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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158) 8장 안시성(安市城) ⑭
[불멸의 백제] (158) 8장 안시성(安市城) 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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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1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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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네 이놈들!”

성 아래쪽에서 천둥을 치는 것 같은 고함소리가 울렸다.

“퇴로가 끊겼으니 이제 너희들은 몰살당한다! 성 안의 쥐새끼 한 마리도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목소리가 커서 성벽 아래쪽에서도 다 들렸다. 당의 장수다. 목청 큰 장수여서 성안의 고구려, 백제군은 목소리에 익숙해졌다. 매일 같은 시간에 소리를 지르기 때문이다.

“저놈과의 거리는 180보요.”

화청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장수를 내려다 보면서 말했다.

“여우 같은 놈이 한발자국도 더 가깝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백제군이 소유한 각궁의 사정거리는 150보. 뿔을 덧대고 길이를 한뼘쯤 넓힌 계백의 각궁은 170보가 유효사거리다. 그 이상이 되면 활 힘이 떨어져 맞아도 깊게 박히지 않는다. 당의 장수는 그것을 알고 사정거리 밖에서 소리치는 것이다. 화청이 손으로 장수 뒤쪽을 가리켰다. 뒤쪽은 갑옷을 번쩍이는 친위군단이 늘어서 있다. 철갑을 입었기 때문에 철벽 같다.

“저 뒤에 이세민이 있지요. 보이시오?”

“보이는군.”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소리치는 당 장수 뒤쪽 30보쯤 거리에 당황제 이세민이 서있는 것이다. 말에 올라 이쪽을 응시하고 있지만 주위에 벽처럼 늘어선 친위군에 가려 상반신만 겨우 드러났다. 오전 사시(10시) 무렵, 이 시간의 안시성 서문 풍경이다. 이세민과의 거리는 210보. 계백의 눈대중은 1, 2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이놈들! 항복하면 목숨을 살려주는 것은 물론 후한 상급을 준다.”

장수가 외치고 한걸음 비켜섰을 때 고구려 병사 차림의 사내가 나타났다.

“이보게! 내가 동문을 지키던 유강이네! 오늘 밤에라도 성벽을 내려오면 금 10냥을 받네!”

사내가 악을 쓰듯이 소리쳤다. 그때 계백이 화청에게 말했다.

“저쪽 좌측 성벽에서는 거리가 160보 정도나 될까?”

계백이 눈으로 가리킨 곳은 서문 좌측의 성벽이다. 그쪽은 급한 경사지 위에 성벽이 세워졌는데 앞쪽으로 돌출되었지만 당군이 덤벼오지 않는 곳이다. 따라서 성벽 위에는 10여명의 백제군이 지켜 서있을 뿐이다. 그때 성벽에서 시선을 뗀 화청이 계백을 보았다.

“과연 그렇습니다.”

화청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160보가 조금 넘을 것 같소.”

이세민과의 거리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내일 이 시간에도 이세민이 나오겠지.”

“지난번 그물로 운제에 탄 당군이 몰살당한 후부터 이세민이 이 시간에는 꼭 서문에서 남문으로 내려갑니다.”

이세민이 독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곧 고함이 그치고 나면 당군의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된다. 그때 이세민이 다음 독전지로 떠나는 것이다. 성안의 고구려, 백제군도 이제는 이세민의 동정을 다 외우고 있다. 나타나지 않는 날은 병이나 걸렸나 하고 궁금해질 정도다. 곧 외침이 그치더니 운제 2대가 굴러오기 시작했다. 포차에서 머리통만한 바위가 날아왔고 철갑을 씌운 충차가 굴러왔다. 앞으로 한시진 정도는 격렬하게 공격을 퍼붓다가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물러갈 것이다. 날아온 바위가 앞쪽 성벽을 부수며 떨어졌다. 머리만 틀어 바위 조각을 피하면서 계백이 화청에게 말했다.

“당군이 부서지기 쉬운 바위를 던지는군.”

성안의 군사들이 다시 쓰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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