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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 12. 부안 ‘속살길’, 600년간의 ‘동행’ - 김형미
[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 12. 부안 ‘속살길’, 600년간의 ‘동행’ - 김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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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1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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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동행할까요?”

‘동행’이라는 그녀의 말 때문이었을 게다. 오래전부터, 아니 그녀와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우리가 벌써 같은 길을 가는 사람처럼 느껴진 것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그녀의 머리카락 길이만큼의 단정한 마음의 무게까지도.

길은 어디로든 나 있다. 집 없는 수행자의 삶처럼. 그리고 무한을 꿰뚫어보는 힘을 가진 고타마 붓다처럼. 그 길 어딘가에서 이즈음 언뜻언뜻 스쳐오는 자귀꽃 향기. 달빛인가 싶기도 하고, 달에서 나는 향 같기도, 어느 귀한 별을 타고 난 사람의 인기척 같기도 해서 자꾸만 들여다보게 만드는. 내 고향 부안이었다. 비 오지 않고 바람 불지 않는 조용한 날, 그 몸서리쳐지는 꽃향기 속을, 향기 가득한 길을 가만 열어보고 싶은 곳. 언제라도 많은 정겨운 것들이, 생이, 끔찍이 사랑하길 갈망했던 것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 아아, 금방이라도 몸이 포개지면 마음이 따라와 눕는 꽃가지 하나 생길 것만 같은, 부안!

부안군청 해설사로 있는 그녀와 함께 부안의 ‘속살길’을 더듬어보기로 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어차피 떠나지 않는 길은 한낱 허상일 뿐이었으므로. 청림 지나 사자동으로 해서 내소사로 넘어가거나, 반계 유형원 사당 지나 굴바위를 끼고 병풍바위가 있는 내변산길로 돌아 나오거나, 혹은 하섬 지나 적벽강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타는 외변산길도 좋지만, 정작 부안 속의 부안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무엇인가 죽지 않는 것을 찾아 떠나기엔 우리는 몸속에 너무 많은 뼈를 지니고 있어서였는지도 모른다. 해서 이름 붙여진 것이 ‘속살길’이라 했다. 600년 동안 지켜온 부안의 속살을 드러내는 것이라니. 그러나 ‘속살’에서 풍겨지는 느낌처럼 전혀 속되지 않음이 서운하기보다는 몇백 년을 들어도 다 못 들을 부안의 정한이 느껴지는 길.

목가시인 신석정에서 조선시대 예인 이매창에 이르는 품격 있는 인문학의 거리. 수로를 만드는 사람은 물을 끌어들이고,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정성을 다해 살을 다듬는다고 했던가. 목수는 나무를 심고, 분노가 깊은 사람은 자신을 가지런히 한다고. 그리고 길을 걷는 사람은 스스로 길을 낸다고 말이다. 어쩌면 사람은 길을 만들고, 길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서림공원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는, 부안의 주산(主山)인 성황산. 이 산의 초입에 매창이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었던 금대(琴臺)가 있다. 매창의 서늘한 눈매가 이 산에 많은 서어나무 그늘만큼이나 선선하게 와닿는 듯한. 결이 고르지 않고 울룩불룩 근육질로 못생긴 것이 서어나무라고 했다. 한자말로는 ‘서목’이라고 해서 ‘서쪽에 있는 나무’를 뜻하는데, 서어나무가 서림공원에 유달리 많이 번성한 것도 다 그 뜻이 있을 법하다. 활쏘기를 하면서 재주를 겨루던 활터 심고정(審固亭)이 내려다보이는 이 금대에 적힌 시구들. 시인 묵객들이 시회를 열고 혜천(惠泉)의 물을 마시며 풍류를 즐긴 흔적이다.

부안에 머물렀던 현감들을 기리는 비들을 새겨보며 부안읍 성터길 따라 성황산을 한 바퀴 에돌아본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일부 남아 있는 성황산 자락 토성으로 된 성터길. 그 길을 따라 도는 동안,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매창인지, 그 옛날 풍류객들인지, 혹은 곧 쏟아질 것만 같은 장맛비를 몰아오는 바람인지 힘 있게 술대를 내려치는 거문고 소리가 들린다. 거문고 괘를 짚듯 과거와 현재를 따악따악 짚어나가는 소리. 그리고 미래로 끌어올려질 소리. 한동안 줄곧 곧게 뻗어 있는 메타세쿼이아길까지 따라오는 그 거문고 소리를 내려놓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독성이 강해 양이 먹기를 머뭇거리거나, 먹고 나서 서성이다 죽는다 해서 척촉화(躑躅花)라 하는 철쭉. 그 철쭉이 메타세쿼이아 이쪽과 저쪽의 간격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모양의 특이한 길 중간쯤, 장사꾼들이 넘나들던 상술재길이 있다.

그쯤해서 바로 밑의 향교를 비롯하여 부안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걸터앉아 잠시 더위를 살폈던가. 작은 다람쥐가 턱 안에 고슬고슬한 알밤을 그득 물고 있는 것처럼, 작은 덩치 속에 무궁무진한 역사와 문화가 참 알차게도 쟁여져 있는 성황산. 변화와 변화를 거듭해온 600년 부안의 역사가 함께 땀을 닦아내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스스로 헛된 괴로움을 키우지 않기에, 평안으로부터 가까이 있게 된 부안. 최상의 고요에 도달해 있는 느낌이랄까. 때문에 다소곳하며, 쾌(快)도 불쾌(不快)도 존재하지 않으며 세속의 집착을 여읜 채 세상 속에 놓여 있을 수 있는. 그녀도, 나도,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서.

부안 사람들의 재력을 보여주는 돌 문화도 빼놓을 수 없이 근사한 속살을 지니고 있다. 부안읍성의 동문 안, 서문 안, 남문 안을 지키는 석당산들. ‘짐대’라고도 하는 이 당산들 중, 동문 안 당산은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조선 숙종 15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현재 부안읍 서외리에 자리한 서문 안 당산. 이 오리짐대에는 정확히 숙종 15년에 건립되었다는 명문이 남아 있는데, 우리나라 오리짐대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역사 기록으로 그 가치성이 무척 뛰어나다. 네 마리 거북이가 오르내리는 모습이 양각된 남문 안 당산은 서문 안 당산과 달리 오리는 없지만, 행주형지세의 마을에 순항을 바라는 비보적인 짐대로 꼽힌다. 특히나 큰 거북이 한 마리가 받침돌로써 남문 안 당산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다.

세 당산과 더불어 서문 밖에 자리하고 있는 석당간도 있다. 안과태평과 풍농을 기원하는 수호신으로 짐대할머니라 부르는 서외리 석당간지주. 용이 기둥을 감고 오르는 모양과 거북이가 양각되어 독특한 장식성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눈이 열린 사람은 결코 자신의 완성을 위한 곳이 아니면 머무르지 않는다. 눈은 마음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리를 옮겨 앉혔지만, 어쩌면 이 짐대들도 자신을 완성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놓여 있지 않았을까. 때문에 그 덕상(德相)을 보고 있으면, 우리의 두 눈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 것만 같은 것이다. 결코 허망한 것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 모습으로.

지금의 군청 청사 자리에 있었던 부안의 관아터도 눈여겨볼 만하다. 1810년 현감을 지냈던 박시수의 봉래동천(蓬萊洞天), 주림(珠林), 옥천(玉泉)이라는 글씨만 널따란 화강암 바위에 또렷이 남아 있는 관아터. 국내에서 가장 큰 초대형 초서체로 쓰인 암각서 ‘봉래동천(蓬萊洞天)’은, 신선이 살 만큼 경치가 아름답다는 뜻이라 하니, 결코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곳이기도 하다. 군청 아래쪽 가장 번화했던 본정통 거리에 거대한 붓 한 자루가 조형물로 세워져 의아했던 적이 있다. 옛 관아 터 자리에 있는 옥천의 우물을 붓으로 찍어 내려와 우리 사는 이야기와 찰나의 순간들을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을 수 있도록 기록하기 위함이라 했던가. 붓이란, 예나 지금이나 앉은 채로 기대어 눕지 않는 꿋꿋하고 강인함이 느껴지게 한다.

보다 현대적인 거리라 할 수 있는, 군청 앞 에너지 테마 거리로 이어지는 젊음의 거리 아래쪽에는 매산리고개가 있다. 매화가 땅에 떨어진 형상의 터 매화낙지혈.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즉 일생을 추운 데서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지조 있고 고결한 꽃이 매화다. 많은 씨를 퍼뜨려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기도 하는 매화가 떨어지면, 향기가 사방에 퍼지기 때문에 자손의 발복이 크고 오래도록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혈터. 그런 혈터가 한동안은 여인숙이 즐비하여 청소년들의 발길을 돌려세우기도 했다. 지금은 손으로 꼽히는 여인숙 몇 채가 그간의 속사정을 털어놓듯 한껏 낮은 지붕을 받치고 있는 매산리고개. 그러나 그 또한 가장 고귀했던 터에서 가장 낮은 자리가 된 터의 역할과 기능을 돌아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리라.

매산리고개를 넘어와 부안 상설시장에서 팥칼국수 한 그릇 먹는 맛은, 또 하나 부안의 속살 맛을 즐기는 일. 이유는 모르겠지만, 부안시장은 유난히 보리밥을 겸한 팥죽집이 즐비하다. 양이 많아 한 그릇으로 두세 명이 나눠 먹던 시절도 있었다. 시장 한복판에 쉼터처럼 놓여 있는 찻집에 들러 시원한 냉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맛을 아는 또 다른 묘미일 터. 그러다 보면 어느덧 긴 여름날의 해가 지고 밤이 된다. 선선한 밤공기를 쐬며 초대형 물고기 분수대에서 발하는 오색 조명이 아름다운 롱롱피쉬길을 경유해 첼시정원박람회 수상 경력이 있는 황지해 작가의 작품이 있는 너에게로길, ‘청춘싸롱’이나 ‘사께’와 같은 이름의 각색의 술집들이 즐비한 청춘의 거리까지 거닐어볼 수 있는 부안의 야(夜)한 밤거리. 듬직한 재미를 느껴볼 수 있는 이 길들도, 길의 문화도, 언젠가는 역사가 되고 역사의 숨은 이야기가 되겠지. 그리고 또 그 훗날의 시대가 지금의 이야기들을 꺼내어 놓기도 하겠지. 무상한 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장님 같아서 더욱 흥미진진한 거리들의 이야기.

그녀와 함께 꼬박 이틀 동안 600년간의 동행을 한 속살길 끝, 칠월 장맛비를 만났던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얘기를 다 쏟아내 버리기라도 했다는 듯 시원하고 우렁찬 비. 저 맹렬한 속도로 쏟아지는 장맛비처럼 매순간 우리는, 얼마나 생을 격렬하게 살고 싶었던가. 그 무엇에게든 또한 얼마나 흠뻑 젖어보고 싶었던가. 그 속에서 살고, 사랑하고, 발견하고 싶었던가. 그렇게 한참을 욱신거리고 나면, 막잠 자고 난 누에처럼 말갛게 눈 뜨는 부안. 전체가 거대한 정원도시가 되어가고 있는, 부안읍 거리 곳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이 막무가내로 빗소리에 지워졌다 다시 꺼내어지곤 하는. 각자의 시계를 가지고 부안이라는 큰 하나의 시계 안에서 거침없이 살아가고 있는 부안인들의 삶의 모습도. 전북의 숱한 길 중에서 그 부안의 길이 지금 우리 앞에 오롯이 속살을 드리우며 쏟아들고 있는 것이다. 자귀꽃 향기를 실은 여름 무더위 속에 제대로 한참 깊어 있는 맛깔을 내면서.

“우리의 동행은, 여기서 다시 이어질 거예요.”

어디로든 나 있는 것이 길이지만, 모든 길은 결국엔 하나로 귀결된다. 사람 목숨처럼 짧고 무상하며, 변하며 이지러지지 않는 곳으로. 그래, 마음이 머무는 그토록 안온한 곳으로.

김형미 시인
김형미 시인

*김형미: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와 <진주신문> 가을문예공모, 2003년 『문학사상』 시 부문 신인상. 시집 『산 밖의 산으로 가는 길』, 『오동꽃 피기 전』, 그림에세이 『누에』 등. 불꽃문학상·서울문학상·목정청년예술상 수상,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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