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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실개천이 흐르는 길
[금요수필] 실개천이 흐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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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1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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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동수
“여기에 발 빠지면 프라이부르크 사람하고 결혼한대요”

프라이부르크(Freiburg) 중심가를 걸으며 어떻게 시내에 실개천이 흐를까! 감탄하는 나에게 유학생이 프라이부르크의 속담을 들려준다.

나는 23년 전에 독일에 머물고 있을 때, 프라이부르크에서 유학하고 있는 학생 부부의 초청을 받아 그 도시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때 시내 구경을 하러 나갔다가 시내 여기저기를 흐르는 실개천을 봤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어느 도시에도 실개천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 보는 실개천이 아주 인상적이기도 했지만 감탄스럽기도 했다. 프라이부르크의 실개천은 14세기 때부터 가축에게 물을 주고 더위를 식히고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 실개천은 총길이가 20㎞ 정도로 시내 전체를 흐른다. 그런 도시에서 오래 살다 보면 실개천에 발도 빠지고 좋은 사람도 만나서 결혼하게 될 것이다. 전주에도 한옥마을에 실개천이 있다. 6백 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는 은행로에 500m 정도의 실개천이 있다. 나는 이 길에 나갈 때마다 실개천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옥마을의 중심거리 중 하나인 은행로는 주말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밀려다니고 길 양편에는 수많은 상점이 들어서 있다. 완전히 디즈니피케이션(disneyfication)이 돼버렸다.

닭꼬치, 핫도그, 찹쌀떡, 꽈배기를 파는 가게들, 초코파이를 파는 빵집들, 수많은 핑거 푸드(finger food) 가게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언제부터 전주의 대표 음식이 떡갈비였는가 할 정도로 떡갈비 집들이 많다. 거기에다가 젊은이들은 전동기를 타고 이 거리를 휘젓고 다닌다. 도대체 도시 전체가 국제슬로시티라는 전주의 한옥마을에서조차 우리는 느림을 누릴 수 없고,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라는 전주의 한옥마을에서조차 핑거 푸드와 인스턴트 음식이 넘쳐 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옥마을 은행로에 폭 50㎝ 정도의 화강암으로 만들어 놓은 500m 정도의 물길, 실개천이 있다는 것이다. 이 실개천은 겨울 한 철을 빼놓고는 늘 지하수를 끌어올린 물이 좔좔 흐른다. 독일의 환경수도, 실개천의 원류 프라이부르크에 비하면 너무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 실개천을 따라 걷다 보면 조금의 느림과 조금의 여유를 누릴 수 있다. 한옥마을에는 느림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한옥마을 전체에 실개천이 흘렀으면 좋겠다. 2~3㎞면 충분하다. 태조로, 은행로, 동문로, 천변동로, 경기전길, 향교길 등 한옥마을의 큰길을 모두 합쳐도 2~3㎞이기 때문에 그 길이만큼 실개천을 만들면 된다.

아니 아예, 프라이부르크처럼 전주시 전체에 실개천이 흐르게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국제슬로시티와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 전주의 성격을 살리는 길이 기도할 것이다. 요새 전주시는 도시 열섬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서 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고 한다. 물론 도움이 될 것이다. 실개천도 나무만큼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주가 많은 사람에게 조금의 여유라도 가지고 무언가를 생각하면서 실개천을 따라 걸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괴테는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걷기에서 나온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실개천을 따라 걸으면서 위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문화특별시를 지향하는 전주시가 진정한 국제슬로시티와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의 성격을 살리기 위해서는 프라이부르크처럼 시내 전체에 실개천이 흐르게 만들어야 한다.

△박동수 수필가는 전주대 부총장과 전북수필문학회장을 역임했다.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수염을 깎지 않아서 좋은 날> 등 수필집 5권을 발간했다. 전라북도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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