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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김제 백산서원
내 고향 김제 백산서원
  • 기고
  • 승인 2018.09.0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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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 수필가
안영 수필가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김제 궁지마을에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내 고향은 황금 물결이 출렁이는 맛과 멋의 고장이다. 동네 앞에는 활처럼 생긴 연못이 있고 이웃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쟁이처럼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사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버스도 다니지 않은 황톳길의 질퍽질퍽한 마을인데 중학교 다닐 적에야 환한 전기가 들어왔다.

마을에는 우물이 두 곳 있었는데 동네 어귀 윗 우물물을 먹는 사람들은 아들을 많이 낳고, 동네 끝자락의 아랫 우물물을 먹은 사람들은 딸을 많이 낳는다는 설이 있다. 우리 집은 맨 윗집인데 어머니는 매년 정월 초하룻날 첫닭이 울기 전 제일 먼저 일어나 샘물로 정화수를 떠놓고 빌고 빌었다. 일등을 양보하지 않으셨던 덕택에 지금의 우리들이 있다. 지금도 매년 칠석날이면 청년들이 우물을 청소하고 돼지를 잡아 참외와 수박 그리고 노란 옥수수 등과 함께 차려 놓고 고사를 지낸다.

또 하나 우리 마을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백산서원이 있다. 1928년 3칸의 맞배지붕으로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으며 측면 벽이 용마루까지 삼각형으로 아주 잘 지어졌다. 우리가 숨바꼭질할 때마다 기대어 놀던 아름드리 기둥은 백두산에서 벌채한 나무로 지금은 나무 사이에 틈이 갈라져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2000년 6월 전라북도 문화재 제158호로 지정돼 이 또한 자랑거리다.

사당과 내외 삼문이 있고 강당은 무인과 무관들이 모여 강의를 하던 곳으로 5칸의 건축 양식을 지니고 있다. 매년 음력 2월이면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내려오고 있었는데 지금은 김제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백산서원은 모든 생활의 중심이었다. 동네 어르신들의 모임 장소, 아이들의 놀이터, 청춘남녀들의 데이트 장소였다. 우리 집도 한때는 정원이 좋고 수목이 울창한 아주 멋진 집터였지만 팔순의 어머니가 혼자 사시기에 버거워 읍으로 이사를 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그 옛집을 잊을 수 없어 오빠가 다시 그 집을 사서 편리하게 구조 변경을 하니 어느 펜션 부럽지 않게 되었다.

내 고향에 백산서원이 우뚝 서 있는 한 모든 재앙을 막아줄 것이다. 최근 3년 동안 농촌 건강 장수마을로 지정돼 정부의 지원을 받아 농촌소득사업과 건강·복지사업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으니 얼마나 청정한 곳인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내 고향 궁지마을은 백산서원을 중심으로 바로 맞은편에 근대에서 현대로 넘나드는 삶들이 숨을 쉬고 있는 새마을구판장이 있고 지금도 훼손되지 않은 자연경관이 있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특히 우리 마을에 예부터 전해오는 모심는 소리, 논 메는 소리, 산야 소리, 집터 다지는 소리, 상엿소리 등 노동요 5곡 자료가 남아 있어 재현하고 있다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오늘도 찬바람 서성이는 대숲의 백산서원은 흐트러짐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효부와 열녀가 많이 났다는 백산서원의 마당에서 보리밥에 우렁이 된장국을 끓여 쓱쓱 비벼 먹던 그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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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 수필가는 ‘문예사조’에서 수필로, ‘한국문학예술’에서 시로 등단했다. 전주여성의쉼터 원장을 역임했고 전북문인협회, 가톨릭전북문우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내 안에 숨겨진 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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