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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개인과 문화 활동
불안한 개인과 문화 활동
  • 칼럼
  • 승인 2018.07.3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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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즐거움·자존감 회복으로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어
▲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과 노동이 결합되어 상품이 생산된다. 생산된 상품은 팔려야 한다. 팔리지 않으면 그 상품의 가치는 인정되지 않고, 폐기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팔리지 않지만 의미 있는 상품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안타까워하지만, 이 생산과 유통과 소비 단계의 전 과정은 엄격한 편이고, 결과적으로 냉정하다.

우리 개인들은 이 생산과 소비의 전체적인 순환 과정에서 두 가지 이상의 정체성을 갖는다. 생산자이고, 소비자이기도 하다. 물론 유통과정에 관계되기도 한다. 생산자일 때는 소비자의 수요를 고려하지만, 소비자일 때는 사실 생산자를 고려하는 경우가 드물다. 소비자일 때는 거의 대부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된다.

다만, 이 욕망이 간단치가 않다. 소비자로서 뭔가를 소비하고자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외 없이 망설인다. 욕망을 충족시킬 최적의 상품을 선택하기 위한 판단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욕망의 변덕이나 무가치한 욕망에 대한 고려는 주로 생략되는 것이 이 시대의 특성이기도 하다. 너무 망설이는 경우로 인해 최근에는 ‘결정 장애’라는 개념도 생겨났다.

망설이는 이유는 선택 행위 이후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후회가 예상된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든가, 적절한 것이 선택되지 않았다든가, 더 좋은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든가하는 부정적 자책이 꼬리를 문다. 게다가 성장기 내내 부모나 스승에게 질책당해 온 역사도 자책을 강화시킨다. 자책의 경험이 누적되면 자신이 선택한 것을 믿을 수 없게 되며, 결국에는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불안한 삶의 경계에서 오락가락 하게 된다. 물론 소비할 자원이 풍족해 후회 없이 관련 상품을 모두 구매해 버리면 망설임이 줄어들지 모른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이라면 최소한의 자원은 있으므로, 자원의 양만이 중요변수는 아니다.

불안은 문화 활동을 통한 즐거움과 자존감 회복으로 극복이 가능하다. 물론 문화 활동이 늘 즐거운 것은 아니다. 예컨대 예술 장르 중 악기 연주의 경우 기능적인 연습시간에는 뜻대로 되지 않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시기를 넘기고 나면 조금씩 즐길 수 있게 된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머리와 몸을 맑게 하고 나면 삶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노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고, 노는 자신을 허용하게 된다. 삶에 여유가 생긴다.

즐기는 시간에는 불안이 범접하지 못한다. 즐기지 않는 생명체가 있을까. 물론 그 즐거움도 지속되지 않는다면 참으로 허무할 것이다. 따라서 즐거움도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욕망이 품고 있는 가치에 대한 고려를 생략하는 이 시대의 트렌드를 거슬러 욕망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는 지혜도 요청된다.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 저자 오연호가 만난 덴마크 인이 ‘덴마크 사회는 불평등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했듯이 모든 인간은 각기 장점을 살려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많이 아는 사람은 나눠 줘야 하고, 필요 정보는 적극 섭취해야 한다. 나누고 배우는 관계는 언제나 역전될 수 있다. 루스 그레엄(Ruth Graham)의 묘비명은 ‘공사 끝. 그동안 참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End of construction, Thank you for your patience)’이다. 우리는 주로 ‘공사 중’인 채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도 평등하다. 그 와중에 주어지는 문화 활동할 수 있는 시간들에 감사하며 즐기고 나누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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