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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이 담긴 외교를 고대하며
혼이 담긴 외교를 고대하며
  • 칼럼
  • 승인 2018.08.0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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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는 불가능성을 가능성으로바꾸는 창조적인 예술이다
▲ 이수혁 국회의원·비례대표·더불어민주당

작년 말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의 ‘말폭탄’으로 인해 안보위기가 고조되고 전쟁 임박설이 한반도를 흔들었다. 당시 필자는 동북아는 전쟁이 일어날 구조가 아니며, ‘말폭탄은 협상으로 가는 막바지 과정’임을 지적한 바 있다. 예상대로 올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한반도 전쟁위기는 협상의 분위기로 대전환을 이루고, 이어 6월 12일 북미 간 최초의 정상회담은 25년도 더 지난 북핵문제를 전쟁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렸다.

우리 국민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북한의 핵무장으로 인한 한반도 위기가 해소되고 궁극적으로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될 것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를 통해서만이 남북이 평화 속에서 공존하며 남북협력과 번영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마침내 평화적인 통일이 달성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논리적 선순환 고리의 첫 부분은 과연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느냐는 주저와 회의이다. 25년 넘게 핵프로그램 달성을 위해 국제적 규탄과 제재를 감수하면서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겠느냐는 주장이다. 더욱이 CVID에 포함된 ‘검증가능한(verifiable)’이 없는 비핵화는 결국 ‘검증되지 않는’ 비핵화로 귀착될 것이라는 의심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신뢰는 협상의 필수조건이다. 신뢰 형성 없이는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신뢰가 없으니 협상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수용될 수 없겠다.

국제정치는 전쟁과 평화를 다룬다. 인류는 국가 간의 분쟁과 갈등을 무자비하고 처절한 인명살상과 문명파괴를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전쟁을 통해 해결해왔다. 그러나 동시대인들은 무력 대신 평화적인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늘 주장해왔다. 인류는 전쟁사보다 더 많은 평화적 해결의 역사적 기록을 쌓아왔다. 외교는 힘의 사용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정책이요, 노력이다.

국제정치는 ‘무정부(anarchy)’라고 한다. ‘정부’에 해당되는 권위체가 부재한 국제정치에서는 늘 배반과 의심을 심리적 기재에 바탕을 둔 자국의 이익 추구가 국가들의 핵심적 정책이다. 국가의 최고 가치는 ‘생존(survival)’이라는 것이다. 국제관계는 서로의 국익이 상충되는 것이 예사이며, 외교가 실패할 경우 무력사용을 통해 그 이익을 배분할 따름인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호소는 간절한 외침이었다. 1950년~1953년 한국전쟁은 물질적으로뿐만 아니라, 체제와 질서를 파괴했고, 고양되어야 할 민족정신과 역사의 발전을 붕괴시켰다. 실로 못할 짓이었다.

평생을 외교관으로 살아오며 1992년 1차 북핵위기 때부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관여해온 필자는 전쟁과 평화에서 늘 평화를 주장해온 협상론자이다. 그렇지만 협상 과정에서는 협상 상대국이 늘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를 ‘속일(cheating)’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은 외교에서는 상례라고 믿어왔다. 이런 인식은 국제정치에서는 선악이나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국익(national interest)’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언론에서는 북한이 아직도 핵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보도하였고, 미국 정부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중단하고 있지만 다른 핵활동은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북한에 대한 신뢰는 신뢰 사례의 축적을 위한 시간의 경과에 달려있다. 시간이 신뢰를 녹슬지 않게 페달을 더 힘껏 밟아야 하겠다. 외교는 불가능을 가능성으로 반전시키는 창조적 예술이다. 혼이 담긴 외교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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