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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길, 진보의 길
노회찬의 길, 진보의 길
  • 칼럼
  • 승인 2018.07.3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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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부르는 변화는
거창한 방식이 아니라
개인의 마음에서 온다
▲ 본보 객원논설위원
▲ 본보 객원논설위원

부족한 농부는 잡초를 키우고, 보통 농부는 곡식을 키우지만, 뛰어난 농부는 흙을 키운다. 이웃 일본 농부들 사이에 전해지는 가르침이다.

약자와 소수의 편에서 평생을 바친 진보정치의 아이콘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얼마 전 세상과 결별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80년 용접공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해 37년간 고달픈 진보정치 무대의 주연으로 살아왔던 그의 죽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 못지않게 우리에게 큰 울림을 남긴다.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지 않았던 돈을 거부하지 못했던 자책과 부끄러움으로 몸을 던진 그의 선택은 수없이 봐왔던 속물 정치인들의 뻔뻔함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울림의 크기와 깊이를 넓고 깊게 한다. 척박한 국내 진보정치 토양에서 궁핍함을 겪던 시절의 일이어서 더욱 그렇다.

자신이 쌓아 올린 정의와 도덕의 성안에 스스로를 엄히 가두고 살았기에 단 한 번의 일탈조차 자기합리화하지 못했던 비운의 정치인이 남긴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죄송하다. 저를 벌해주시고, 당은 계속 아껴 달라”는 마지막 당부에서 우리들의 이기적인 삶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얼굴을 붉히게 된다.

노회찬의 정치 역정을 되짚어보면 그가 꿈꾸었던 세상이 미국 하버드대 하워드 가드너 교수 등이 20년 넘게 벌여 온 ‘굿 프로젝트’와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굿 프로젝트는 바른 사람, 바른 노동자, 바른 시민을 길러 사회를 변화시키자는 운동이다.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바른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내가 달려가 돕는 사람이며, 바른 노동자는 훌륭하고 참여적이며 도리에 맞게 사는 삶을 위해 공정한 방식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들이고, 바른 시민은 규칙과 법을 알고 보살피며 윤리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으로 자기만 성장하지 않고 ‘어떻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는 거예요. 세 가지가 함께 이루어진다면 바른 사회가 되겠죠”라고 했다. (안희경의 ‘문명, 그 길을 묻다’ 中)

굿 프로젝트를 기준으로 노회찬은 바른 사회를 위해 바른 사람으로, 바른 노동자로 살았지만 바른 시민의 법과 윤리 덕목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노희찬은 바른 시민의 더 중요한 덕목인 자기만 성장하지 않고 ‘어떻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훌륭한 농부는 흙을 키운다.’는 가르침에 빗대보면 노회찬의 생애가 척박한 한국 진보정치 토양에 생명의 싹을 틔운 소중한 거름이었다는 평가조차도 부족하게 다가온다.

실제 노회찬의 진보 토양 키우기는 지난 6·13 지방선거 때 전북의 투표 결과에서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둔다. 도민들은 정당투표에서 12.8%라는 전국 최고의 지지율로 정의당을 전북 제1야당으로 세운다. 그가 세상을 등지자 정의당 당원 가입이 늘고 당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 또한 노회찬 효과라는 보도다.

순교마저 연상케 하는 그의 선택에 대해 잡초만 키우는 농부를 빼닮은 한 정치인은 ‘자살 미화 풍토’라고 막말을 해댔지만 역설적으로 노회찬의 부재 때문에 그 존재의 소중함을 알게 된 국민들은 비통함 속에서도 제2의 노회찬을 고대하는 모습이다.

“진보는 거창한 방식으로 오지 않는다. 진보를 부르는 변화는 개인의 마음에서 온다.” 당대 대표적 진보 지식인으로 교수직을 내려놓고 농부로 살아가는 미국 1세대 환경운동가 헨델 베리가 동시대의 시민 개개인에게 던진 일갈을 곱씹으며 8월의 첫날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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