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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금(金)인가? 침묵은 독(毒)이었다
침묵은 금(金)인가? 침묵은 독(毒)이었다
  • 칼럼
  • 승인 2018.08.1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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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애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이윤애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이윤애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사회적 관계에서 의사표현은 중요하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 갚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말을 하다’는 관계를 촉진시키고 문제해결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반면에 말을 함에 있어서 신중함을 갖춰야 한다는 요구는 더 중요하게 강조된다. “세 번 생각한 후에 한 번 말하라(삼(三思一言)”는 공자의 가르침이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이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라는 성경구절에서도 말을 신중하게 할 것을 당부한다. ‘침묵은 금이다’ 격언을 떠올려보자. 말이 많아진다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아짐을 깨닫게 하고 말의 신중함을 강조하기 위한 가르침으로 짐작된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이나 감언이설(甘言利說) 등과 비교한다면 말의 신중함이거나 침묵은 사회적 관계에서 좋은 덕목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사람의 관계에서 침묵은 아주 고약하고 신뢰의 환경을 깨뜨리거나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자기의 생각이나 의견을 갖고 있음에도 상대방을 믿지 못하거나 다른 속셈이 있어 침묵하는 경우도 있고 혹은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로 인해 말을 할 수 없을 때 침묵이 유지되는 경우이다. 전자는 상호신뢰의 문제를 발생시키지만 자발적 침묵이다. 후자는 어떠한 선택도 가능하지 않은 강요된 침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요즘 적폐의 으뜸으로 사회문제시 되고 있는 한 항공사 총수일가의 갑질횡포와 불법행태를 넘어 기괴한 행동들은 그동안 비정상이 정상으로 간주되는 이상한 나라를 만들어왔다. 비단 이 항공사  뿐이겠는가? 다양한 형태의 갑을관계에서 빚어지는 비정상적 현상들이 가능했던 것은 긴 시간동안 주변의 묵인과 동조 그리고 침묵이 그들을 우리 사회의 괴물이나 독버섯으로 키워왔다고 본다. 여기서 침묵은 金(금)이 아니라 독(毒)으로 보는 편이 합당할 것이다. 지켜왔던 오랜 침묵을 깨고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그들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강요된 침묵은 여성들에게서 더욱 크게 감지된다. 오랫동안 유지되어왔던 남성들의 권력 독점현상은 권력관계를 매개로 다양하게 여성들을 침탈해왔다.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불편부당하거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조차 도움청하는 것을 여성들에게는 허락하지 않는다. 거부하지 않고 순응하며 공손함을 잃지 않는 것을 여성다움의 덕목으로 교육받아왔다. 여성들이 성폭력이나 성희롱과 같은 피해를 당했을 경우 법과 제도를 통해 도움을 받고자 용기내어 고소해보지만 스스로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되고,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성인권감수성이 낮은 자들에 의해 자행되는 2차 가해는 지점마다 피해자들을 입 다물게 했다. 심지어 조롱과 협박, 배척은 물론이고 피해자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고 죄책감까지도 들게 했다. 2차 폭력이다. 그들만의 법이었던 무고죄와 명예훼손죄는 가해자들의 역고소가 용인되는 발판이었고 이는 합법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행위의 결정판이다. 침묵은 오랫동안 여성들을 전염시켜왔고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했다.

강요된 침묵을 깨고 여성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미투운동이다.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경험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다른 여성들에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그 경험들이 모여서 커다란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응집된 목소리는 우리사회를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변혁의 물결로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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