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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 김제 금구면 봉림냉굴 가보니 - "냉장고 연 듯"…19℃ 바람 맞으러 폐금광 북적
[현장속으로] 김제 금구면 봉림냉굴 가보니 - "냉장고 연 듯"…19℃ 바람 맞으러 폐금광 북적
  • 남승현
  • 승인 2018.08.08 2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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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7~8월 음식 장사해 마을발전기금 활용
일제강점기 수탈 역사·관광콘텐츠 개발 목소리
▲ 지난 7일 김제시 봉림마을 봉림냉굴에서 마을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삼계탕을 먹으며 이색 여름나기를 하고 있다. 폐금광인 봉림냉굴은 폐광 내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19℃를 유지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지난 7일 오후 1시께 김제시 금구면 봉림마을 봉림냉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폐금광(金鑛) 입구에 마련된 264㎡(8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에서 마을 주민들의 시원한 웃음 보따리가 터졌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픔이 스며있는 폐금광에 마을 주민들이 모인 이유는 뭘까.

△27년간 주민들 폐금광에서 여름나기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에어컨 바람보다 폐금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더 시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이색 여름 나기 풍경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냉장고 문을 연 느낌이 들 정도로 시원했다. 점심이 끝날 시간인데 서너 명이 입구에서 자리를 찾아 헤맸다. 1~29번까지 자리 번호가 붙어 있었지만, 앉을 자리가 없었다. 가족과 지인, 친구들은 저마다 식사를 마친 뒤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실내는 19도를 유지하며 36도 정도의 외부 온도와 큰 차이를 보였다. 폐금광 안으로 100m쯤 들어가니 16도까지 떨어졌다.

봉림냉굴의 소유주 나중식 씨(78)는 “폐금광 안의 구조가 복잡하고, 깊게 들어갈수록 위험해 정확한 길이를 잴 수가 없다”면서 “평소에는 폐금광 출입을 제한하지만, 여름철에는 금광 입구까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여름철에는 봉림마을 주민들이 폐금광 입구에서 반짝 음식 장사를 하는데, 수익금은 품삯과 마을발전기금으로 활용한다.

봉림마을 오정인 이장(79)은 “27년 전부터 7~8월마다 피서객들을 위해 폐금광을 개방했다”면서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발걸음이 잦다. 춥다는 사람들을 위해 이불도 비치해 뒀다”고 말했다.

△“일제 수탈 현장, 역사·관광콘텐츠로”

김제시 금구면 일대에는 현재까지 봉림냉굴과 양석냉굴, 상목냉굴, 오산수직굴 등 폐금광 4곳이 남아있다. 김제시 소유인 상목냉굴을 제외하고 모두 사유지(私有地)다.

1900년대 초반부터 채굴을 시작한 금광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1945년 ‘금광정비법’이 시행되면서 폐쇄됐다.

특히 ‘금’ 채굴이 왕성했던 김제는 과거 일본인에게 수탈의 대상이 될 만큼 폐금광의 규모도 남다르다. 금구면 대화리 양석마을에 있는 양석냉굴은 입구에서 수직으로 60m를 내려가면 330.58㎡ 규모의 공간이 나온다. 금맥을 따라 약 60㎞ 굴이 연결되는 등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선열들의 피땀이 섞인 폐금광을 지자체 차원의 역사 관광 콘텐츠로 활용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나온다. 여기에 지자체에 정식 허가를 받지 않은 상황에서 여름철 두 달간 음식이 판매되면서 위생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김제문화원 김태규 사무국장은 “김제시 금구면은 과거부터 금을 중심으로 일제 수탈의 역사가 깊은 곳”이라면서 “폐금광을 지자체가 나서 역사·관광 콘텐츠로 개발하는 방법도 고민해 볼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김제시 문화홍보축제실 관계자는 “지난 2013년 금구면 일대 폐금광 조사 당시 안전 문제 등의 이유로 관광화가 이뤄지지 못했지만, 추가로 금구면 일대 폐금광이 관광 마스터플랜에 포함될 수 있는지 등을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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