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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의 사회적 가치
저잣거리의 사회적 가치
  • 칼럼
  • 승인 2018.08.2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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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수 전국상인연합회 회장

조선시대에 불리던 ‘저잣거리’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가게가 죽 늘어서 있는 거리’이다. 얼마 전까지 재래시장으로 불리다가 현재는 전통시장이라 불리고 북한에서는 장마당이라 불리며 체제 변화의 신호탄이라며 언론에 오르내린다. 조선시대에는 민화의 배경으로 주요 소재가 되었고 지금은 사극 드라마나 영화 속 배경장면으로 등장한다.

저잣거리는 양반에서 천민까지 모든 계층이 모여드는 대중(大衆)의 열린 공간이었고 나랏님이 방(榜)을 붙여 고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미복잠행하여 은밀히 민심을 알아보던 소통의 창구였다. 진귀한 물건들을 가지고 전국을 누비는 보부상들과 양반집의 하인들이 전하는 소문들을 모아 야사(野史)가 만들어 지기도 하였다. 물론 상점들과 숙박업과 식당, 주점 역할을 했던 ‘주막’이 성업을 이루던 곳이다. 또한 춤꾼, 소리꾼들이 거리공연을 펼치던 공연장이었고 마당놀이가 벌어지는 민중의 놀이공간이었다.

그러한 저잣거리가 단순한 상점가이었다고 여긴다면 역사적 오산이다. 그렇다면 단순하지 않은 저잣거리의 사회적 기능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필자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 이야기하고자 한다. 저잣거리의 역사를 이어온 전통시장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가치가 있다. 판매자와 고객만이 존재하는 상점이 아닌 다양한 사회적 관계가 공존하는 커뮤니티이다. 장날이 되면 밭에서 길러낸 고추를 팔러온 할매도 있고, 멀리서 온 만물상도 있고, 장터에 자리 잡은 상인들, 상인들을 대상으로 점심을 파는 보리밥집 아주머니, 그들과 함께 일하는 종업원들, 물건을 사러온 주민들, 장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노래를 부르며 장사하는 장애우 상인, 먹거리 간식을 파는 포장마차 등등. 십수년을 함께해 오다보면 다들 형님 아우이고, 삼촌 이모가 된다.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장사철학으로 수년 동안 찾아주는 단골손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판매자와 소비자 관계를 넘어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고 가족의 행복을 기원해주는 정을 나누는 관계이다. 디지털 네트워크가 발달한 작금에 있어 비대면(非對面)적인 SNS를 통한 대중의 소통이 활발하다. 하지만 면대면(面對面)이 없는 관계가 얼마나 성숙한 관계로 발전 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SNS를 통한 인연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오프라인 모임이 성행하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전통시장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은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면대면(面對面)의 행복을 간직하고 있다. 전통시장 사람들은 생계를 해결하고자 고단하고 바쁜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삶의 현장에서 노동의 가치와 공생의 의미를 가슴에 품고 있다. 그것은 전통시장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있는 지역 커뮤니티이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 ‘포용성장’, ‘골목상권 활성화’ 모두 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민생 경제 정책 수립에 있어 바닥 경제의 현실과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없다. 지역경제의 근간이자 풀뿌리 경제의 모세 혈관인 전통시장의 사회적 가치가 획일적이고 단편적인 정책으로 훼손 되어서는 아니 된다. 최저임금 상향이 불씨가 되어 자영업의 구조적 문제가 이슈가 되고 사회적 갈등이 불거지는 지금에 우리 사회가 전통시장 커뮤니티의 사회적 가치를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백성들의 이야기를 엿듣기 위해 저잣거리를 미복잠행하던 임금의 마음이 어떠했을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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