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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기록 그리고 창작에 대하여
기억, 기록 그리고 창작에 대하여
  • 칼럼
  • 승인 2018.08.05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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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기록으로 남기고 기록은 2차 창작이 된다 단 창작이 기억돼선 안돼
▲ 최아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6월 27일 개봉한 영화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가장 큰 이야기이며, 여전히 지구 어딘가에서 비슷한 역사가 반복되는 일이기도 한 이야기다. 혹자에게는 지겨워져버린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마저도 아니라면 버거워 좌시하지 못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영화 ‘허스토리’와 ‘아이캔스피크’의 이야기 방식이다. 흔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물은 역사적으로 기록된 사실 그대로를 담아내고자 한다. 이전의 역사, 실화 영화들은 그런 이야기 전개 방식을 충실히 답습해왔다. 그러나 이 두 영화는 오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생생하게 과거를 기억한 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허스토리’와 ‘아이캔스피크’는 여타의 공통점을 제하더라도 당사자들의 현재를 담았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학부생 시절 교수님께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준비해 오늘을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역사다.” 결국 우리는 과거로부터 와서 현재를 살아간다는 뜻이다. 과거로부터 배워서 비슷한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를 기억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영화는 역사적 의미를 충분히 다 하고 있는 셈이다.

이전에 쏟아졌던 다른 역사, 실화 영화를 되짚어보자. 최대한 자세하고, 적나라하게 당시의 상황과 실제를 섞는다. 그곳에 한 방울씩 그런 상황에 처했을 법한 당사자에게 감정을 섞고 약간의 관계를 섞어 넣는다. 그들이 관계를 형성하고 상황을 만들어가는 곳에 역사적 사실은 남지만 오늘은 남지 못한다. 영화를 보고 나온 이들은 대체로 끔찍해하고, 힘들어한다. ‘다시는 이를 반복하지 말아야한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짐하지만 대체로 분노에서 끝이 난다. 오늘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생각은 지속되기 어렵다. 영화 속의 장면이 되풀이되느라 괴로움의 연속일 것이다. 당장 나조차도 하루하루 견디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어쩌면 그 다음의 상상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창작자는 창작물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 더 현실에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 비극적인 과거의 상황을 여러 번 다시 설명하는 것보다 당사자의 목소리로 전하는 편이 나을 테다. 피해 당사자가 피해 사실에 대해서 본인이 증언하는 것과 제 3자가 그날의 모습을 세세하게 재연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나치게 정밀하게 반복되는 창작물은 다시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음을 창작자는 기억해야만 한다. 창작자는 기록자가 아니다. 창작자는 사실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같이 새로운 오늘을 보내고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지 못하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와 같을 수 없다. 당시의 공통된 기억을 가졌더라도 각자 현재를 살고 있는 모습은 다르다. 오늘의 사람들을 두고 과거의 상황만을 반복하는 것은 창작이 될 수 없다. 실화를 다루는 창작자라면 꼭 기억해야 한다. 실화를 다루되, 2차 가해는 하지 않는다. 2차 가해나 지나치게 정밀한 재연 없이도 훌륭한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 예시가 바로 ‘허스토리’와 ‘아이캔스피크’다.

기억은 기록으로 남기고, 기록은 2차 창작이 된다. 다만 창작이 기억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기억을 선명히 되풀이하기 위한 창작은 창작과 예술로서의 기능을 잃게 될 것이다. 창작과 예술은 오늘의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방식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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