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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상징 폭력에 반하여
섬세한 상징 폭력에 반하여
  • 칼럼
  • 승인 2018.07.16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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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시대 문화예술 분야
양적 평가 우선함으로써
질적가치 무시되는 경향
▲ 조미애 시인·전북시인협회장

한때는 이름 난 화가의 전시회나 동숭동 연극을 관람하기 위해서 밤 열차를 예매하고 이웃집 아이들과 집단을 이루어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한 모습이 사라지게 된 것은 분명 민선지방자치 시대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주민의 선택을 받은 지방의 수장들이 지역문화예술정책을 공약하고 실천함으로써 굳이 서울행 버스를 타지 않아도 상당 수준의 문화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발전한 지역문화예술이 전문예술인과 예술동호인들의 간극과 차별화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적인 문화예술 영역은 본질적으로 일반인들의 문화적 인식과 구별된다. 예술동호인들의 다양한 활동은 개인적 만족감을 넘어 지역 주민의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주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전문 예술인들의 태도는 예술동호인들과는 서로 다른 아비투스를 생산한다. 예술동호인들의 행위는 전문예술인들의 형식을 모방하는데 주위를 집중하는데 반해 전문예술인들은 새로운 문화를 개발함으로써 더욱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행동은 우월한 것과 저급한 것이라는 이분법적 대립이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서 평가되기 때문에 전문인과 동호인에 대한 정체성의 충돌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전문예술인들은 스스로 문화의 대중화를 선호하다고 하고 있지만 희소성의 객관적 토대인 문화적 독특함을 보존하는 데는 불안해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에 살았던 장자(莊子)는 뛰어난 시인이었다. 그는 대지한한(大知閑閑) 소지간간(小知間間)이라고 했다.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여유가 있고 작은 지혜를 지닌 사람은 남의 눈치만 살핀다는 말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겸손하고 너그럽지만 지혜가 부족한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려고 애쓰며 사소한 것에도 시비를 가리려 한다. 그러기에 전문가는 진지하면서도 너그러워야한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분명해야 하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항상 이겨야한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이러한 장자의 가르침은 오늘 날 많은 시인들에게 문학적 상상력을 북돋아 주었으며 이것은 곧 예술적 상상력으로 승화되어 문화와 예술이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사실 정통문화에 대해 예술인들의 논쟁은 문화자본과 사회적 권력의 지배원리를 규정하기 위한 투쟁의 한 단면일 수 있다. 상당 부분 문화는 사회 계층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문화는 섬세한 상징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예술인들이 자신의 영역을 고집하고 생활동호인의 비전문적이고 비문화적인 요소를 비판만 계속한다면 지금보다 더 고립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게 될 것이 자명하다.

사회적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각각의 영역에서 서로 다른 자본을 동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양과 학식을 동일시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예술 작품은 구별 관계를 객체화한다. 예술동호인의 활동은 화려하게 활성화되어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다지만 전문예술인의 질적 성장을 추월할 순 없다. 높은 수준의 문화예술 미학은 유치하지 않으며 질박하고 소박하다. 더구나 수단의 절약과 같은 미덕에 가치를 둔다. 그럼에도 민선시대 문화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양적인 평가만을 우선시함으로써 질적으로 우수한 문화적 가치가 무시되고 상대적으로 지원이 부족한 것은 깊이 우려되는 일이다.

△조미애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이사이며 시집 <꽃씨를 거두며>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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