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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그 여름 숲길 - 한지선
[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그 여름 숲길 - 한지선
  • 기고
  • 승인 2018.07.2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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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걷는 것은 마약과 같다. 어느 순간 숲에 들지 않으면 목마른 것처럼 갈증이 난다. 섬세한 활엽수들로 꽉 찬 숲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난다. 여름엔 태풍이 있고, 폭우가 쏟아지면 드센 물살이 넘어지고 뒤집어지며 아래로 아래로 내달리는 풍경. 숲도 태풍을 겪으면 아프고 상처받은 후에야 다시 고요해진다. 고요한 숲엔 깊은 자정의 한숨 같은 체취가 배어 있다.

그것들이 머금은 그리고 내뿜는 공기 속에 푹 젖으면 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마치 파도치는 바다를 앞에 두고 앉아 있으면 속이 뻥 뚫리는 것처럼.

― 녹음이 짙은 숲속에서는 나무 숲속에서 뿜어내는 방향성 물질이 있는데 이 물질을 피톤치드라 하며, 나무가 자라는 과정에서 자신을 보호하려고 내뿜는 물질로 자체에 살균, 살충, 성분이 포함되어 있으며, 나무가 왕성하게 잘 자라는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많이 발산하며, 사람이 피톤치드를 호흡하면 피부와 마음이 맑아져 안정을 가져오며….

백과사전엔 그 공기에 대하여 그렇게 쓰여 있었다. 숲, 피톤치드.

나는 도시와 시골집을 오가며 살고 있다.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마당을 가꾸며, 일주일의 반을 지내는 시골집 작업실은 내장산이 눈앞에 버티고 있다. 그래서 일주일의 반 중 하루를 내장산 숲길을 걷는다.

유월 어느 오후, 씩씩하게 숲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인사를 했다. 늘 꿈꾸기는 했다. 이 숲길에서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그런 생각. 그러나 걸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스치는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다. 숲을 향유하기 위해서 숲의 소리와 냄새와 바람에 몸을 맡기고 그저 걷는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걷고 있는데 약간 먼 거리에 있던 나무 아래 벤치에서 누군가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해서 깜짝 놀라 그 와중에 안경을 꺼내 쓰고 그에게 가까이 갔다. 가까이 가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바퀴가 초록색인 근사한 자전거를 손으로 잡고 서서 싱긋 웃고 있는 키가 훤칠한 꽃미남.

잘 아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친근한 사람에 속하는 젊은 성직자이며, 언니의 제자인 그를 숲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는 예쁜 초록색 베네통 자전거를 끌고 내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오후가 저무는 시각이었다. 나의 코스 나머지를 자전거를 끌며 같이 걷고 되돌아서 숲길을 걸어 내려왔다.

그림=신보름
그림=신보름

숲길을 걷는 내내 무언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어폰을 꽂고 있던 나는 이어폰을 내렸고, 끝없이 단풍나무로 이어진 내장산 숲길을 걸었다. 왠지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는데 숲길 어딘가에 주차해 놓은 내 차 가까이 가서는 끊이지 않는 이야기로 어두워질 때까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는 아직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고, 방학이 되어 내 작업실 가까운 정읍시의 집으로 와 있던 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숲으로 와 책을 읽다가 나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별로 말을 나눠본 사이는 아니었다. 식구들하고 언니와 만났을 때 언제부턴가 그 옆에 그가 있었고, 몇 번 인사를 나눈 게 다였다. 그런데 무척 친근했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라도 할 수 있을 듯싶었다. 우리는 외로움과 그리움과 슬픔 같은 감정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외로울 때 하는 행동에 대한 윤리적 잣대와 어쩌면 윤리와 상관없는 그들 감정에 대해 격론을 벌였다.

숨 쉬고 살아야 하는데 자꾸 숨을 참으라고 하는 것 같은 그 잣대라는 것의 잔인함에 대하여, 혹은 인간의 도덕이나 윤리적 지표에 의한 행동양식은 진정한 것인가, 혹은 그냥 원하는 대로 하면 나쁜 것인가, 등등… 여기서 표현하기는 어려우나 그날 나눈 격론은 매우 현실적인 세태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 스스로도 다 겪고 있는,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삶의 굴레에 대한 얘기였다.

지나고 보니 그날 나눈 대화들은 불쑥 꺼낸 내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 그것은 오직 사랑뿐이다”라고 나는 말했다. 코엘료의 책 <불륜> 뒤표지에 적혀 있는 말이었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것의 언저리를 형성하고 있는 많은 감정들과 거미줄같이 얽혀 있는 줄과 그 거미줄에 걸려 헐떡이거나 죽거나 숨죽이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났고, 이윽고 어두워져서 그는 자전거를 타고 내려갔고 나는 내 차에 올랐다. 그리고 저녁에 아쉬운 이야기를 다시 나눠야 한다고 해서 저녁에 다시 만나 이야기를 계속했다. 결론은 없었다. 우리는 그냥 살아봐야 하고, 사는 것을 보면서 깨닫고 느끼고 고개를 저을 것이다. 우리는 빙수를 먹으면서 그렇게 서로에게 위로하듯 말했다.

아무튼 결론은 필요 없었다. 숲이 있었으므로. 어쨌든 살아봐야만 아는 것들이므로.

 

인간의 이야기들은 복잡하나 숲은 고요하다. 우리는 그런 격론은 아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더워지기 전에 사랑의 다리가 있는 원적암 코스를 오르기로 했다. 숲이나 걷자고.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나는 더위를 심히 타는 사람이므로 입을 열면 안 되었고, 그저 묵묵히, 천천히 산을 올랐다. 여름에는 죽어도 산을 못 오르는 사람인데 중간쯤 가서야 그것이 생각났고, 그냥 내려가기에는 너무 늦어 있었다.

더워지기 시작하면 숲길도 걷기 힘들다. 그날이 그 여름의 숲길 걷기 마지막이었다. 장마가 시작되면서 폭우가 내린 후 거친 물살을 보기 위해 달려갔고, 장마가 끝나면 숲에 들기 어려울 만큼 더웠으므로 가지 못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될 무렵, 그는 오후가 되면 나의 작업실로 와서 노을을 보러 다녔다. 우리는 오래된 북면천의 둑길을 걸으면서 날마다 노을을 마중하러 나갔다. 칠월부터 팔월의 반을 넘기면서 노을을 실컷 보러 다녔다고 할까. 때론 모항의 언덕 위에서, 적벽까지 노을을 보기 위해 차를 몰고 다녔다.

그해 여름이 그렇게 끝났다. 구월은 다시 숲이 소곤거리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숲은 고요하지만 늘 속삭임이 있었다. 여름의 뜨거운 양광을 담뿍 받은 단풍나무들은 조용히 여러 가지 감정처럼 각기 다른 색들을 띠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감정이 미묘하듯 숲은 미묘하고, 숲길을 걷는 것은 뭔가 평화롭다. 내적인 평화가 무엇인지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고요한 아름다움이라고 느낀다. 숲이 그렇다.

학기가 시작되어 학교로 돌아갔던 그는 가을에 어쩌다 자전거를 갖고 숲길에 나타났다. 집에 올 때면 그도 늘 숲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탔으므로. 우리는 몇 번 더 같이 걷던 그 숲길에서 코엘료의 그 말에 대해 언급하였고, 그는 남녀 간의 사랑 말고, 더 큰 사랑에 대해 논하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사랑에 대하여 얘기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부딪쳤고, 격론을 벌이곤 했으나 결론은 없었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그것이 결론이었다. 혹은 결론은 필요 없었다. 우리는 숲길을 걸었고, 그것으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나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나 향긋한 나무 향기나 바람에 날리는 풀덤불처럼 우리의 이야기들은 스쳐 지나갔고, 또 언젠가 스쳐 올 것이었다. 숲을 스쳐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한지선(소설가)

* 장편소설 『그녀는 강을 따라갔다』, 『여름비 지나간 후』, 소설집 『그때 깊은 밤에』, 『여섯 달의, 붉은』이 있다. 9인테마소설집 『두 번 결혼할 법』과 『마지막 식사』를 냈다. 제1회 전북소설문학상과 제2회 작가의눈작품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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