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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이 기억해야 할 이름, 독립운동가 '김춘배' 의사] "소속 단체 없이 국내 무장독립운동 흔치 않아"
[전북이 기억해야 할 이름, 독립운동가 '김춘배' 의사] "소속 단체 없이 국내 무장독립운동 흔치 않아"
  • 천경석
  • 승인 2018.08.14 2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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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삼례 출신…1934년‘함남 권총의거’앞장
동아일보 등 당시 발행신문 4~5곳에 대서특필
사망 날짜·묘 위치도 모르고 업적 재조명 안돼
▲ 지난 10일 전북 출신 독립운동가 김춘배 의사의 손자인 김경근 목사(왼쪽)가 전북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춘배 의사의 의거가 보도된 일제강점기 신문 스크랩을 보여주고 있다. 조현욱 기자
▲ 김춘배 의사에 대해 보도한 ‘56년만에 햇빛본 독립유공’제하의 전북일보 1990년 8월 15일자 10면 기사.
▲ 김춘배 의사에 대해 보도한 ‘56년만에 햇빛본 독립유공’제하의 전북일보 1990년 8월 15일자 10면 기사.

“독립운동을 하면 3대(代)가 망한다는데 ‘나는 4대이니 망할 일은 없을 것 같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마음이 아팠습니다.”

김춘배 의사의 증손녀인 김찬양 씨의 말이다.

제73주년 광복절. 우리 지역 출신으로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했지만 도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은 이가 있다.

‘김춘배’의사. 1934년 일제의 식민통치가 옥죄어 오던 그때 ‘함남 권총의거’를 일으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춘배 의사는 완주군 삼례 출신이다.

하지만 현재 묘가 어디인지 찾지 못하고, ‘김춘배’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도민도 많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10일 전주의 한 교회에서 만난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은 “함남 권총의거, 김춘배 의사를 아느냐”고 물으며 “우리 고장 출신으로 나라를 위해 일제와 맞섰지만, 우리 고장 사람들조차 알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이승철 위원이 김춘배 의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전북일보 1990년 8월 15일 자 10면에 실린 ‘56년만에 햇빛본 독립유공’ 제하의 기사를 보고 난 뒤다.

‘우리 고장에 이런 훌륭한 사람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 이 위원은 이후 틈 날 때마다 김춘배 의사에 대한 행적 등을 알아봤지만 헛수고였다. 그렇게 20여 년 동안 마음 한켠에만 묻어두었던 그 이름은 올해 4월 우연한 기회에 김춘배 의사의 손자를 만나며 다시 떠오르게 됐다. 전주 채움교회에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던 손자 김경근 씨도 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찾으려다 이 위원과 연이 닿았다.

이 둘은 각각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과 호기심,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뭉쳐 김 의사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고, 여기에 김 의사를 공부해오던 경기도 평택문화원 황수근 학예사가 합세했다.

황 학예사는 “독립운동에 대한 기록을 살피던 중 어느 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적으로 국내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한 경우는 흔치 않아 김춘배 의사에 호기심이 생겨 연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의사의 함남 권총의거는 당시 발행됐던 매일신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4~5곳의 신문에 대서특필된 기록이 남아있다.

김 의사는 1934년 4월 군자금 모집 혐의로 갇혔다가 출소한 후 같은 해 10월 2일 신창주재소 무기고를 단독으로 습격해 장총 6정과 권총 2정, 실탄 800발을 탈취했다. 이후 북청어업조합을 습격해 군자금을 마련해 만주 독립군과 합류하려 열차를 타고 가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잡히기 전 19일 동안 일본 경찰을 피해 도망 다녔으며, 그 기간 동안 동원된 일제 경찰이 연인원 2만 명에 달했다.

19일 가량을 도망 다닌 그는 한국 청년의 밀고로 붙잡히게 됐고, 1934년 11월 19일 무기징역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김 의사는 해방과 함께 석방됐으나 1946년 12월 1일 고문 후유증으로 길거리에서 숨을 거둬 공동묘지에 묻혔다고 하는데 묘를 알 수가 없고 사망 날짜도 정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황수근 학예사는 “3·1운동 이후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음에도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활동했던 김춘배 의사는 의지가 굉장히 강한 인물로 보인다”며 “독립운동한 모두가 안중근이자 유관순이라는 마음으로 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한다”고 말했다.

김경근 목사는 “할아버지가 하셨던 일들을 후손인 우리도 그동안 잊고 지냈던 것이 부끄럽다”면서 “할아버지뿐 아니라 나라를 위해 힘쓴 모든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조치가 이뤄지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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