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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얼 벤치
메모리얼 벤치
  • 칼럼
  • 승인 2018.08.2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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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100년 기상관측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던 폭염이 사라지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서늘하다. 겨울 옷 챙겨야하는 것 아니냐는 농도 이상하지 않다. 무더위와 싸우던 고통의 기억은 점차 사라지고 추위와의 대비를 벌써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간에게 기억은 편리한 장치다. 기억과 망각은 신이 우리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만약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과부하 걸린 기계 장치처럼 뇌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뇌는 정보가 들어오면 전두엽에서 판단해서 측두엽과 해마의 도움으로 오래 기억할 수 있게 한다. 세계적 뇌 과학자 한나 모니어와 철학자 마르틴 게스만이 함께 쓴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라는 책에서 ‘기억은 과거를 보존하는 능력이 아니라 미래를 계획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최근 뇌 과학자들은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을 뇌 과학의 새로운 연구방향으로 설정하고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미국에서는 9·11 테러사건과 관련한 사회적 충격과 집단 기억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우리의 경우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가 대표적이다.

흔히 ‘트라우마’로 표현되는 정신적 외상 충격은 사고 당사자나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 저변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이런 사고를 기억하는 방식은 동서양이 많이 다르다. 우리는 고통스런 기억일수록 “이제는 잊어라!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말한다. 이 말이 얼마나 남은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인 지 당사가가 되어보지 못하면 모른다. 그런데 외국은 오히려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있어! 끝까지 함께 할게”라고 위로한다. 얼마 전 여름휴가 때 캐나다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부러웠던 것이 있다. 바로 시가 운영하는 ‘메모리얼 벤치’제도다. 가장 뷰가 좋은 도심 공원이나 의미 있는 장소에는 꼭 시민들이 기증한 메모리얼 벤치가 있다.

캔모어라는 작은 마을의 호숫가 풍경이 너무 좋아 한 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혼자서 풍광을 즐기고 있었다. 의자에는 어린아이의 이름과 출생, 사망연도와 함께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A Hero remembered never dies’ (너를 기억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아). 그때 어느 젊은 부부가 와서 조약돌을 의자 옆에 놓고 기도를 드렸다. 사연을 물어보니 짐작대로 하늘나라로 간 아이의 부모였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을 벤치나 공공물에 기록하는 것은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에서는 오래 전부터 시행된 일이다. 시민들이 신청하면 일정한 심사를 거쳐 5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작은 태그를 붙인 의자를 설치해준다. 지역마다 비용이 다르지만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1천만원까지 기부를 한다. 전라북도와 전주에는 좋은 풍광과 의미 있는 장소들이 적지 않다. 전주시 민원과에 물어보니 메모리얼 벤치에 대한 시민들의 정책적 제안은 없었다고 한다. 각자가 기억하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스승, 희생과 헌신을 한 공무원, 의인 등 그들을 잊지 않는 장을 펼쳐 준다면 의미 있지 않을까? 그렇게 모아진 돈은 소외된 이웃들과의 나눔에 쓰인 다면 더욱 빛날 것이다. 수구지심인지 타향에서 살다보니 나이들 수록 고향 생각이 자주 난다. 이 제도가 받아들여진다면 나부터 우선적으로 하고 싶다. 어릴 적 우리 삼형제가 놀던 오목대에 사고로 돌아가신 큰 형의 이름과 함께 이렇게 적고 싶다. ‘작은 동산에서 키운 꿈이 큰 산이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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