을 잘라야 했다. 그래서 비록 손잡이 없는 행장이 되었지만 아쉬웠다.

다 된 지팡이를 짚고 보니 지나온 세월이 뇌리를 스쳤다. 흙수저로 태어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에서 홀로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산비탈을 걸어왔다. 묵정밭에서 자란 명아주 역시 험한 세상을 이겨오며 뼈아픈 고통을 겪은 흔적이 마디마디 굳어진 옹이로 나타나 마치 나의 생애를 보는 듯 애처로웠다.

그래서일까? 명아주로 만든 청려장은 효자가 부모에게 바치는 선물이 되었다. 중국 명나라 때 의서 〈본초강목>에 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중풍을 예방하고 중풍이 걸렸던 사람도 쉽게 낫는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는 부모 나이 50이 되면 자식들이 명아주 지팡이를 만들어 드렸다고 한다. 부모들이 이 지팡이로 땅을 치고 걸으면 불빛이 환하게 일어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청려장이다.

이 지팡이는 주인이 집에 있을 땐 말 없는 문지기요, 문밖에 나서면 그림자처럼 따르니 어느 자식이 이 충직만 하랴? 요즘 들어 세상 좋아지다 보니, 등산용 플라스틱 지팡이가 판을 치고 있다. 그렇지만, 누가 무어라 한다 해도 지팡이 중 제일을 꼽는다면, 명아주로 만든 ‘청려장’이 존경받아 마땅하리라. 그보다는 100세 시대와 더불어 우리의 청려장 같은 효심도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두환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해 전북문인협회, 영호남수필문학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행촌수필문학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수필집으로 <뚝심대장 임장군>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