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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가야의 비밀, 아이언 로드] ② 장수 가야 유적 현황-제철 기술자들, 철광석 풍부한 장수로…'철의 테크노밸리' 완성
[장수가야의 비밀, 아이언 로드] ② 장수 가야 유적 현황-제철 기술자들, 철광석 풍부한 장수로…'철의 테크노밸리' 완성
  • 김보현
  • 승인 2018.08.2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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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남원 등 전북 동부 제철유적지만 175개소
“장수 대적골서 대규모로 주조·단조 철기 만들어”
“초기 철기 중심지인 전북 혁신도시에서 기술 전파”

최근 전북 가야사 복원 작업이 탄력을 받은 가운데 장수에서 다수의 제출 유적이 발굴돼 관심이 집중됐다. 선진 기술이자 문물인 철기는 강력한 국력. 장수가야 제철기술의 독자성과 선진성을 증명한다면 당시 삼국(고구려·백제·신라) 못지 않은 중심축으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은 어디에서 전파됐을까.

중국에서 바닷길을 통해 군산으로 유입돼 풍부한 철 산지인 장수까지 전파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명 ‘아이언 로드(iron road)’다.

‘아이언 로드’는 기원전 2세기 중국 산둥성 일대에 있던 제나라 왕의 동생 전횡이 군산 어청도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루트가 시작된다. 어청도를 통해 한반도에 도달한 전횡의 후예들과 철기 문물은 내륙인 전주·완주(오늘날 전북혁신도시 일대)로 이동한다. 이미 전주·완주 일대에서 뛰어난 청동 주물 기술을 갖고 있던 토착세력과 만나 화려한 청동기·철기 문화를 꽃피운다.

이들 세력 일부는 1세기 후 풍부한 철광석(철기 원재료)을 찾아 이동한다. 정착한 곳이 바로 장수·무주·진안에 걸친 진안고원 일대, 그 중 특히 장수지역이다. 그리고 이곳을 기반으로 한 선진집단은 장수가야로 발전했다.

전북일보는 장수가야 제철기술의 뿌리를 찾기 위해 6차례에 걸쳐 ‘아이언 로드’를 거슬러 올라가며 쫓고 있다.

장수 명덕리 제철유적 발굴조사 후 전경.
장수 명덕리 제철유적 발굴조사 후 전경.

문헌에 등장하는 가야계 소국만 20개가 넘는다. 대부분 백두대간 동쪽(영남지역)에 있었던 상황에서 유일하게 백두대간 서쪽 진안고원에 위치했던 장수가야가 소외되지 않고 가야계 소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바로 ‘철기문물’ 덕분이다.

무주·장수·진안에 걸쳐 있는 진안고원 일대에서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던 대규모 제철유적이 발견됐다. 가야 문화권에서 유일하게 확인된 제철유적이라는 점에서 장수가야의 우수성과 역동성을 입증하는 셈이다.

현장 발굴 연구원들은 기술력과 동시에 이 일대가 원재료가 풍부한 철산지였다는 것에 주목했다. 진안고원에서 제철기술이 발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철을 다루는 고도의 기술을 갖고 있던 세력이 원료를 찾아 이곳까지 이동한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세력이 바로 기원전 2세기 철기문물과 함께 바다를 건너온 제나라 전횡의 후예들이라는 것이다.

△ 제련부터 완제품 생산까지…‘철의 테크노밸리’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은 지난 2015년 장수 동촌리 가야계 고총에서 말발굽(편자)이 처음 출토되면서 드러났다. 귀족 계층이 타고 다니던 말의 편자가 나온 것은 강한 지배계층이 있었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말의 무게, 압력을 버티고 비교적 온전히 보존된 편자의 상태로 미루어 높은 주조기술을 보여줬다.

이후 최근까지 진행된 제철유적 발굴조사 및 지표조사를 통해 철의 생산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유적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장수 대적골 유적에서 발견된 솥을 만들던 거푸집(용범) 조각.
장수 대적골 유적에서 발견된 솥을 만들던 거푸집(용범) 조각.

장수군 명덕리 대적골 일대가 중요 제철유적지로 꼽힌다. 원료에서 1차적으로 철을 생산하고 생산된 철 소재를 2·3차 가공해 완제품을 생산했던 곳으로, 모든 제철공정이 갖춰져 있다.

제철기술은 철을 거푸집에 부어서 만드는 주조와 두드려서 만드는 단조 등 두 가지로 나뉜다. 대적골 A구역에서는 제련로, 단조 조각들이 수습된 단야로, 작업대, 석렬유구 등이 한 구역에서 발견됐다.

C구역에서는 솥을 만들던 거푸집과 함께 소토, 철재(슬래그·제련 과정 중 생성되는 불순물)가 다량으로 나왔다. A구역 등에서 생산된 철을 이용해 이곳에서 솥이 제작됐다고 추정한다.

A구역 옆에서는 철재(슬래그), 노벽편(철광석을 녹이는 제련로의 잔해) 등으로 형성된 5m 이상의 대규모 퇴적구도 확인됐다.

즉, 철 다루는 기술이 체계적이고 자유자재로 능한 세력이 집단적이면서도 대규모로 철 생산을 해온 것이다.

△ 완벽한 입지조건 찾아 장수로 이동한 기술자들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대적골에서 발견된 슬래그 더미.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대적골에서 발견된 슬래그 더미.

곽장근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제철기술은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철을 다루는 선진기술과 함께 원료인 철광석, 연료인 숯이다.

장수 제철유적지 인근에는 철광석을 채굴하던 채석장과 숯을 굽던 숯가마가 존재한다. 남덕유산과 합미봉, 봉화산 등에는 니켈이 함유된 품질 좋은 철광석이 가득하다. 게다가 험준한 산맥이 아니라 수(水)량이 풍부한 골짜기 내 평탄대지에 입지해 근거지까지 금상첨화다.

조건들이 적절히 맞아떨어지면서 철광석 채광부터 숯으로 철광석을 제련해 철을 추출해 내는 제철공정이 한자리에서 이뤄지는 ‘한반도 철의 테크노밸리’가 된 것이다.

이쯤되면 철기 문화를 꽃피운 기술자들은 어디에서 넘어온 세력인지 궁금해진다.

장수가야 시대의 기술자들은 현재의 전북혁신도시 지역에서 넘어온 제나라 왕제 전횡의 후예 또는 그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세력이라는 주장이다.

곽 소장은 “현재까지 발굴된 유적을 토대로 추측할 때 초기 철기문물의 중심지인 전북혁신도시가 쇠락할 무렵 장수가야가 시작됐다”며 “혁신도시 세력이 장수 쪽으로 이동한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문물을 가진 집단으로서 원재료를 바로 구할 수 있는 철산지에 관심이 컸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유 연구원은 “일방적으로 경상도 지역이 철기의 중심이라고 알려졌지만 시기·유적으로 봤을 때 전북혁신도시가 초기 철기시대의 가장 이른 중심지이고, 경상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은 훨씬 늦다. 전북 혁신도시에서 경상도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장수 남양리 유적에서 나온 유물은 그 중간 시기의 것이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장수 제철기술이 혁신도시에서 전파된 것이고, 또 경상지역으로 전파됐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더 밝혀져야 할 부분도 있다. 제나라 제왕 전횡이 어청도로 망명해 현재의 전북혁신도시에 터를 잡았다고 추측되는 시기가 기원전 2세기다. 가야는 기원전 1세기부터 562년까지 존재했다. 장수가야 존재시기를 빠르게 잡아도 약 900년의 공백이 생긴다.

연구자들은 앞으로 유적 발굴이 심화되거나 발굴 지역이 확대되면 900년간의 이동과정이 밝혀지거나, 장수 지역 제철유적의 뿌리가 기원전 2세기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는 추측이다.


● 전북가야 유적 지표조사한 유영춘 군산대박물관 학예연구원 "동부지역 제철유적 175곳…정밀조사 필요"

장수를 비롯한 남원, 무주, 완주, 임실 등 전북 동부지역에 분포하는 제철유적은 현재 175개소에 달한다. 지난 6월 마친 ‘전북 가야사 및 유적정비 활용방안’ 지표조사를 통해 45개소가 추가 발굴됐다. 가야 문화권에서 유일하면서도 우리나라 최대 밀집도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유 연구원은 “이번 조사를 통해 남원, 무주 등에서도 괄목할만한 제철유적이 발견됐다”며, “당시는 국경이 유동적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철산지들을 찾아 테크노밸리를 이루던 집단의 세력은 더 강력했고, 테크노밸리는 더 넓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지표조사는 눈에 보이는 대략적인 존재만 파악한 것일뿐 실제 개별 유적에 대한 현황 측량이라든지, 유구의 정확한 위치·용도 등 세부 내용을 확인 할 수 있는 정밀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체계적이고 정밀한 발굴 조사가 찬란한 가야사 복원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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