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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리꾼의 '백일공부'
옛 소리꾼의 '백일공부'
  • 김은정
  • 승인 2018.07.26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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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명창의 목에 불끈 힘줄이 솟았다. 고수의 북채는 멈추고 객석은 숨을 죽였다. 명창의 소리에 온 정신을 몰입하는 경지. 정적의 순간은 치열함의 절정이다. 명창의 얼굴은 땀으로 젖었다. 소리의 생명은 얻었다가 그 순간 다시 소멸되는 무형의 존재다. 얻고 버리는 과정, 그 순간의 절정에 이르기 위해 소리꾼은 고행의 소리수련을 기꺼이 선택한다.

여름 더위가 치열해지는 이맘때면 소리꾼들의 여름 ‘산 공부’가 시작된다. 올해도 스승과 제자들의 산공부 소식이 들려온다.

이즈음 이루어지는 산공부는 옛 소리꾼들이 명창이 되기 위해 지켜냈던 ‘백일공부’가 변형된 형태다.

판소리 수련의 목표는 판소리를 하기에 좋은 목소리를 얻는, 이를테면 득음하는 일이다. 판소리에 좋은 목소리는 좋은 음색과 판소리에 필요한 모든 표현 기능을 갖춘 소리다. 그 소리는 건강하고 정상적인 성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리를 가해 거칠고 부은 성대에서 나오는 목쉰 소리다. 여기에 명창의 반열에 오르려면 이 병적인 성대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는 일, 다시 말하자면 창조적 변이의 과정이 더해져야 한다.

그런데 득음과 창조적 변이형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일은 스승에게 배우는 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른바 자기 수련의 치열한 과정이 필요하다. 소리꾼들은 이 과정을 ‘백일공부’라 부르며 중요한 수련과정으로 삼아 꼭 거쳐야 하는 범례로 삼았다. 판소리에 적합한 목쉰 소리를 낼 수 있는 거친 성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장기간 집중적으로 성대를 단련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판소리연구가 최동현 교수에 따르면 백일이라는 시한을 정해놓고 깊은 산속이나 절간에 들어가서 집중적으로 소리를 공부하는 백일공부는 대개 단오에 들어가 추석에 나오는데 그 시간이 꼭 100일이었다. 그 한 가운데 맹렬한 여름 더위가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판소리는 소리와 소리를 결합하고 소리로 소리를 이기는 화해와 대립의 연속이다. 판소리의 판은 무대와 객석이 따로 가지 않고 끊임없이 소통한다. 자기 수련의 과정으로 삼았던 옛 소리꾼들의 ‘백일공부’가 이어낸 판소리만의 세계일 터다.

오늘날 옛 명창들이 지켰던 ‘백일공부’의 온전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시대가 변했으니 판소리의 환경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름 폭염에 맞서 싸우며(?) 소리공부에 전념하는 소리꾼들의 산공부가 그래서 더 반갑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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