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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문화와 예술의 존재
낯선 문화와 예술의 존재
  • 김은정
  • 승인 2018.08.23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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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월북문인의 해방이전 작품 공식해금조치’가 있고서다. 이후 온전한 예술사 복원을 위한 북한 예술작품 연구가 이어지면서 북한의 많은 예술작품이 우리에게도 알려지게 되었지만 남과 북이 가로 막힌 현실에서 북한의 예술작품은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다.

제목만으로는 익숙해진 작품들이 있다. ‘피바다’와 ‘꽃 파는 처녀’ 같은 가극작품이다. 가극 중에서도 이들은 모두 혁명가극으로 분류된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기초하여 혁명적인 주제를 독창적인 표현방법으로 만들어낸 ‘혁명가극’은 음악과 춤, 연극 등을 모아낸 종합예술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창극이나 악극, 서양의 오페라와 비슷하지만 사상계몽과 선전선동을 위해 예술성보다는 규모를 중시한다.

보통 한 작품에 2백 명 이상의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의식화된 인민들이 혁명을 일으켜 악덕지주나 외세를 물리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군중음악과 군중무용이 서사시 형식으로 전개되는 것이 특징인데, 극의 주요 부분에서는 단조로운 곡조를 계속 반복하는 ‘절가’, 무대 뒤에서 노래를 부르는 ‘방창’이 동원된다. 이러한 음악형식은 종래 가극이 지닌 낡은 음악형식을 버리고 가극의 대중화와 통속화를 위해 새롭게 구성된 혁명가극의 대표적인 표현 기법으로 꼽힌다.

가장 먼저 만들어져 혁명가극 창작의 모델이 된 ‘피바다’는 1936년 8월 만주 만강부락에서 만들었다는 ‘혈해’가 원제로 알려져 있는데 1971년 피바다 가극단에서 새롭게 제작해 초연한 이래 북한은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공연하면서 2000년대 초반에만 1천3백여 회의 공연 횟수를 기록했다.

이들 작품에 예술적 완성도를 평가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예술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다르니 예술의 창작 주체도, 그 의미와 가치도 다를 수밖에 없다.

2005년, 평양에 갔을 때 능라도 5·1경기장에서 공연하는 ‘아리랑’을 보았다. 무대 배경이 되는 카드 섹션에만 5만 명, 매스게임에 2만 명 등 출연진이 10만 명이나 된다는 집체극의 규모도 놀라웠지만 이 작품을 보기 위해 평양은 물론, 버스로 아리랑열차로 지방에서 올라온 수만 명 관람 인파는 충격이었다. 이질적이고 낮선 문화와 예술의 존재는 분단의 오랜 시간이 가져온 결과다.

80년대, 북한의 예술작품이 해금되면서 기대되었던 남과 북의 예술교류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과제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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