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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37. 함열산 조선음식 소개서 도문대작 - 미식가·문장가 허균, 유배지서 조선의 진귀한 맛을 읊다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37. 함열산 조선음식 소개서 도문대작 - 미식가·문장가 허균, 유배지서 조선의 진귀한 맛을 읊다
  • 칼럼
  • 승인 2018.07.19 19: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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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없어 굶주리며 지난날 산해진미 회상
전북 작설차·생강 등 지역별 공물특산 소개
당시 식생활 고증자료 지역 자산으로 가져야
▲ 허균 초상(허균 허난설헌기념관 소장본).
▲ 허균 초상(허균 허난설헌기념관 소장본).

 여름이 한창이다. 본격적인 더위를 알리는 초복을 시작으로 보신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음식에 대한 관심은 사실 시기를 가리지 않고 뜨겁다. SNS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에는 먹방 BJ, 맛집 블로거들이 등장했고,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서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는 스타급 음식평론가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 맛칼럼니스트의 원조격으로 조선시대 유명한 음식평론가가 있다. 함열(咸悅, 현 전북 익산시 함라)에서 조선 팔도 음식 소개서인 『도문대작(屠門大嚼)』을 저술한 ‘허균’이다.

▲ 허균의 『도문대작』(1611년).
▲ 허균의 『도문대작』(1611년).

“평생 먹을 것만 탐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스스로 칭한 허균(許筠: 1569~1618)은 『홍길동』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허균은 아버지 초당(草堂) 허엽과 형 허성, 허봉 그리고 여동생 허난설헌과 함께 허 씨 오문장가(五文章家)로 불린다. 그의 아버지 허엽은 강릉에 살면서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해 두부를 만드는 법을 개발한 자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까지도 그의 호를 딴 ‘초당두부’는 강릉의 명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가풍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음식에 대한 조예가 깊었던 허균이다. 그가 함열에 머물며 우리나라 팔도의 명물 토산품과 별미음식에 대하여 저술하게 된 이유도 분명하게 남아있다.

“죄인 허균을 함열현(咸悅縣)으로 귀양 보냈다. 허균은 총민함과 문장의 화려함이 근래에 견줄만한 자가 없지만, 망령되고 경박하며 또 행실을 단속하지 못하였다. 얼마 전 과장(科場)에서 부정을 행하였다가 잡혀 들어가 신문을 받았는데, 이때에 이르러서야 허균이 죄를 자백하니, 법률에 따라 단죄하여 전라도 함열 땅에 정배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광해군 2년(1610년) 허균을 귀양 보냄.
▲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광해군 2년(1610년) 허균을 귀양 보냄.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에 과거시험관이었던 허균이 조카와 사위를 부당하게 합격시켜 그 죄로 전라도 함열 땅으로 귀양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배지 함열은 허균이 자원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가 함열로 자원한데는 33세 때 전운판관(轉運判官)으로 호남에서 조운(漕運)을 감독하며 그 지역에 익숙한 까닭도 있다. 또한, 그의 다른 생활 근거지였던 부안과 가까웠으며, 당시 친분이 두터웠던 함열현감 한회일(韓會一, 인조대비 인열왕후의 오빠)과도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죄를 짓고 바닷가로 유배되었을 적에 쌀겨마저도 부족하여 밥상에 오르는 것은 상한 생선이나 감자·들미나리 등이었고 그것도 끼니마다 먹지 못하여 굶주린 배로 밤을 지새울 때면 언제나 지난날 산해진미도 물리도록 먹어 싫어하던 때를 생각하고 침을 삼키곤 하였다. 다시 한번 먹어보고 싶었지만, 하늘나라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처럼 까마득하니, 천도복숭아를 훔쳐 먹은 동방삭(東方朔)이 아닌 바에야 어떻게 훔쳐 먹을 수 있겠는가. 마침내 종류별로 나열하여 기록해 놓고 가끔 보면서 한 점의 고기로 여기기로 하였다. 쓰기를 마치고 나서 『도문대작』이라 하여 먹는 것에 너무 사치하고 절약할 줄 모르는 세속의 현달한 자들에게 부귀영화는 이처럼 무상할 뿐이라는 것을 경계하고자 한다. 신해년(1611, 광해군3) 4월 21일 성성거사(惺惺居士)는 쓴다.”

『도문대작』의 책명은 위나라 조식(曹植, 조조의 셋째 아들)이 『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에서 “푸줏간 앞을 지나며 크게 씹는 시늉을 함은 고기를 비록 못 얻어도 귀하고 또 마음에 통쾌해서다(過屠門而大嚼, 雖不得肉, 貴且快意)”라고 한 데서 따왔다. “푸줏간 문을 향해 입맛을 다신다.”라는 작명으로 이는 실제 먹지 못하고 먹고 싶어 흉내만을 낸다는 자족의 의미이다. 그가 조운을 관리하던 시절 귀한 음식으로 대접을 받은 기억으로 선택한 유배지가 막상 죄인이 되어 귀양살이하자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옛날에 먹었던 산해진미들이 떠올랐을 것이며 음식의 고마움을 넘어선 그리움에 그리고 부귀영화의 허망함에 대한 심정으로 미식가다운 체험기를 기록한 것이다.

허균의 호인 성소(惺所)를 따 그의 옛글을 정리한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총 26권)》 <설부(說部)>편에 수록된 『도문대작』에서는 병과음식(떡 종류) 11종목, 채소와 해조류 21종목, 어패류 39종목, 조수육류 6종목, 차, 술, 꿀, 기름, 약밥 등 조선 팔도의 명품 토산품이 적혀있다. 또한 서울의 계절 음식 17종과 방풍죽, 차수(칼국수), 두부 등 지역별 별미 음식이 소개돼 있다.

『도문대작』의 서문에서 “식욕과 색욕은 본성이며, 먹는다는 것은 더구나 생명과 관계되는 것이다. 선현들이 먹는 것을 바치는 자를 천하게 여겼지만, 그것은 먹는 것만을 탐하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를 지적한 것이지 어찌 음식을 제쳐 두고 음식 얘기는 하지도 말라는 뜻이겠는가?”라는 말로, 맛있는 음식을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기존의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 일임을 강조한다. 『도문대작』에 나온 음식들은 허균이 직접 맛본 체험을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다. “우리 집은 비록 가난했지만, 선친이 살아계실 때 사방에서 별미 음식을 예물로 보내는 이들이 많아 어린 시절 진귀한 음식을 두루 먹어보았다”라 하고 “부잣집에 장가가 산해진미를 다 맛보았다”라고도 써 놓았다. 그래서인지 당시 팔도의 이름난 음식을 적어 놓은 책 『도문대작』에는 음식의 맛과 향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장소나 그 지방에서 그 음식을 잘 만드는 사람이 누구인지와 같은 것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도문대작』에 나오는 지역 음식은 공물로 바치는 음식이 주류를 이룬다. 왕실을 핵심으로 여겼던 조선시대의 제도가 그 뒤에 숨어 있는 것으로, 임금에게 바치는 것이 중심이 되고 일반 백성이 좋아하고 상업적인 것은 뒷전이었던 당대의 사회상이 담겨 있다. 그러다 보니 허균이 『도문대작』에서 꼽은 전라북도의 특산으로는 변산의 작설차, 전주의 ‘생강’과 ‘크고 달다’고 표현한 ‘승도(천도복숭아)’와 ‘색이 복숭아꽃 같은데 맛이 매우 좋다’고 표현한 부안과 옥구에서 나는 ‘도하(桃蝦,도하새우)’와 부안의 것으로 그늘에서 말린 ‘녹미(사슴의 꼬리)’ 등을 뽑았다. 『도문대작』에 소개된 음식들은 당시에도 맛보기 힘든 진미들로 상류층의 식생활을 살필 수 있으며 시대가 변해 이제는 찾기 힘든 식재료에 대한 기록들도 상세하다. 이는 일제강점기 대중잡지 『별건곤(別乾坤)』에서 소개한 ‘진품(珍品)·명품(名品)·천하명식팔도명식물예찬(天下名食八道名食物禮讚)’ 등 조선시대 이후 글들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유명음식을 중심으로 소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식가이자 문장가인 허균의 삶 속에서 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족적이 우리 지역에 남아있다. 부안 기생 매창과의 인연으로도 알려진 허균은 음식과 문화적 향유를 남달리 즐겼지만, 가장 힘들었던 시절 그가 자조하며 남긴 기록을 통해 과거를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익산시는 국가식품클러스터로 지정되었고, 그가 입맛을 다셨을 푸줏간의 터도 함열 동헌터 인근에 어렴풋이 전해져 내려온다.

당시의 식생활에 대한 고증 자료로서 가치가 있는 『도문대작』과 이를 기록한 곳인 함열에 남은 허균의 자취를 지역의 자산으로 가져야 한다. 또한, 되풀이되는 역사의 수레바퀴 안에서 그가 겪었던 당대의 생활사도 세세히 살펴보며 그에 담긴 멋과 교훈도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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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 2018-07-20 09:12:03
매번 흥미로운 주제로 글을 쓰시네요. 이번 편은 평소 관심 있었던 음식문화와 관련된 글이라 더 재미있게 읽었네요. 다음 글도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