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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38. 남원빙고와 진안풍혈 - 자연이 내린 선물…선조들도 한여름에 겨울 즐겼다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38. 남원빙고와 진안풍혈 - 자연이 내린 선물…선조들도 한여름에 겨울 즐겼다
  • 칼럼
  • 승인 2018.08.0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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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빙고
요천변 산기슭에 동굴 파
얼음·백급가루 넣어 보관
정유재란 때 부상자 치료

진안 풍혈
여름엔 냉풍 겨울엔 온풍
땅속 굴 통해 구멍들 연결
냉천에선 사철 냉수 솟아
▲ 겨울에 채취한 얼음을 보관하던 남원 빙고 입구.
▲ 겨울에 채취한 얼음을 보관하던 남원 빙고 입구.

덥다. 폭염이 극성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불볕더위가 이어지자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무더위를 식혀주는 얼음덩어리와 얼음물을 제공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더위 나기’는 예나 지금이나 같아 선조들도 찬 바람이 나오는 시원한 장소를 찾았고, 나아가 겨울철 얼음을 여름까지 보관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얼음 창고인 빙고(氷庫)를 만들었다. 지금이야 얼음을 언제든지 얻을 수 있고 에어컨과 선풍기로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지만, 과거에는 천혜의 자연조건이 아니라면 많은 공이 필요한 게 얼음이었다. 이와 관련 있는 남다른 장소로 우리 지역에는 남원의 빙고와 진안의 풍혈이 있다.

▲ 요천 인근 산책로에서 바라본 남원 빙고.
▲ 요천 인근 산책로에서 바라본 남원 빙고.

여름에 얼음을 얻는 것에 대한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전의 일로 중국에는 진시황이 빙고를 사용했다는 기록과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관련 기록과 유적이 남아 있다. 신라 지증왕 6년(505년), “겨울 11월 처음으로 담당관에 명하여 얼음을 저장하게 하였다(冬十一月 始命所司藏氷).”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에도 “유리왕이 장빙고(藏氷庫)를 지었다.”고 하고 『삼국사기』 직관지(職官志)에는 얼음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관아인 ‘빙고전(氷庫典)’을 두었다고 했다. 또한 백제는 세종의 나성리, 화성의 상남, 공주의 정지산, 부여의 구드래, 익산의 금마 등의 유적에서 빙고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고려시대부터는 장빙(藏氷, 얼음을 떠서 빙고에 넣는)하고 개빙(開氷)할 때 사한제(司寒祭) 혹은 기한제라는 제사를 지낸 기록이 있으며 얼음을 나누어주는 반빙(頒氷)제도가 있었다. 또한 충렬왕(1297년) 때는 모든 백성도 얼음을 저장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장빙법을 실시하였다.

▲ 『경국대전』 얼음을 나누어주는 규례.
▲ 『경국대전』 얼음을 나누어주는 규례.

조선시대 1396년(태조 5년)에 이르러서는 한강변에 동빙고(東氷庫, 현 서울 옥수동과 동빙고동)와 서빙고(西氷庫, 현 서울 서빙고동)를 두어 예조에서 직접 관장하였고 궁궐 내에는 내빙고(內氷庫)를 두어 얼음을 저장했다. 4치 이상(약 12~14㎝)의 두께로 채빙한 동빙고의 얼음으로 종묘에 제향을 올렸고, 동빙고보다 규모가 큰 서빙고의 얼음은 왕실에서 쓰고 차등배급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는 얼음을 깔아놓은 쟁반에 포도를 담아 시원하게 먹으며 연산군이 남긴 시구 “얼음 채운 파랑 알이 달고 시원해/옛 그대로인 성심에 절로 기쁘네/몹시 취한 주독만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병든 위 상한 간도 고쳐 주겠네”가 기록되어 있다. <효종실록>에는 “더운철에는 얼음과 제철 과일을 때때로 들여보내 주어 병나는 것을 면하게 하라”는 기록이 남겨져 있어 왕이 무더위 병나는 것을 염려해 얼음을 하사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왕의 종친, 문무 당상관, 70세 이상의 퇴직 관료에게 얼음을 나눠 주고, 빈민 구제·치료를 맡던 관청인 활인서(活人署)에 있는 환자들, 의금부·전옥서의 죄수들에게도 얼음을 내준다”라는 규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여름철 얼음은 왕실과 상류층의 사치품으로도 사용되었지만 애민과 구제에 적극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방의 빙고도 채빙이 수월한 하천변에 만들어 운영했는데, 남원의 요천변 남원빙고에는 특별한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왜적들의 악랄한 만행에 관해 요천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노스님이 혼잣말하며 사람들 곁을 지나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사람이 노스님에게 달려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묻자, 스님은 “요천변 바위에 굴을 파고 겨울철 꽁꽁 언 요천의 얼음과 남쪽 지방에서 나는 백급(白芨)이라는 약초를 구해다 가루를 내어 굴속에 넣어두면, 내년 여름에 요긴하게 쓰일 데가 있을 것이다”라고 일러 주었다.

스님의 말에 따라 요천변 산기슭에 동굴을 파서 겨울철 요천에서 채취한 얼음을 가져다 동굴에 채우고 백급가루를 함께 넣어 두었다. 이듬해 8월, 정유재란(1597년) 때 왜적들이 쳐들어와 남원성이 함락되며 많은 이들이 죽고 부상자도 속출했다. 부상자들을 치료할 약이 없어 애가 타던 때에 동굴에 넣어둔 얼음과 백급가루로 피 흘리는 부상자들을 치료했다는 이야기이다. 동굴에 얼음을 보관하였던 일대를 빙고치라 불렀으며 지금도 요천 인근 산책로에는 빙고로 쓰였던 동굴 입구를 살펴볼 수 있다.

▲ 한여름에도 찬 바람이 나오는 진안 풍혈 입구.
▲ 한여름에도 찬 바람이 나오는 진안 풍혈 입구.

빙고뿐 아니라 얼음골로 유명한 곳은 밀양의 얼음골, 의성의 빙혈, 울릉도의 나리분지 내 에어컨굴과 진안군의 풍혈냉천 등이 있다. 그중 진안 양화마을(전북 진안군 성수면)에는 한여름에도 찬 바람이 나오는 동굴인 ‘풍혈(風穴)’과 차가운 석간수(石澗水)가 나오는 ‘냉천(冷泉)’이 있다. 풍혈냉천이 소재한 마을 이름이 ‘양화(陽化)’인 것은 겨울에 눈이 내렸을 때 이 마을에 내린 눈이 가장 일찍 녹아 생긴 이름이고 이는 인근에 온천이 나오는 것과 관련 있는 듯하다. 대두산 기슭에 있는 풍혈은 여름엔 냉풍이, 겨울에는 온풍이 바위틈 구멍에서 나오며 바람의 길인 굴을 통해 구멍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니 지질학적으로 가치 있는 곳이다. 냉천은 섭씨 4도의 찬물이 솟아나 얼음물처럼 차고, 이 물은 조선시대 명의 허준이 약을 달이던 물이라 전해지며 피부병과 위장병 등에 특효가 있는 약수로 알려져 있다. 동네 사람들은 이곳을 냉장고 없던 시절부터 음식을 저장하고 더위 나기 장소로 사용하며 ‘천연냉장고’, ‘천연에어컨’이라 불렀다.

▲ 얼음물처럼 차가운 물이 솟아나는 진안 냉천 약수.
▲ 얼음물처럼 차가운 물이 솟아나는 진안 냉천 약수.
▲ 신민일보 1911년 8월 23일자에 보도된 진안군에 새 풍혈 기사.
▲ 신민일보 1911년 8월 23일자에 보도된 진안군에 새 풍혈 기사.

일제강점기에는 이곳의 차가운 성질을 이용해 잠종(蠶種, 누에씨) 보관소로도 이용했다. 1911년 8월 23일 자 신민일보에는 진안에서 풍혈이 발견되어 잠종을 저장하기로 했다는 기록이 있다. “진안군에 새 풍혈 : 원래 누에씨는 시원한 곳에 두어야 명년까지 보존할 수 있는 것은 누구든지 아는 바이나, 근일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재화잠, 삼화잠등은 온도 4도 이하가 아니면 2~3개월도 보존하기 어려우므로 잠종저장소를 장려하는 나라들은 재산을 들여서 인공으로 제작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천연 잠종저장소를 대구에서 한 곳 찾고 최근 진안군에서 한 곳을 발견하였다 하니, 우리나라는 여러 방면으로 보배스러운 근원이 많이 있는 것을 가히 알겠다.”

현재 진안은 풍혈에 보관된 잠종을 받아 잠업을 이어가는 농가도 사라졌고, 풍혈은 원불교 종단 소유의 사유지로 여름철 한시적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된 상태이다. 또한 남원의 빙고는 승월대와 연결하여 ‘달빙고’라는 이름으로 ‘칠월칠석에 보관된 요천의 얼음을 나눠 먹고 더위를 식혔다’라는 이야기의 안내판이 걸려있고 노승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설로만 남아 있다. 1896년에 폐지된 동빙고와 서빙고는 본모습이 사라졌지만 그 이름은 팥빙수 가게의 상호로도 남아있고, 18세기 초 만들어진 빙고 중 경주, 안동, 창녕, 영산, 청도, 달성 그리고 북한의 해주 등 7곳에 설치한 석빙고가 남아 있는데 남한 내의 6곳은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다.

자연이 내린 선물인 진안의 풍혈은 지질학적 연구와 더불어 훼손되지 않게 보존하여 지역의 귀한 자산이 되도록 함께 힘을 모으고, 남원의 빙고 또한 지역민의 구제와 더위 나기에 지혜를 모은 의미를 되살려야 한다. 그리고 어느 해보다 무더운 여름, 한여름에 얼음을 나누던 선조의 마음과 애민의 지혜를 따라 더불어 건강하게 지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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