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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위안부 할머니 증언 영화 ‘분노’ 제작하는 감독 안해룡 "할머니들 고통 누군가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치유됐을 것"
북한 위안부 할머니 증언 영화 ‘분노’ 제작하는 감독 안해룡 "할머니들 고통 누군가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치유됐을 것"
  • 김은정
  • 승인 2018.08.02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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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저널리스트 기록 토대
피해여성 14명 목소리 담아
이제라도 큰 상처 나눠 다행

남북·북미관계 급속도 진전
식민지 역사, 공동인식 중요
내년 전주영화제 만남 기대
▲ 영화 ‘다이빙 벨’의 감독이자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분노’를 제작중인 안해룡 감독이 중앙대학교 캠퍼스에서 사색에 잠겨 있다. 박형민 기자

지난해 우연히 표지 디자인이 특별한 책 한권을 만났다. 책 제목은 <기억하겠습니다>. ‘일본군 위안부가 된 남한과 북한의 여성들’이란 부제가 붙었다. 그리고 함께 새겨진 20명의 이름. 노청자 이귀분 김영실 리상옥 심미자 김대일 강순애 황금주 곽금녀 문옥주 리계월 강덕경 리복녀 김학순 심달연 리경생 유선옥 정옥순 김영숙 박영심. 자세히 보니 그 이름 밑에 작게 생몰연대가 쓰여 있었다. 모두 세상을 떠난 위안부 할머니들이다. 저자는 일본인 포토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 1991년 10월, 지금은 고인이 된 김학순 할머니와 처음 만난 이후 남북한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취재해왔던 그는 2014년 20명 남북한 위안부 할머니 20명의 생생한 증언을 정리한 사진기록집을 펴냈다. 그리고 3년 후 이 책은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어 우리 앞에 놓였다. 사진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역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록해온 안해룡 감독(57)과 번역자인 이은씨의 공동 작업 결실이었다.

한국어판을 기획하고 번역한 안해룡 감독을 만났다. 책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거니와 이즈음 제작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분노>의 진행도 궁금했다.

지난 7월 중순. 서울 도심 거리의 아스팔트가 끓어오르는 한낮, 흑석골 중앙대 앞 카페에서 만난 그는 하얀색 종이에 검정 글자가 새겨진 표지의 이 책을 먼저 꺼내놓았다.

“4년 전 이토 다카시가 선물이라며 건네준 사진기록집을 받았을 때 반가움과 부끄러움이 교차했습니다. 그의 작업은 전쟁 책임을 호도하고 있는 일본 정치가들에 대한 분노이자 저항의 기록이었어요. 우리가 하지 못했다면 소개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다’는 명제는 항상 분명하지만 교과서를 통해서 배운 식민지 피해의 역사를 우리가 과연 제대로 기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는 그는 기록자로서 저널리스트로서 식민지 피해의 체험을 얼마나 성실하고 진지하게 귀담아 듣고 기록해왔는가를 반성하는 마음으로 번역한 것이 이 책이라고 말했다.

20여 년 동안 일본군 피해자의 증언은 물론, 식민지 지배하에서 권력을 갖지 못하고 배우지 못했던 가난한 민중들의 피해의 역사를 추적해온 그의 역사인식은 남달랐다. 부끄러움과 반성으로 늘 자신의 작업을 뒤돌아보는 것. 쉬이 지치지 않고 늘 치열한 정신으로 기록해나가는 작업의 힘이 거기 있었다.

-예년에 없던 폭염입니다. 작업하시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즈음 작업에만 전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병간호로 작업은 거의 손을 놓고 있는 형편이에요. 내년 발표할 다큐멘터리 영화 <분노> 작업이 밀려 마음이 바쁩니다.”

-<분노>의 펀딩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실적은 어떻습니까.

“이 영화의 경우는 단순히 펀딩에 참여하는 수준이 아니라 일종의 조합 같은 형태로 공동제작자를 찾고 있습니다. 영화제작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형태지요.”

-내용은 역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기록이겠지요.

“맞습니다. 지금까지 다큐나 사진으로 기록해온 대부분이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할머니들인데 <분노>는 그중에서도 북한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것이에요. 작년 말에 내놓은 책 <기억하겠습니다>가 바탕입니다. 공동 연출자로 이름을 올린 일본인 포토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의 기록이 영화의 축을 이룹니다.”

-작년 가을쯤 인천다큐멘터리포트 2017에서도 소개되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과거 일본의 만행을 보여주는 작품인데도 ‘일본 내 배급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고 하던데 진전되고 있습니까.

“잘 진행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영화를 제대로 잘 만드는 것이 제게는 더 중요한 과제입니다.”

-제작 중인 <분노>의 바탕이 된 사진기록집 <기억하겠습니다>는 모두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담은 책이던데요.

“대부분이 1920년대에 태어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온 분들이지요. 그동안 남한의 할머니들은 여러 민간단체가 주도해 상당부분 알려지고 증언도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쪽은 전혀 다릅니다. 북한 자체가 폐쇄된 사회여서 개인적인 증언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인데다 민간단체의 활동도 활발하지 않으니 그분들의 소리는 묻혀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북한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담아온 이토 다카시의 작업은 정말 놀라울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하지 못한 일을 가해자 나라의 사진가가 해냈으니 부끄럽기도 하고요.”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을 듣고 싶습니다.

“인터뷰 대상인 된 14명 북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이 중심입니다. 모두가 이토 다카시의 취재로 얻은 기록입니다. 아마도 할머니들은 이 작업으로 큰 위안을 받았을 겁니다. 그동안 그들의 소리에 누가 귀기울여주었겠어요. 할머니들의 고통을 누군가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치유가 어느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북한 할머니들의 증언이 새로운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죠. 50-60년 동안 말 못했던 내용들이지만 새로운 사실은 아니에요. 그러나 그들의 소리를 드러내고 들어준다는 것, 고통을 이제라도 함께 나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북한의 할머니들을 이제라도 우리 속으로 들여온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분노> 작업을 서두르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남북대화가 이루어지고 북미회담이 진행되고.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 여러 가지 과제가 있지만 아직 해결되지 못한 식민지 역사의 피해에 대한 공동 인식 역시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한국사회도 그렇지만 같은 피해를 안고 있는 공간으로서 북한을 알릴 필요가 있어요. 사실 프로젝트는 2년 전부터 시작했습니다. 자료도 어느 정도 가져온 터여서 스토리를 어떻게 만드느냐는 것이 고민이지요. 25년 동안 취재해온 덕분에 자료는 충분합니다. 귀한 자료들이 많아요.”

-언제까지 예정되어 있나요.

“올해 9월까지는 제작을 마치려고 합니다. 완성이 되어도 마무리해야 하는 과정이 또 있으니까요. 내년 전주영화제에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면 더 좋겠어요.(웃음)”

-<분노>가 지금까지의 작업 연상에서 본다면 개인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분노>는 기본적으로 한반도 문제가 집합된 이슈를 제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식민지 경험에 있어서의 피해, 한국 분단 상황에 대한 관련된 부분들, 또 한편으로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남북 교류 문제까지. 그 모든 것들이 영화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구조거든요. 그런 점에서 지금껏 해온 그 어느 작품보다도 한반도 문제가 확장되는 의미가 있습니다.”

- ‘위안부 피해자들의 교류’라는 표현이 특별히 다가옵니다.

“피해자들의 교류는 매우 중요합니다.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것 뿐 아니라 연대하고 공유하는 힘이야말로 가치 있는 일이거든요.”

-그런 힘을 직접 경험해보셨습니까.

“94년에 일본에서 전후 보상에 대한 국제공청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북한에서 위안부 피해자 두 명이 참석하고 남쪽에서도 참석했습니다. 북한의 김영실 할머니가 피해를 증언한 뒤 남한의 김학순 할머니가 단상에 올라가셨어요. 그때 ‘나도 같은 위안소에 있었다’고 증언하시거든요. 그 순간, 우리가 마주하게 된 역사적 진실의 증언의 힘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어요. 그 현장을 기록한 사진이 있습니다. 남북의 피해자가 가해자인 일본이라는 가해국에서 남북분단의 일종의 상징들이 만나는 사진. 두 분 할머니가 치마저고리를 입고 만나는 그 순간의 장면은 식민지의 피해, 남북분단의 상처를 모두 다 드러내는 과정이죠.”

-북한 할머니들의 증언은 지금껏 공개된 적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우리의 위안부 운동이 남한의 할머니 중심으로 이루어져왔기 때문이에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우리 할머니들’에서 북한의 할머니들은 빠져 있었던거죠.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아 우리가 중요한 부분을 잊고 있었구나’하는 자각과 그런 자각들이 모여 분단체제를 극복하거나 편협된 인식을 부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북한 위안부 피해자를 이야기 하면서 식민지와 분단을 이야기 하고, 한반도 현대사를 이야기하는 그런 과정이 이어지게 되는 그런 그림을 상상합니다.”

-<분노>에 이어지는 또 다른 계획이 있습니까.

“<분노>는 영화 작업만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프로젝트입니다. 영화에 담아지는 부분은 90분 분량 밖에 안 되거든요. 북한 할머니 열 네 분의 인터뷰와 증언은 매우 소중한 자료예요. 그래서 자료집으로 내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확장한다면 아시아의 사진가들이 찍은 아시아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진증언집도 만들고 싶고요.”

-위안부 피해자 작업 말고도 일본의 전쟁과 관련된 흔적을 지속적으로 추적해오셨는데 한국현대사를 기록하는 일의 고단함(?)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강제동원이나 일본에 있는 조선인과 관련된 유적과 유골을 계속 찍고 있습니다.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까지 지속적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어려움이 없지 않지만 이제는 귀한 정보나 네트워크가 있어서 누구보다도 내게 주어진 과제라는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고단함보다는 부끄럽지 않은 작업을 해나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 큽니다.”

-다큐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머무를 수 있는 영역이지 않습니까. 혹시 주제면에서 가벼워지고 싶을 때는 없습니까.

“가벼운 것을 다루고 싶었다면 진즉 전환했을 겁니다.(웃음) 그런 갈등은 없고요. 오히려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을 진중하게 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진중함과 깊이가 없는 형태의 생산은 정말 피하고 싶거든요.”

안 감독은 20여 년 전, 도쿄의 한 사진갤러리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강제 동원되어야 했던 조선인을 담은 사진 전시회를 만났다. 일본어를 못해 전시장 안에 있던 일본인 작가와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나온 그는 자신을 돌이켜 보았다. 이후 만난 이토 다카시의 작업은 그를 더 새롭게 일으켜 세웠다. 왜 일본인이 조선인 문제에 천착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한국현대사에서 잊혀지거나 소외되었던 역사의 현장을 추적해온 그의 오랜 작업은 고단해보이지만 그 결실은 스스로 빛나는 보물과 같은 기록으로 이어져있다. 그 노정에서 그가 놓지 않는 화두가 있다. ‘우리는 얼마나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고단한 작업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안해룡 감독은

- 강제동원 등 식민지 시대의 흔적 기록…세월호 '다이빙 벨' 연출

안해룡 감독은 정읍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은 전주에서 보냈지만 서울로 이사와 성장했다. 서강대 사학과에 입학했지만 전공과는 무관한 학생운동으로 대부분 대학시절을 보냈다. 졸업한 직후 출판사를 거쳐 무역회사와 광고기획사에서 일했지만 취미로 시작한 사진이 그를 자유인(?)으로 만들었다. 민주화운동의 바람에 거셌던 80년대부터 주말이면 카메라를 들고 시위현장에 나갔던 그는 90년대, 본격적으로 독재의 억압에 대항하며 분노를 분출하던 시위현장을 찾아다니며 ‘기록하는 일’을 본업으로 삼았다. 좀 더 본격적으로 일하고 싶어 외신기자직을 몇 번 두드렸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다 일본의 프리랜서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조선인의 강제동원, 조선인 원폭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등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공중파 방송과 케이블 방송으로부터 프로그램 제작 의뢰를 받아 기획과 취재 촬영 편집까지 혼자 해내는 비디오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낯설었던 VJ는 이후 방송사들의 프로그램 제작이 활발해지면서 독자적인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조선인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 조선족, 입양아 등 식민지시대 역사와 소외된 계층의 삶을 주목해온 그의 작업은 시간을 더하면서 더욱 확장되고 깊어졌다.

미디어 매체에 대한 새로운 형식을 탐색하는 작업에도 관심을 가져온 그는 2002년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육성 증언과 영상을 새롭게 구성한 ‘침묵의 외침’을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영상과 소리를 분리해 다시 평면으로 구성해낸 이 작업은 이미지를 생산하는 매체에 대한 고정된 관념과 관습에 도전한 실험적인 기법으로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일본에 생존해있는 유일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송신도 할머니의 10년 동안의 법적투쟁기를 다큐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비롯 <우리 함께-나고야조선초급학교 60주년 기념 기록> <자이니치의 달은 어디에 뜨는가> <빼앗긴 날들의 기억> 등 일본 속 조선인들의 삶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눈 밖에 나다> <북녘 일상의 풍경>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분단의 경계를 허무는 두 자이니치의 망향가> <공습> <가부기초> <기억하겠습니다> 등의 사진집과 책을 짓거나 번역해 출간했다.

2014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을 둘러싸고 정치적 파장을 불러온 세월호 구조 현장의 기록 <다이빙 벨>을 공동으로 연출하기도 한 그는 2001년에는 프로그래밍 어드바이저로, 2002년에는 콘텐츠 디렉터 겸 홍보팀장을 맡아 전주국제영화제와도 인연을 맺었다.

아시아 프레스 인터내셔널 서울 사무소 대표를 맡고 있으며 일본의 전쟁이 남긴 상흔의 역사를 추적하고 기록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분노>를 올해 안에 제작해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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