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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령비현령
이현령비현령
  • 김재호
  • 승인 2018.08.1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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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이 있었다. 처음엔 ‘서울대 우조교 사건’으로 불렸다. 1993년 서울대 화학과 실험실에서 근무하던 1년 계약직 우조교는 그의 직속 상관인 신모교수의 성적 발언과 신체접촉에 지속적으로 시달렸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신교수에게 거부 의사를 표했다. 그리고 그가 얻은 것은 조교 재임용 무산이었다. 재임용 추천권을 쥐고 있던 신교수의 보복이었다.

우조교는 1993년 10월 신교수와 서울대총장, 대한민국을 상대로 5,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승소와 패소를 거듭한 끝에 그는 6년 만인 1999년 6월 서울고법으로부터 ‘피고는 원고에게 5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당시 이 사건은 피해자를 중심에 두었다는 점, 애매모호하게 다뤄지던 성희롱에 대한 사회적, 법적 개념을 좀더 확실히 정립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신교수 사건이 있었던 1990년대에는 성폭력특별법이 제정(1994년 4월 1일 시행)됐고, 가정폭력특별법(1998년 7월 시행)도 만들어졌다. 이후 군산 대명동 사창가 화재사건은 성매매방지법(2004년 9월 23일 시행)을 이끌어냈다.

1991년 1월 김부남씨는 9세에 불과했던 자신을 성폭행한 이웃집 아저씨를 찾아가 살해했다. 법정에 선 그는 “나는 짐승을 죽인 것이지 사람을 죽인게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여비서 성폭행 사건으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14일 서울서부지법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위력은 있었지만 위력을 가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피해자답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이 큰 이유 중 하나다. 이번 판결에 사회가 어수선하다. 신교수 사건, 김부남 사건 등을 통해 넘지 못했던 또 하나의 장벽을 넘지 못한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위력만 있었고, 그 위력이 가해지지 않았을까. 조폭 두목은 직접 ‘살해’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얼마든지 부하에게 살해를 지시한다. 눈빛, 턱짓 등 다양하다. 부하는 그 암묵적 지시를 어길 수 없다. 보복이 가해지는 환경 때문이다. 세상에는 을의 위치를 제대로 알아야 판결할 수 있는 사건이 수두룩하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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