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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164) 8장 안시성 20
[불멸의 백제] (164) 8장 안시성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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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2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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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당군이 돌아간다!”

함성이 울렸다. 그러더니 사방에서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계백은 성주 양만춘과 함께 남문의 성벽에 서 있었기 때문에 당군의 부대들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퇴각이다. 오전 사시(10시)무렵, 새벽인 인시(4시) 무렵부터 꿈틀거리던 당군이 이쪽에 등을 보인 채 멀어지고 있다. 새벽부터 당군을 주시하고 있었던 터라 거대한 짐승이 꿈틀거린 이유가 퇴군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만세! 이겼다!”

이제는 고구려, 백제군이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북소리도 요란해졌다. 여자 목소리도 들리는 것이 주민들도 함께 소리치는 것 같다. 바람이 불어와 성벽에 꽂힌 깃발들이 펄럭였다. 아래쪽에 개미 떼처럼 덮여 있는 당군의 깃발은 평소의 1할도 안된다. 부대별로 구분한 깃발뿐이기 때문이다.

“만세! 만세!”

군사들의 만세 소리를 들으면서 양만춘이 머리를 돌려 계백을 보았다.

“장군, 이세민이 살에 맞아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몇달쯤이 지나야 알 것 같소.”

양만춘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라 있다.

“어쨌든 당군이 화살 한발로 물러나게 되었구려.”

“철군하지 않는다면 아마 저곳에서 얼어 죽게 될 것입니다.”

계백이 아래쪽 벌판을 가리켰다. 벌판에는 먼지가 가득 덮여 있다. 양만춘은 퇴군하는 당군을 쫓을 생각이 없다. 당군이 퇴군하는 마당에 고구려 군사 한명이라도 상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장수 몇명이 기마군으로 당군을 치자고 건의했지만 양만춘은 거절했다.

계백은 말할 것도 없다. 그때 양만춘이 웃음 띤 얼굴로 계백을 보았다.

“장군, 먼 훗날 역사에 이 전쟁이 어떻게 기록될 것 같소?”

“당과 고구려가 그때도 존속하고 있다면 각각 다르게 기록되겠지요.”

“그렇지.”

머리를 끄덕인 양만춘이 말을 이었다.

“당의 역사에는 승리한 전쟁이지만 겨울이 되어서 물러갔다고 적겠지요. 이세민이 죽지 않았다면 병사(病死)로 기록될 것이요.”

먼지에 덮인 당군의 뒷모습을 내려다보면서 계백이 말을 이었다.

“아마 황제가 물러가면서 성주께 잘 싸웠다면서 비단이나 금붙이 등 선물을 주고 갔다고 기록해 놓을지도 모릅니다.”

“고구려나 백제의 역사에는 사실대로 기록이 되어 있겠지요.”

눈을 가늘게 뜨고 당군을 보던 양만춘이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

“오늘밤 소를 잡고 남아있는 술동이를 모두 내놓아서 군민(軍民)을 위로하겠소. 오늘이 승리의 날이오.”

양만춘의 목소리가 떨렸다.

“장군이 일등공을 세웠지만 내가 보답해드릴 방법이 없구려.”

그날밤 안시성 위쪽 하늘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다음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소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수양제의 대군에 이어서 당(唐)의 대군까지 물리친 고구려는 진정한 대륙의 패자(覇者)였다.

계백은 백제국 지원군으로 안시성주 양만춘을 도와 철궁을 쏘았지만 공을 내세우지 않았다. 양만춘도 계백이 이세민을 쏘았다는 사실을 직접 들은 것도 아니었지만 믿었다. 계백 같은 명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군이 철군한 이틀 후에 계백은 백제군을 이끌고 안시성을 나왔다. 이제는 귀국이다. 이세민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백제군의 깃발은 당군보다 많았다. 초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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