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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부채
추억의 부채
  • 칼럼
  • 승인 2018.08.06 20: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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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리가 어머니 부채처럼
새로운 기풍을 진작 시키는
이 시대 바람으로 기여하길
▲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

요즘같이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와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 조그마한 부채 하나쯤 손에 쥐고 있으면 그래도 약간은 더위를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에 큰 위안이 된다.

부채는 고향이요, 어머니이다.

여름이면 으레 고향집 마당에는 평상(平床)이 펴져 있었고 그 평상에서 우리 가족의 인정(人情)과 여름이 익어갔다. 밤이면 마당 한 켠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하고도 구수한 모깃불 연기를 온몸에 감고 어른들의 얘기를 들으며 내 나름 세상일을 가늠했었다. 그런 밤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평상에 누우면 총총한 밤하늘의 별은 내 눈에 쏟아졌고, 어머니의 옛날 이야기는 내 귀에 켜켜이 쌓여 갔다. 그때 어머니의 손에는 언제나 부채가 들려 있었고, 하염없는 어머니의 그 부채질 속에서 나는 잠이 들곤 했다. 모기와 더위를 함께 쫓아 주었던 어머니의 부채는 부정한 것들을 몰아내어 자식의 앞날을 순탄하게 펼쳐주고자 했던 마음속 깊고 깊은 축원이었으리라. 그립기만 한 어머니의 그 손길,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요, 아련한 풍경이다.

부채는 새로운 기운(氣運)이요 다짐이다.

단오절에 나누는 선물로 부채는 빼놓을 수 없는 품목이었다. 특히 단오절에 임금은 신하들에게 무엇보다 우선으로 부채를 하사했는데, 임금이 내리는 그 부채는 단순한 선물의 차원을 뛰어넘는 엄숙한 의미의 신표(信標)였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듯, 이 나라 종묘사직에 새로운 기풍을 진작(振作)시켜 달라는 임금의 간곡한 부탁과 조정(朝廷)의 다짐을 서로 담았기 때문이다.

나는 소리꾼이다.

소리꾼에게 부채는 실과 바늘이다.

부채는 판소리꾼에게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멋도 멋이지만 소리판을 쥐락펴락하는 상징적 도구로, 그리고 소리의 이면(裏面)을 그려내는 약속의 기호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춘향가에서는 춘향의 애절한 옥중편지로, 심청가에서는 심봉사의 눈을 대신해주는 지팡이로, 흥보가에서는 박을 가르는 톱으로, 그 변용의 양상은 장면의 상황만큼이나 다양하다. 이처럼 부채는 소리의 사설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장면을 실감나게 형상화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하나의 무대장치이고, 지휘봉이기도 하다.

보통 소리꾼들이 사용하는 부채는 전주의 특산품인 합죽선을 쓴다. 일반 부채와는 격이 다르고 값의 차이가 크다. 이런 이유에서 1980년 처음 소리에 입문한 시절에는 합죽선을 구해 쓸 여력이 없어 지하철역 입구나 노점에서 파는 값싼 줄 부채를 사서 사용했었다. 지금은 나를 아끼는 시인 묵객들의 글과 그림이 있어 꽤나 값나가는 30여개의 합죽선을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갖지만, 지금도 새 부채를 손에 쥘 때면 판소리 초년시절을 떠올리며 그때의 각오와 다짐을 되새기곤 한다.

바라건데 나의 소리가 어머니의 부채가 되어 이 시대의 끝자락에서나마 인정으로 피어나고, 나의 소리가 새로운 기풍을 진작시키는 이 시대의 바람으로 털끝만큼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소리꾼으로서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나의 판소리가 더불어 함께 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나는 오늘도 부채를 손에 움켜쥐고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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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춘 2018-09-07 08:32:12
원장님 부채를 통해 제 어머님의 바람을 느끼며 출근합니다. 에어컨, 선풍기의 시원한 바람보다 어머니 손끝에서 일어난 바람은 한없는 사랑의 바람이었지요.
원장님의 감동적인 글 읽고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