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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게 우토로'
'기억할게 우토로'
  • 김은정
  • 승인 2018.08.02 2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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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일본은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에 비행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식민지 지배에 놓여있던 조선인들의 강제징용과 강제동원이 이어지던 시기. 이곳에도 예외 없이 조선인들의 강제동원이 강행됐다. 당시 끌려간 노동자는 1300여명. 일본정부는 6천여 평의 황폐한 땅에 조선인 노동자들을 집단으로 거주시켰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비행장 건설은 지속되지 못했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일본 정부가 뱃삯이 없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조선인 노동자들의 존재를 외면하고 방치했기 때문이다. 내일을 기약해야 했던 조선인들은 당장 눈앞의 생계가 막막했다.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희망이 이들을 일으켜 세웠다. 잡풀이 우거진 황폐한 땅을 사람이 살 수 있는 마을로 만드는 일은 그들이 희망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우토로 마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토로 마을의 비극은 다시 시작됐다. 수십 년 동안 버려졌던 땅에 수도가 설치된 것이 1988년. 주민들의 기쁨도 잠시, 무허가촌이 몸을 뉘인 땅의 주인이 바뀌면서 철거 위기에 놓인 것이다. 투쟁의 역사가 시작됐다.

보상은 커녕, 거리로 내쫓겨질 위기에 처한 우토로 마을의 안타까운 사연이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2004년이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들이 나서고 우리 정부도 토지 매입을 위한 지원에 나섰다.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이 결성되고 우토로를 돕기 위한 우토로 국제대책회의가 발족되면서 국제사회의 관심도 더해졌다. 철거위기는 모면했으나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주민들은 우토로 마을을 지켜냈다. 2010년 마침내 시민단체와 한국정부의 지원으로 마을의 3분의 1을 매입할 수 있게 됐지만 일본정부와 자치단체가 이곳을 재개발지역으로 결정하면서 원래 조성됐던 우토로 마을은 끝내 사라지게 됐다.

우토로 조선인 강제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남기려는 운동이 시작됐다. 우토로 평화기념관 건립이다. 우토로 마을 사람들의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투쟁의 과정을 기억하는 공간 만들기는 곧 살아있는 역사를 후세대에 증언하는 일이다.

아름다운 재단이 기념관 건립을 위해 벌이는 모금 캠페인 ‘기억할게 우토로’에 연예인들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가뜩이나 폭염으로 무기력해지는 이즈음,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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