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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39. 가을보양식, 남원의 추(鰍) - 흔하지만 영양 만점…서민들 원기 북돋운 '효자 음식'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39. 가을보양식, 남원의 추(鰍) - 흔하지만 영양 만점…서민들 원기 북돋운 '효자 음식'
  • 칼럼
  • 승인 2018.08.1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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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초강목·동의보감에 미꾸라지의 효능 소개
갈아서 만드는 남도식…청정지역 남원서 발달
지역문화의 한 축 지속…젊은 입맛 맞게 연구를
▲ 남원 추어탕 상차림.

더위에 지친 몸을 추스르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보양식을 찾는다. 보양식의 보양은 잘 보호하고 기른다는 뜻의 ‘보양(保養)’과 양기를 북돋워 준다는 ‘보양(補陽)’의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표적인 보양식으로는 민어, 장어, 닭, 미꾸라지, 보신탕 등이 있다. 여름철 귀한 보양식으로 알려진 민어는 7, 8월에 많이 잡히는 어류로 허균의 『도문대작』에 “민어 등은 서해안 전역에서 두루 많이 잡히기 때문에 별도로 언급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어 여름철 반가의 특별한 보양식으로 보기 어렵다. 대표적인 보양식인 삼계탕은 1960년대 무렵 대중화된 음식이다. 조선시대의 삼은 원래 자연산 산삼이었는데 영·정조 시대에 가삼(家蔘)의 양식 재배가 시작된다. 덕분에 인삼이 비교적 흔해졌지만, 나라에서 인삼을 엄격히 관리했기 때문에 인삼이 들어간 삼계탕을 보양식으로 널리 먹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논두렁이나 냇가에서 잠깐의 수고로 얻을 수 있는 재료로 해먹을 수 있는 서민들의 보양식도 있었다. 여름을 지나며 가을에 먹는 보양식으로 알려진 남원의 대표 음식 추어탕이다.

미꾸라지를 한문으로 ‘추(鰍)’라 하는데, 이는 물고기 ‘어(魚)’와 미꾸라지가 우는 소리인 ‘추(秋)’를 합성한 의성어라는 설과 가을(秋)에 먹는 미꾸라지가 통통하고 맛이 좋아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미꾸라지를 칭하는 다른 한자 이추(泥鰌, 泥鰍)에서는 진흙 니(泥)를 쓰는데 이는 진흙 속에 사는 물고기라는 의미이다. 추어탕은 영양학적으로 장어에 버금가는 보양식이지만 원래는 양반들이 먹지 않는 음식이었다. 이 때문에 궁중음식을 소개하는 조리서에는 추어탕의 제조법은 물론 명칭을 찾아볼 수 없다.

▲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언급된 미꾸라지.
▲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언급된 미꾸라지.

미꾸라지가 선조들의 식재료로 쓰였다는 흔적은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확인할 수 있다. 1123년 작성된 기록에는 당대 고려의 생활 풍속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고려에는 양과 돼지가 있지만 왕공이나 귀인이 아니면 먹지 못하며, 가난한 백성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 미꾸라지(鰌), 전복, 조개, 진주조개, 왕새우, 무명조개, 대게, 굴, 거북손이 있고 해조인 다시마도 귀천 없이 좋아하는데…”라며 모두 11종류의 해산물을 기록했고 그 첫머리에 미꾸라지(鰌)가 등장한다. 10종류는 바다에서 나오는 것들이고 미꾸라지만 민물에서 잡는 것이었다. 미꾸라지가 하천이나 논에 흔하므로 서민들이 오래전부터 먹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 『본초강목(本草綱目)』.
▲ 『본초강목(本草綱目)』.

다른 문헌 기록으로는 중국 명나라 때에 이시진(1518~1593)이 쓴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그 특성이 등장한다. “미꾸라지는 배를 덥히고 원기를 돋우며 술을 빨리 깨게 하고 정력을 보하여 발기 불능에 효과가 있다” “양기(陽氣)에 좋고, 백발을 흑발로 변하게 한다”며 그 효능을 기록하고, “미꾸라지는 무리의 으뜸이 되려는 습성이 있고 움직이고 요동치기를 좋아하는 성품이므로 두목처럼(酋:두목 추) 튼튼하고 잘 움직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성(性)이 온(溫)하고 미(味)가 감(甘)하며 속을 보하고, 설사를 멎게 한다”고 미꾸라지가 가진 효능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가 널리 알려져서인지 추어탕은 가을뿐 아니라 사계절 원기회복의 음식으로 인기가 많다.

추어탕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밋구리탕과 추두부탕(鰍豆腐湯)이다. 밋구리탕은 서유구(1764~1845)의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 나온다. 미꾸라지를 이추(泥鰍)라고 하고 한글로 ‘밋구리’라고 쓰며, “살은 기름이 많고 살찌고 맛이 있으며 시골 사람들이 이를 잡아 맑은 물에 넣어두고 진흙을 다 토하기를 기다려 국을 끓여 먹는데 특이한 맛”이라고 했다. 밋구리탕은 미꾸라지 살을 곱게 만든 다음 된장 푼 물에 넣고 끓여 오늘날 추어탕의 원형으로 추정된다.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추두부탕은 이규경(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등장한다. “진흙과 모래가 섞인 계류에서 잡은 미꾸라지를 물 담은 항아리에 넣어두면 머금었던 진흙을 토해낸다. 하루 세 번 물을 갈아주며 5~6일 계속한다. 이 미꾸라지 50~60마리와 두부 몇 모를 물과 함께 솥에 넣고 불을 때면 물이 점점 뜨거워지면서 미꾸라지들이 열을 피해 두부 속으로 촘촘히 박혀 들어간다. 불을 계속 때면 물이 끓어 미꾸라지가 익는다. 미꾸라지가 사이사이 박힌 두부를 썰어 참기름으로 지져서 먼저 끓이고, 메밀가루와 계란을 풀어 넣고 저어가며 섞어준다. 재료가 어울리게 탕을 끓이면 맛이 아주 좋다. 이 탕이 요즘 서울의 반인들 사이에 성행한다.” 이렇듯 19세기 중엽 추어탕은 상류 계층의 음식이라기보다는 서민들의 음식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추어탕은 끓이는 방식에 따라 미꾸라지를 갈지 않고 통으로 넣는 서울식과 미꾸라지를 삶아서 얼망에 걸러내거나 갈아 끓이는 남도식으로 나뉜다. 미꾸라지를 갈아 넣은 남도식 남원 추어탕은 남원 운봉 지역의 무시래기를 주재료로 넣어서 된장을 풀어 들깨와 초피(젠피, 산초)를 넣어 구수한 탕으로 끓여 만든 남원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이다.

남원은 지리산과 섬진강을 끼고 있어 청정한 물이 흐르는 지역이다. 계곡을 따라 남원 곳곳으로 흐르는 하천에는 풍부한 퇴적층이 형성되어 있어 미꾸라지를 비롯한 민물고기가 많다. 남원 지역 주민들은 가을 추수가 끝나면 겨울을 대비해서 보양 음식으로 살이 통통히 오른 미꾸리나 미꾸라지를 논두렁이나 수로에서 잡아 시래기와 함께 끓여 먹었다. 같은 추어탕의 재료로 쓰이나 원통형의 몸으로 동글이로 불리는 미꾸리가 몸이 옆으로 납작하여 납작이로 불리는 미꾸라지보다 맛이 좋다. 가을철에 서민들이 주로 먹던 추어탕이 사계절의 보양 음식으로 이해되면서 남원 향토음식이 되었다. 또한 지리산에서 나는 산채와 토란대, 고랭지 푸성귀를 말린 시래기와 각종 나물, 남원 추어탕에 들어가는 향신료 초피를 쉽게 구할 수가 있어 남원은 추어탕 문화가 발달할 수 있는 지역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남원에서 추어탕이 상업화된 것은 1950년대로 섬진강 하류 하동 출신의 서삼례가 1959년 요천가 광한루원 주변에 억새풀집 지붕을 얹고 ‘새집’이란 추어탕집을 내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인근에 추어탕집들이 생겨나며 남원 추어탕은 음식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형성된 추어탕 거리는 전국적인 향토 음식의 거점 지역으로 인정받으며 2012년 음식테마거리로 지정이 되었다. 현재 남원에는 약 50여 개의 추어탕 음식점이 분포해 있다. 하지만, 수요에 비해 자연산 미꾸리와 미꾸라지가 귀하고 남원산 미꾸라지 양식도 부족한 실정이다. 옛 문헌에 나온 미꾸라지 조리법을 계승하면서 젊은 층도 선호할만한 음식으로 발전시키는 연구가 필요하며 남원 문화의 중요한 한 축으로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생명력이 강한 미꾸라지는 추운 겨울에는 동면하고 온갖 험난한 자연환경에도 잘 자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미꾸라지 천년에 용 된다”란 속담이 있다. 오랫동안 노력하면 훌륭하게 된다는 의미로 쓰인다. 서민의 음식으로 논두렁에서 잡아 끓여 먹던 남원의 추어탕이 전국적으로 인정받는 향토음식의 대명사가 되며 지역의 자산이 되었다. 여름 더위에 지친 몸을 위해 가을철 최고의 보양식인 추어탕을 찾아 남원으로 원기회복을 하러 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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