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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없는 미술관, 세병호에 거는 꿈
지붕 없는 미술관, 세병호에 거는 꿈
  • 칼럼
  • 승인 2018.07.23 20: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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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작가들 의욕 갖고
작업 이어갈 수 있도록
문화적 토양 만들어야
▲ 엄혁용 전북대 미술학과 교수

지난해 학회 참석차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방문했다. 2000년에 개관해 10여년 만에 한해 400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오는 런던의 명소로 자리잡은 이 미술관의 전신은 놀랍게도 화력발전소다. 2000년대 이후, 국가와 도시의 번성을 이끌었던 산업유산이 생명력을 잃은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새롭게 변신해 도시 발전의 동력이 되고 있는 예는 많다. 테이트모던 또한 그 대표적인 공간이다. 특히 프랑스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 등 거대한 조형물들이 설치된 테이트모던 앞 광장은 런던 시민들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의 휴식공간이 되었으니 예술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된다.

탄광산업의 쇠락으로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빠져있던 영국의 작은 탄광도시 게이츠 헤드 또한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북방의 천사조각상으로 이름을 얻어 해마다 수십 명이 찾아오는 도시로 탈바꿈했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공간을 색다른 예술적 시각으로 재생시켜 도시를 활성화시키고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 성공적 사례들이다.

몇 년 전부터 전주 에코시티에 위치한 세병호 호수공원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애초 35사단이 있던 이 호수공원은 아직 부대를 상징하는 기념물이 남아 있지만, 넓게 펼쳐지는 잔디마당이 일품이다. 35사단이 이전한 이후 에코시티로 이 일대가 개발되면서 세병호를 둘러싼 산책로와 공원은 인근 아파트 주민들뿐 아니라 전주시민들이 찾아오는 소중한 휴식공간이 되었다.

나도 그 중 한사람인데, 어느 날 세병호 산책길을 걷다가 문득 갖게 된 생각이 있다. 아름답게 펼쳐지는 호수공원의 잔디마당을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만드는 일이다. 넓디넓은 잔디 광장에 자연과 호흡하는 다양한 조형물이 놓이는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조각을 전공한 나에게는 무거운 짐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제자들의 창작열정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부재한 지역의 문화 환경이다.

조각은 공간성과 장소성이 확보되어야 작품의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는 특별한 영역이다.

전주는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수식어만큼 다양한 예술 분야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유독 조각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미흡하고 야외 전시공간(조각공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그 때문에 이제 막 새롭게 나아가려는 젊은 작가들이 꿈을 포기하거나 지역을 떠나는 현실은 안타깝다.

젊은 청년 작가들이 의욕을 잃지 않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을 이제부터라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좋은 통로가 있다. ‘세병호 지붕 없는 미술관’ 설립이다. 대단한 예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자치단체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세병호를 둘러싼 잔디마당에 야외 조형물을 설치할 수 있도록 기반만 조성하면 전주도 훌륭한 야외조각공원을 가질 수 있다.

해마다 졸업을 앞둔 예비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기성 작가들은 실험정신으로 구현해낸 조형물들로 교류하며 관객들은 일상에서 예술을 향유하는 공간. 말 그대로 지붕 없는 야외 미술관이 되는 것이다.

야외 조각공원(혹은 지붕 없는 미술관)은 단순히 작가들의 야외작품을 설치하고 감상하는 전시장으로서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긴 안목으로 보자면 문화예술의 씨앗을 심는 중요한 토양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조형물들은 회색의 도시를 생동감 있게 변화시키고, 장소가 갖고 있는 역사와 힘을 기억하게 해주는 통로도 된다.

여름 폭염에도 비지땀을 흘리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제자들을 본다. 지붕 없는 미술관 설립의 꿈이 더 간절해진다.

△엄혁용 교수는 홍익대 미술대학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민대 디자인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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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용 2018-09-25 09:14:33
멋진발상입니다. 이제 전주도 제대로 된 조각공원이 생기겠군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